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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 Apr 30. 2022

신은 충분한 약을 주었다 한다

엄마. 견디기 힘든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중년의 여자가 예배당에 들어서

신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저의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혼자 용변도 볼 수 없는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에 기쁜 맘으로 모든 걸 해주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는 혼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게서 가져가려고만 합니다. 받고 또 받으면서도
불평만 해댑니다. 툭하면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무시합니다.
아무리 사랑은 주는 것이라지만 이제 저도 지쳤습니다..”


신이 여자에게 말했다.

“집착을 끊고 그에게서 벗어나거라.”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세상은 책임감 없는 여자라며 저에게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그건 책임이 아니라 집착이고 장애다!

걱정 마라. 신이 네게 자유를 허락한 것이다.”

여자의 어두웠던 낯빛이 환해졌다.

“신이 허락하셨으니 당장 그를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신은 여자에게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어리석고 모진 네 남편에게서 떠날 것을 허하노라.”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남편이라니요?”

“이제까지 네가 말한 못난 남자를 말하는 것이다.”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저의 아들입니다.”

그러자 신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이런 무책임한 어미를 보았나!

자식에 대한 어미의 사랑은 끝이 없는 것이거늘!”

여자가 울먹였다.

“좀 전까지 하신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까?”

신이 말했다.

“어미가 자식에게 받은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 바로 모성애다.

세상 모든 어미에게 내린 신의 선물이야!”

여자는 신에게 하소연했다.

“약을 바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할퀴는 자식도 있습니다.”

“나는 충분한 양의 약을 주었다.”

여자는 지지 않았다.

“당신께서 주신 약은 이미 다 써버렸습니다.”

신도 지지 않았다.

“나는 모두에게 똑같은 양의 약을 주었다. 왜 너만 부족하다고 하느냐?”

여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상처에 따라, 사람에 따라 필요한 양이 다르다는 걸 모르셨습니까?”

신은 인간의 지적이 몹시 불쾌했다.

“그것은 아무리 많은 약을 줘도 소용없는 연약한 어미의 탓이지 신의 탓이 아니다.”

분노한 신은 여자를 예배당에서 쫓아냈다.




여자는 문 앞에 서서 통곡하였다.

그러나 한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몇 날 며칠 동안 예배당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쿵쿵 쿵쿵

견디다 못한 신이 결국 문을 열고 소리쳤다.


“참으로 질기고 무책임한 어미로구나!”


그런데 예배당 앞에는 처음 본 여자가 서있었다. 그리고……

뒤로 길게 늘어선 여자들이 보였다.

그때 문 앞에 선 여자가 신에게 애원했다.


“예배당에서 나온 여자가

신께서 애초에 어미들에게 약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아파 죽을 것만 같습니다.

제발 그 약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그녀의 뒤에 선 여인 중에

어떤 여인은 피를 흘리고 있었고,

어떤 여인은 퍼렇게 멍들어있었다.

상처의 크기와 깊이는 저마다 모두 달랐다.

다만 슬프고 텅 빈 눈은 똑같이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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