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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동박새 May 05. 2017

나의 첫 취업기

잊혀지는 게, 또 잃어 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 내 기억을 끄적이게 되었다.

나는 사람에게 상처 받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눈에 띄지 않으려하는 내성적이며 내향적인 성격이다.

석사까지 나온 나는 자연에서 숨쉬고 연구하고 싶어 고향에서도 먼 강원도 연구소에 지원하게 되었고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다. 연구소는 비영리기관이었고 연구소 소장님이 열정적이었기에 받는 급여가 적더라도 뭐라도 배울 수 있겠다 생각하고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게 되었다. 받는 급여의 수준이란,, 난 여태 공부만 하고 세상물정 모르기에 자연속에만 있으면 좋겠다라고만 생각했다. 실제로도 자연, 생태와 관련된 직업을 도시에서 갖기란 힘들었으니깐 말이다. 강원도 골짜기에 있는 일주일동안 읽은 책은 우습게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였다. 일주일이 한달같았다.

일주일의 경험이란 참 단편적이고 연구소의 모든걸 경험할 수 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주일로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왜냐 메일로 퇴사의 이유를 소장에게 전달하였고 60대의, 모협회의 회장이며 수많의 고위층의 간부들을 알았던 그는 나에게 자신의 연구소를 폄하했단 이유로 나를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메일을 보내왔으니 말이다.


나의 첫 취업은 이랬다.

창업을 우연히 준비하게 되었으나 부모님의 만류로 급하게 석사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야됐다. 급하게 취업사이트에 들어가서 직장을 알아보게 되었고 책에서 문득 본적이 있는 연구소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었기에, 시골이기에 마음에 들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이력서를 넣자마자 바로 그다음날 연락이 왔고 꼬불꼬불 강원도로 들어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첫 면접을 보러가게 되었다. 남자연구원들만 있는 그곳에 나느 첫 여자연구원이었다. 혼자 여자라니 불편하겠다.라고 생각이 들것이다. 불편하겠다란 말에 나는 시니컬한 웃음으로 답하겠다. 그곳은 여자를 고용하면 안될 곳이었다.(추후에 얘기하겠지만 이곳 소장님은 고용이란 단어를 싫어하신다. 당신은 연구원이기 때문에 고용이란 단어를 싫어했었고 연구소장은 개나소나 할 수 있다고 교수로 불러주길 바랬다. 하지만 나는 내 개인적인 감정으론 도저히 호의적인 감정으로 당신을 교수라 부를 수 없겠다. 실제 학교에 고용된 부교수, 정교수도 아니며 강의만 나가는 객원교수란 그 직책을 남용하는 당신에 다시 한번 교수란 직업에 치를 떨었다.) 나는 면접날 그 곳에서 입사하게 되면 방한칸을 나에게 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다만 그 방한칸 외엔 모두 남자분들과 같이 써야 한다는 걸 꿈에도 생각못한채 말이다. 면접을 보면서 나는 내 남자친구가 있음을 밝혔고 소장은 남자연구원들에게 골키퍼있다고 골 안들어가냐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연구원분들은 착하고 좋으신 분들이라 일주일동안 친절히 대해주셨다. 면접날 당일 나는 연구소에서 회식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미 그곳에 일원이 된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거절했어야 했나보다. 그치만 나도 연구소가 맘에 들었기에 연구원분들과 친해지고 싶었었다. 그렇게 나는 연구소의 일원이 되었고 연구소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연구소를 그만둔 큰 이유는 내, 나만의 조건과 가치관에 맞지 않았다. 아마도 분노에 찬 내가 설명하게 된다면 비상식적인 세계로 보일 수 있을테니. 만약 내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면 나의 감정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봐주시길 바란다.


입사를 설 이후로 했으면 좋겠다는 내 의견과 달리 소장은 최대한 빨리와서 연구소에 적응하기를 원했기에 나는 설 연휴 일주일전에 강원도로 가게 되었다. 빨리 와달라고 부탁받아서 내가 가면 내가 머물 숙소가 있는 줄 알았다.(연구소 제공에 숙소가 있었고 면접때도 방한칸을 준다는 말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준비는 되어있는 줄 알았다.)  아무것도 준비된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설연휴로 휴가를 받은 가정부이모의 빈방에 며칠을 머물게 되었고 며칠 후 연구원 숙소로 이동했다. 슈퍼가 있는 시내에서 연구소까지의 이동거리는 차를 타고 20분, 식사는 점심만 제공되었다. 나는 장롱면허로 차도 운전도 할 수 없었다. 연구원 숙소에는 전기밥솥도 식탁도 없었다. 심각한 사실이지만 여기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소장과 소장의 부인은 대수롭지 않게 애들일 알아서 잘 생활하고 있어라고 너도 적응할 수 있을거야 이참에 애들이랑 밥도 해먹고 반찬은 예전에 있던 애들은 부모님이 부쳐주는 반찬으로 먹고 했거든 반찬을 해먹던지 집에 좀 부쳐달라고 해. 이런식이었다. 연구원 숙소의 나의 방은 책상있는 방을 달라는 나의 요청으로 (아...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다..) 전구가 하나 나가고 책꽂이 없이 화장대 의자가 있는 방을 남자연구원들에게 뺏어서 배정받았다. 식탁과 전기밥솥이 없던 일반 가정집의 부엌과 화장실 하나, 방 세칸. 나는 그 방 세칸 중 한칸을 쓰게 된 것이다.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 그리고 세미나라고 각자 배정받은 과제를 매일 한명씩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모든 일이 끝나니 7시~8시였다. 주6일 근무에 2주에 한번은 토요일도 쉬게 해준다고 하였다. 하지만 내 시간이 없었다. 그 2주에 한번인 토요일도 소장이 임의로 쉴사람을 며칠전에 정해주는 것이었고 만약 일요일에 개인적인 일이 없으면 연구소에서 평소와 같이 일해야하는 것이었다. 음 뭐랄까 소장은 쉰다=논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고 자신은 매일 아침마다 4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공부한다고 자신의 본을 받으라고 끊임없이 얘기했다. 나는 내 시간이 없음에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았다. 아침식사도 저녁식사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숙소에 들어오면 내 시간도 없이 다음주 나의 발표를 준비해야했다. 쉬는 날도 없었고 소장은 우리연구소가 살아있는 곤충을 취급하기에 매일 신경써야한다는 이유로 휴일이 없이 일하길 바랬다. 그렇게 내 시간의 모든 걸 바쳐서 얻는 급여는 백만원이었고 식물과 곤충의 관계를 연구하고 싶었던 나에게(이력서에도 언급했었다.) 파리(곤충)으로 박사과정 어떻냐고 얘기했다. 내가 숨돌릴, 자기계발, 내가 공부할 나 자신만의 시간이 없다는게 너무 미칠 것 같았다. 연구원이라는 직책에 제대로 된 개인 책상이 없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고 고작 월급 100만원에 연구소에 비치된 도감으로 공부하지말고 개인 도감을 사라고 애길들은 것도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어떻게 버틸지 눈 앞이 깜깜했고 버틴다는 개념자체가 허무했다. 왜냐하면 나는 좋아서 이 길을 선택했기때문이다. 그런데 즐기기는 커녕 버틴다고 생각하다니.. 그 순간 나는 여기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일을 할 수 없다는 특정 계기는 또 따로 있었다. 연구소 블로그에 올릴 동영상에 대해 소장과 의논을 했었고 내 의견이 못마땅하자 내 머리를 툭툭 때렸다. 단순히 툭툭 친 것이었기에 아픔보단 모욕감이었다. 부모님도 때린적 없는 머리, 심지어 커가면서도 어느 어른이나 스승에게서도 맞은적이 없었기에 충격은 컷었고 소장은 대수롭지도 않은 반응이었으며 나는 애정이 있는 사람만 때리는 거다라고 멍해진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며칠뒤 내가 소장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자 그는 나에게 머리를 잠시 숙여보라고 했다. 그리곤 나에게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한마리의 개가 된 줄 알았다. 또다시 내가 멍하게 있자 얘는 칭찬을 해줘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특이하게 보았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소장의 행동은 나를 성인으로 자신이 고용한 연구원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간의, 철저하게 위아래가 있는 관계였다. 퇴사와 관련된 소장의 답장 메일에서도 자신은 고용주가 아니라 연구자라고 밝혔으며 연구원으로 데려온 연구원은 자신의 학생들임을 그리고 취업이 안된 학생들을 자신이 데려와서 농촌진흥청 기준으로 보수로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의 답장은 나에게 '나는 분명 취업사이트 공고에서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았는데 과연 나는 어디에 소속이 되었던 것일까?'란 충격을 안겨줬다.


업무시간과 열악한 환경, 나와 그 연구소가 맞지 않음을 메일로 전달했다.

첫 답변 메일은 나의 말이 맞다며 다음에 좋게 다시 만나자 라는 내용을 받았고 내 답변이 없자.

나의 연구소를 폄하하였다고 용서할수 없다는 두번째 메일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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