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동박새 May 05. 2017

나의 신비한 신화, 가이아 이론

  초등학교 시절, 모출판사에서 나온 그리스로마신화는 그때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읽었을 정도로 유명한 만화책이었다. 나 역시도 엄마와 함께 서점에 갈 때마다 새로 나온 다음권을 사서 한 권 한 권 모았었다. 태초의 혼돈에서 태어난 여신, 가이아는 그 시절 나에게는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잊혀져가던 신화를 떠올리게 된 건 자연과 환경에 대해 관심이 생기게 된 무렵이었다.

https://ravenseniors.wikispaces.com/GL+2013+P4+Gaia
 자연(自然),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네이버사전). 


  자연이란 한 단어는 나를 먼 우주로, 미지의 세계로 데려갈 것 같은 신비한 단어였다. 물론 풀, 바람, 생물, 시냇물, 별을 너무 좋아했으므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태초의 대폭발로 혼돈이 가득한 우주에서 저절로 생겨난 지구, 말 그대로 자연의 지구, 생명의 별 가이아다.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이론의 명칭은 그의 친구, 문학 노벨상을 탄 파리대왕의 저자 윌리엄골딩이 제안했다고 한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는 관점에서 지구의 여신인 가이아란 이름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어릴 때 읽었던 신화의 한 페이지를 다시 넘겨보는 듯 했다.



  설날연휴에 독한 감기에 걸린적이 있다. 열과 함께 마치 댐의 녹조류 같이 누렇지 못해 연두색 빛을 띠는 가래가 목에 꽉 막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심했었다. 아 감기로도 죽을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이 들어었다.

  우리의 몸은 나쁜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평상시의 상태를 찾기 위해 그 바이러스와 싸운다. 그런 이유로 열도 나고 끙끙 앓는다. 몸의 불과 달리 자연의 산불은 산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다 태워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자연은 다시 회복한다. 산불난 산에 고사리가 많다고 고사리 캐는 어르신들은 그렇게 산불난 산을 찾는다. 생명이 사라졌다고 느껴진 산에 또 다시 생명이 찾아오는 것이다. 또, 방크시아속 식물들은 산불이 나야 씨앗에서 싹이 튼다고 한다.



  살아있는 생물은 내외의 변화 속에서 안정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물이 더러워지면 물속의 수많은 미생물과 생물들이 오염을 분해시키고 오염물질을 다시 먹이와 같은 새로운 자원으로 재이용한다. 물 자체도 정화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물질도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자정작용을 통해 순환고리를 유지시키려 한다. 우리의 몸속의 혈관이 막히면 병이 발생하듯 지구의 순환고리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지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생물에게 면역체계가 있듯 지구도 resilience(리질리언스) 즉 회복력이 있다.



  46억년 지구역사를 1년으로 나타내면 인류의 등장은 12월 31일이며 23시 59분에 문명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 출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인류가 지구의 항상성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단 사실은 들을 때마다 새롭고 신기하다. 가끔씩 나는 인류가 지구의 암덩어리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자신의 원래해야할 기능을 망각하고 주변의 정상세포까지 파괴하고 증식하는 모습이 지구의 생태계에서 산업화와 도시화의 모습과 닮은 것 같기 때문이다.


   빌딩들과 아스팔트가 빗물이 지하수로 가지 못하게 막고는 빌딩에서는 폐수가 아스팔트 위에서는 매연이 주변 자연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문제는 인류가 너무 과한 나머지 지구의 부하량을 초과해서 지구의 회복이 힘들다는 사실이다. 인류도 과부하의 피드백으로 인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류도 인류 나름대로 이를 해결해보고자 하수처리장, 탄소배출권, 환경규제 등으로 많은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그리 탐탁지 않다. 왜일까. 인간의 과잉소비 탓일까 인간의 노력이 아직도 부족한 탓일까. 많은 일반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하려한다. 



  대학교 1학년때 생태윤리란 과목의 첫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질문을 하셨다. 재생가능에너지는 말 그대로 태양에너지나 풍력, 조력 등과 같이 재생산이 가능한 자원으로부터 얻은 에너지이다. 그럼 화석에너지는? 그 때의 나도 내 동기들도 모두 당연한 듯이 재생불가능한 에너지라고 답했었다. 하지만 교수님은 재생가능에너지라고 답을 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힌트는 시간이다. 인간의 시간에서는 석탄, 석유는 재생산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의 시간에서는 지구 어디에선가 지금도 천천히 아주 조금씩 석탄, 석유는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 이유때문일까 실제로 재생가능에너지는 1)재활용이 가능하고 2)고갈우려가 적고 3)지구의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3가지 조건을 만족해야한다. 교수님의 문제는 일종의 넌센스 퀴즈였지만 결국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은 지구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그렇게나 다르다는 것이다. 가이아는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 시간이 인간의 시간과 너무나 다른 나머지 인간들도 자연을 돕기 위해 많은 행위를 하고 있지만 그 인위는 자연이 될 수가 없다. 인위적으로 더 깨끗한 물을, 더 맑은 공기를 만들기 위해 정화처리를 하지만 우리는 이를 위해 화학약품, 에너지, 또 다른 자원을 소비한다. 지금 현재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를 담보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나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한 듯 보이지만 해결을 위한 또 다른 소비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눈에 불 보듯 뻔하다. 소비의 결과와 인류의 낙관적인 기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과소비와 과부하 된 자연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