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이 슬럼프
슬럼프는 매 순간이다.
늘 어떤 작업을 끝내면 한참 놀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음 작업을 생각하면 머리가 하얘진다.
내가 그림을 어떻게 그렸더라? 생각하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올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간들은 나 스스로에게 야박했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손에 잡히지도 않은 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알바도 해보면서 과연 나는 무얼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생각했다.
늘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무얼 할 수 있는 사람일까?
머릿속에 나는 무척이나 많은 걸 해야만 하는 사람인데 현생에서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늘 나에 대한 기대는 꼭대기인데 현재는 늘 피곤해서 골골대며 침대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며 보내는 일인일 것이다.
며칠 전 지인이 나에게 '주말의 공원' 두 번째 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자신도 그 책을 보고 용기를 내어 자기만의 책을 만들었다는 말과 함께. ㅎㅎ 누군가에게 도전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한 행동으로는 의미 있겠지만 내가 독립출판한 '주말의 공원'은 참 코로나시기에 아무런 행사도 나가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그냥 재고처리 1순위 같은 느낌이다.
그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활동을 꾸준히 해야 하고 더욱이 그 연장선의 작업을 계속 이어 가야만 하는데 참... 나에겐 그런 에너지가 없다. 그래서 그냥 그런 탓만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지인의 작업들을 되돌아보면서 언제까지 그냥 구시렁거리기만 할 것인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글이 부족하다면 글을 채우고, 드로잉이 두렵다면 일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씩이라도 다시 시작해 보자.
그래서 이런저런 예전의 방법들...
누군가와 함께 드로잉을 한다.
챌린지를 한다.
이런 방법들을 생각해 보다. 이제는 뭔가 더 다른 흐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젠 하나를 해도 좀 더 깊이 들어가야 나 스스로 만족을 할 것 같았고, 하나의 글을 써도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만족할 것 같다. 그래서 기존의 방법이 아닌 나만의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나의 참 낙서 같은 톤으로 작업의뢰가 들어왔다. 우연치고는 재밌고 나 스스로에게도 뭔가 신의 유머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신의 유머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걸 깊이 있게 깨닫는다.
더 멋진 그림에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에서 나의 목소리를 찾는 법.
참 오랜 기간 동안 돌고 돌아 나를 그냥 안아줄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늘 주저주저하고 온전히 안아주지 못해 왔던 지난날들이 스쳐가고 이제는 나와 함께 차근차근 걸어 나가보자 다짐했다.
2023년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2024년은 또 많은 질문들로 채워지겠지만
그때 다시 그 질문의 답을 생각해 보며 살아가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 손잡고 그냥 지금을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