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원작 소설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해석, 동시대에 더욱 부합하는.
장건재의 필모그래피는 여러모로 독특합니다. 해외에는 여전히 종종 보이는데, 한국에는 잘 안 보이게 된 언더 혹은 오버그라운드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감독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할까요. 장편 데뷔작이었던 2010년 <회오리바람>을 시작으로 중편 영화 2013년 <잠 못 드는 밤>을 연출할 때만 해도 계속 익숙한 독립영화의 바운더리에서 활동을 할 줄 알았는데, 2015년 <한여름의 판타지아>부터 어딘가 다른 모습을 그려냈죠. 작품 자체도 <수자쿠>나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등을 연출한 가와세 나오미가 주축으로 있던 나라국제영화제의 제작으로 만들어졌으니 더욱 그랬지만, 좀 더 다른 벡터로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연출을 선보이고 싶다는 모습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오랜 시간 공백이 있었죠. <한국이 싫어서>는 그 공백의 초창기였던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APM에서 처음 프로젝트의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차기 연출작이 계속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 장건재는 직접 카메라를 드는 대신 자신이 세운 영화사 ‘모쿠슈라’를 통해 프로듀서 역할을 하기도 했었죠. 장건재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수면 위로 올라왔던, 연상호가 극본을 맡았던 티빙 오리지널 및 OCN 드라마 <괴이>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22년 <달이 지는 밤>으로 다시 장편 작품으로 복귀했지만, 장건재의 길은 이래저래 그 전의 모습이 그랬던 것처럼 결코 단선으로 가지 않습니다. <달이 지는 밤>을 비롯해 바로 전작이었던 <최초의 기억>은 각각 김종관, 안선경과 공동 연출을 했고 자신의 시각을 드러내기보다는 마치 가와세 나오미의 테이스트가 일정하게 담겨 나온 <한여름의 판타지아>처럼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공동 연출자의 색채를 많이 담아내려 합니다. 그러면서 이전 단독 단독 연출작인 2023년 개봉작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처럼 실험적인 연출을 고민하는 모습도 더욱 늘어나고 있죠.
장건재의 이전 작품 이야기를 좀 길게 꺼내는 이유는, <한국이 싫어서>가 놓인 모습이 이래저래 장강명의 쓴 동명의 장편 소설과 분명 조응을 하고 있지만 장건재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이전까지 수행했던 해석과 접근의 방식을 작중에서 늘리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어떤 지점에서는 장강명의 원작에서 드러냈던 방식과 충돌하기도 합니다. 다만 장건재의 이전 작품처럼 강하게 드러내지는 않아요. 작품의 제작에는 오랜 시간 독립영화 제작 및 배급을 맡고 있는 인디스토리가 참여하기는 했지만, 다시 또 옛날 우노필름의 차승재가 존재하고 KT 자회사이던 시절 영광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메이저 영화를 지향하는 싸이더스가 공동 제작에 참여하고, 해외 배급에는 쇼박스를 맡는 등 영화 자본도 어느 정도 참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제작비가 4억원으로 낮은 편이어도, 고아성이 주연을 맡는 것도 가능했을 터이고요.
원작, 영화 모두 제목대로 ‘한국이 싫어서’ 해외에서의 삶을 택한 청년 여성 ‘주계나’(고아성)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원작이 주계나가 독백의 형태로 자신의 과거와 한국을 떠난 이후의 삶을 풀어내는 것처럼, 영화 또한 고아성의 나레이션을 통해 비슷한 전개를 취합니다. 선형적인 전개가 아니라 과거의 삶과 현 시점의 삶을 교차하여 풀어내는 것도 비슷하죠. 집안이 풍족하지는 않고, 누구나 선망할 대학을 나오지 못한 채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는 20대 여성이 한국에서 크고 작은 감정의 동요 속에 놓이는 상황들, 이를 더는 참을 수 없어 해외에서의 삶을 택하지만 그 역시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하는 것도 비슷하고요. 이렇게 영화는 원작의 많은 부분들을 꽤나 충실하게 재현하지만,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조금씩 방향성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단순히 계나가 한국을 떠나 새롭게 정착한 곳이 원작은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영화는 그 옆 뉴질랜드라는 차이나, 계나가 한국과 이주처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의 차이 같은 사소한 차이는 아닙니다. 장강명과 장건재는 같은 설정과 흐름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코 같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강명은 <한국이 싫어서>는 물론 전후의 <댓글부대>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등의 작품에서 취하듯 모순 속에서 ‘자조’하는 시선에서 몸부림을 관찰합니다. <한국의 싫어서>의 계나가 그렇듯 자기가 놓인 이 사회와 시스템이 참으로 싫고, 탈출하려고 하지만 사실 장강명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 시스템이 규정한 움직임에 참으로 충실한 이들이기도 합니다. 시스템이 싫으면서도, 시스템이 규정한대로 움직이는 이들은 점차 자신이 처한 모습을 인식하고, 그 모순에서 각자는 중대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냥 어쩔 수 없다며 넘어가든, 파멸하든, 아니면 얇디 얇은 희망에 의존하든.
그런데 장건재의 작품은 자신이 놓여 있는 환경에 대한 ‘불안감’에 초점을 좀 더 맞춥니다. 지금 당장이 막막한 사람은 더욱 앞이 막막해서 놓이는 고민을, 지금 당장은 아무 일이 없는 이들에게는 ‘언젠가는 벌어질 수 있는’ 불안의 가능성을 포착해왔습니다. 그러기에 영화는 원작처럼 한국이 너무나도 싫지만, 사실 한국의 여러 관습이나 일반적인 관행에 너무나도 익숙한 계나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계나의 이후 행동 양태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의 계나는 자신이 모순적인 존재임을 알고 있는 것을 넘어, 극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그러한 자기 자신이 어떻게든 변하고 싶음을, 자신이 그렇게도 닮고 싶지 않아하던 귀결이 반복되는 것에 적지 않은 ‘불안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극의 장소를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옮긴 것은, 현실적인 로케이션 문제도 있었겠지만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이 계나의 불안과 결코 무관치 않음을 은연 중에 드러내려 했던 선택 같기도 하죠.)
전반부에서 서서히 드러나던 차이의 누적은 자연스럽게 영화가 원작과 비슷해 보여도 결코 같지 않은 경로를 향해 흐르도록 합니다. 원작과 영화 모두를 아우르는 ‘자신의 사고가 근간하는 오랜 거주지역’에 대한 사고방식과, 이를 탈출하고 싶어하는 심리를 바라보는 차이로 이어집니다. 원작이 탈출해도 결코 쉽게 바뀌는 것이 없음을 재확인하며 그에 침잠하는 인간의 유형을 그린다면, 영화는 이를 시인하는 이상으로 그럼에도 분명 어떠한 변화는 이뤄졌으며 계속되는 변화가 결코 불가능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변화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작을지는 몰라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아님을 영화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의 차이를 거의 모든 장면을 계속 혼자서 이끌어 나가야 하는 고아성의 연기와,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심하게 구성된 연출이 더욱 인상적으로 드러냅니다. 고아성이 본격적으로 심리 묘사를 드러내기 시작한 작품이었던 <우아한 거짓말>이나 <오피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드러냈던 것처럼 고아성은 모순과 불안을 몇 겹으로 지니고 있는 인물의 모습을 또렷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짧은 대사나 행동 속에서도 여러 방어기제나 회피가 있음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에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흐르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비춰집니다. 연출은 결코 하나의 맥락으로서 말할 수 없는 계나의 캐릭터를 더욱 관객들이 인식하기 쉽게 구성되고 있습니다. 분명 계나의 주변에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한국이든 뉴질랜드에서는 심리적으로 홀로 있게 되는 계나의 상황을 공간의 여백을 통해서 더욱 강조합니다. 특히 후반부에 위치한 패스트푸드점의 광학적인 연출은, 해당 장면을 계나가 지금 어떤 형국에 놓여있는 지를 그 자체로서 확연하게 보여주는 인상적인 시퀀스로 만들어 냅니다.
비록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역설적으로 영화에서 아쉬움이 두드러지는 부분은 원작의 노선대로 흘러가는 장면들이에요. 분명 원작이 있는 작품이니, 원작에 어느 정도는 충실할 수 밖에는 없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영화는 원작의 상당수를 가져오면서도 결코 원작대로 흘러가지는 않고 있습니다. 영화의 계나와 원작의 계나는 비슷해 보이지만 절대 같지 않은 존재가 되다보니, 원작의 모습대로 움직이는 계나의 모습은 이와 다른 영화 속 계나의 모습과는 어딘가 미묘한 불협화음을 낳게 되는 것이죠. 이미 상당한 부분에 장건재의 지난 작품들이 흘러온 경로처럼 각색과 변주를 한 만큼, 더 한 발짝 나아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원작’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니 원작에서 완전히 엇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마무리된 뒤에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장건재가 더욱 세심하게 해석하며 도출했을 계나나 주변 사람들의 모습으로 영화의 다른 부분을 더욱 채우는 것이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긴 해요. 이런 살짝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장건재의 해석으로 영화가 된 <한국이 싫어서>는 2020년대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 여성이 어떠한 불안을 안고 있는지, 이를 지우기 위해 어떠한 삶을 각자 살아가는지를 인상적으로 짚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작중 계나의 동생으로 등장하면서 OST도 맡은 뮤지션 김뜻돌의 연기는 생각 이상으로 자연스럽고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놀라움을 주고, 특별출연으로 등장하는 코미디언 정이랑의 모습도 도구적인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조연으로 등장한 <나는보리> 등이 그랬던 것처럼 마냥 앝지 않은 포인트를 주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한 지점이고요. 어떤 의미에선, 나올지 안 나올지는 몰라도 감독판이 왠지 모르게 기대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