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급조되어 진행된 행사, 만화 등 한국 문화 정책의 현실을 보이는
* 2024 월드웹툰페스티벌은 9월 29일(일)까지, 서울 성수 에스팩토리 및 그 일대에서 열립니다.
올해 1월에 정말 의미를 알 수 없는 소식이 있었다. 두 번째로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된 유인촌이 ‘만화 웹툰 산업’ 발전 방향 관련 계획을 발표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가운데 “웹툰판 넷플릭스 한국에서 나오도록 하겠다”에 이어 “만화웹툰판 칸 영화제 같은 국제 시상식”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내용을 꺼냈기 때문이다.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401231354001) 아무리 최대한 이해를 한다고 해도, 이미 한국에는 BICOF(부천국제만화축제)의 부천만화대상이 있지 않나. 결국 이미 문제가 있던 행사가 코로나-19를 거치며 와르르 무너지며 명맥이 끊긴 상태이긴 하지만, 명색이 한국 최초의 만화-애니메이션 전문 행사인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도 있었다.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문체부와 콘진은 이미 ‘대한민국콘텐츠대상’이라는 콘텐츠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시상식을 하고 있지 않나.
처음에는 그래도 말만 이렇게 하지 부천만화대상을 좀 더 확장시키려는 것이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8월에는 별도로 시상식을 열겠다는 구체적인 보도자료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개된 일정은 무려 그 다음 주에 부천국제만화축제가 낀 일정이라서, 일정 조율은 제대로 된 결과인지가 걱정되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예고한 것처럼 이 행사는 ‘월드웹툰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9월 26일, 서울시 성수에서 온갖 팝업스토어가 열리기로 유명한 (코로나-19 시기 서울국제도서전을 열기도 했다.) ‘에스팩토리’에서 행사가 열리고, 거기만으로는 뭔가 공간이 부족했는지 그 주변에서 팝업스토어 많이 여는 공간 두 곳을 추가적으로 빌렸다.
말은 ‘만화웹툰판 칸 영화제 같은 국제 시상식’이라고 꺼냈지만 시상식을 4일 내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행사장에서도 시상식 관련 부스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국제 시상식이라 해놓고, 한국 외 작품은 특별상에서 딱 한 작품이 끝이다;) 실질적으로는 웹툰을 중심으로 한 국가 차원 행사를 새롭게 만들었다고 보는게 나을 것 같다. 특히 행사의 주체에 문체부, 콘진 외에도 서울특별시, SBA 서울경제진흥원(구, 서울산업진흥원)이 참여를 했다. 이 행사는 어떤 의미에선 이전 서울시 차원에서 돌아가던 SICAF의 후속적 성격이라고 봐도, 틀리지는 않을 모습이다.
그렇다면 행사의 주된 모습은 어떨까. 행사는 거의 80% 가량이 웹툰 관련 기업(플랫폼, 에이전시, 스튜디오 등)의 홍보 부스 및 팝업 스토어로 채워져 있다. 에스팩토리 외부에서 빌린 장소 두 곳도 각각 디앤씨미디어(<나 혼자만 레벨업>, <전지적 독자시점>), 그리고 박태준만화회사(더그림엔터테인먼트)에 할당한 구회이다. 전시라고 할 만한 모습이 없는 건 아닌데, 좀 더 내용이나 구성의 차원에서 밀도 있게 채워진 부스는 (이제 다음 주에 부천국제만화축제 여는…)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그리고 열혈강호 30주년 기념 부스 정도이다. 실질적으로는 행사 개막 첫 날 웹툰 시상식, 그리고 웹툰 관련 캐릭터 굿즈를 파는 팝업 스토어들의 집합체에 가까운 행사라고 보는게 나을 행사이다.
분명 각 웹툰 작품의 팬들이 보기에는 흥미로울 부분이 많을 것이다. 행사에 참여한 분들의 몇몇 이야기를 듣기로는 실질적으로는 두 세달 안에 기획이 된 것 같은데, 그렇게 급조한 행사라고 생각하면 이 행사를 어떻게든 만들어라고 지시를 받은 분들이 고생을 많이 했고, 그 덕분에 일단 볼만한 수준으로는 행사를 만든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이야기는 어렵다. 말로는 ‘만화웹툰판 칸 영화제’를 운운하고, 실질적으로는 최소한의 해외에 대한 고려도 느껴지지 않던 시상식에, 행사의 구성은 이전 SICAF나 BICOF에서 부스 파트만 따로 떼어 놓아 만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팬이 보기에 흥미롭고, 행사가 그럭저럭 즐거웠다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앞에서 꺼낸 이야기들이 큰데, 이 말들은 그냥 새로운 행사 하나 더 해보겠다고 꺼낸 핑계를 위한 핑계에 불과했던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에스팩토리라는 행사 공간이 그리 크지 않아서라고도 말할 것 같은데, 코로나-19 당시에 이 곳에서 열었던 서울국제도서전이 이 공간에서 최대한 유기적인 구성을 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처럼, 어떤 종류의 공간일지라도 최대한 구성이나 드러내려는 바를 어떻게 고민했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새롭게, 그것도 ‘국제적’이라는 수사를 꺼내면서 새로운 행사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는지 유인촌 장관이나 문체부/콘진은 행사의 추진 과정에서 얼마나 큰 고민을 해왔을까. 몇 년 전 근처에 SWA(서울웹툰아카데미)나 사이드비 같은 만화와 관련되 여러 공간이 생긴 상황인데, 그런 주변 생태계와의 연계도 거의 보이지 않는 마당이다.
이래저래 마치 ‘옥상옥’ 같은, ‘행사를 위한 행사’로 느껴지고 만다. 이래저래 어떻게든 눈으로 보이는 성과를 만드는 식으로 귀결되는 1980년대 이후 몇 십년째 이어지는 한국 문화 정책의 난맥상이 여전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한국 만화가 다른 나라들을 꼭 이길 필요도 없고, 어떤 이들의 철없는 말처럼 ‘정복’할 이유도 없다. 규모가 작을지라도 지속적인 창작-향유의 순환이 이뤄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창작자들이 불합리함을 느끼지 않게 창작 노동의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고, 거대 플랫폼에 수십개의 CP가 붙는 식으로 재편된 현재의 웹툰 산업이 문제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계속 주시하며, 쉽게 하나의 장르로만 쏠리지 않게 공공적인 역량을 투여하고, 인기 있는 작품이 왜 인기 있는지를 주목하는 이상으로 절대적인 인기도는 낮아도 여러 차원에서 들여다 볼 여지가 있는 작품을 다시 보게 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실제 만화를 보는 독자의 차원에서, 그것도 다양한 젠더, 연령대, 경향과 지향, 지역 등을 안배하며 접근하는 정책의 설계도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상항은 이전의 정권들에서도 만화 정책을 비롯한 문화 정책에서 잘 시행되지 않았던 것이긴 하다. 우리는 여전히 ‘<쥬라기 공원> 수익이 현대자동차 몇 만대’ 같은 수식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계속 몇몇 문화 운동에서 이러한 상황의 타파를 말하지만, 최소한의 거버넌스적인 소통도 잘 이뤄지지 않고, 지역의 사회 운동 동력도 떨어지며 ‘산업적 가치’ 이상의 고려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이런 행사가 이전에 대한 반성적 평가, 이후에 대한 공론장이 없이 그냥 열리는 것이다. 분명 몇몇 부스는 구경하기에 좋았고, <열혈강호> 30주년 기념 부스 같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작품의 매력과 역사, 맥락을 알리는 전시는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결국 행사의 추진을 지시받는 실무진, 각 부스를 준비하는 현업의 사람들만 갈려나갈 뿐이지 않을까. 일단, BICOF 같은 기존의 행사나 어떻게 더 잘 치러질 수 있도록 궁리를 하고, 이렇게 갑자기 맥락 없는 행사를 만드는 대신 SICAF나 부활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