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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달 Jun 20. 2016

앙코르와트가 가라앉는다고?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엄마, 우리 여행 갈까?"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뿌듯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엄마와의 여행을 계획한 후다. 엄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말하며 어딜 갈지 고민된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부산에 가자고 했다.


'부산'은 엄마의 젊은 시절을 간직한 도시다. 남들보다 조금 더 애틋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곳. 평소에도 시간이 나면 부산에 놀러 가자고 종종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왜일까. 부산에 가자는 엄마에 말에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학생 때부터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녔던 나는 알게 모르게 엄마 아빠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에도 한 번도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평소 지구촌 소식이 뉴스에 나오거나 세계 여행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부모님. 이제는 어느 정도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겼음에도 쉽게 가자고 하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져
100년 뒤 앙코르와트가 가라앉을 수도 있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이 말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꼭 앙코르와트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건 왜일까?


어쨌든,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탄 비행기에서 다리가 저리기 시작하고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우리는 캄보디아에 도착했다. 새벽 1시, 긴~ 줄을 기다려 비자를 받고 꽤 엄격한? 입국 심사를 거친 뒤 우리는 호텔로 향했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에는 웰컴 선물이라며 생망고 2kg이 준비되어 있었다.


엄마와 나는 잠시 눈빛을 교환한 뒤 게눈 감추듯 망고를 해치웠고, 푹신푹신한 침대에 大자로 누웠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커다란 창문을 덮고 있는 커튼 사이로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벌써 아침이 밝은 것이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스르륵 눈을 감았다가 뜬 느낌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커튼을 힘차게 걷었다. 그러자 '오 마이 갓!'.


포근한 이불속에서 눈을 뜬 엄마는 창문 밖 풍경에 말을 잃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엄마는 "행복하다"고 한 마디를 했지만 사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았다.



우리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씨엠립 시내까지 약 1시간을 걸어가며 동네를 구경하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쇼핑을 마음껏 하기로 했다. 엄마는 캄보디아에서만 볼 수 있는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들을 보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캄보디아어는 물론, 영어도 잘 못하는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가격을 잘 깎을 수 있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지만ㅎㅎ.


세 시간쯤 걸으니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점심 먹을 시간도 가까워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조용한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오후에는 앙코르와트를 보러 갔다. 캄보디아의 교통수단 툭툭이를 타고.



캄보디아의 볼거리는 주로 자연경관이다. 하지만 이건 자연이라기엔 믿기 어려운 풍경들이랄까. 캄보디아에 가기 전에는 그저 앙코르와트 하나가 멋진 건축물이라고만 생각했다. 다섯 개의 지붕(?)이 있는 역사적인 건물. 그런데 이건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앙코르와트 입장 티켓을 구입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생각했던 건 정말이지, 빙산의 일각이었다.


앙코르와트를 보기 전 우리는 따프롬, 앙코르 톰, 바이욘 사원을 먼저 들렀다. 따프롬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 톰을 만들기 전에 모친을 위해 만든 불교 사원이라고 했다. 거대한 나무가 사원을 감싸고 있는데, 지금은 폐허가 된 상태다. 사원 내부로 들어갈수록 나무로 인해 붕괴된 곳이 많아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인데, 나무 보존을 위해 보수공사멈춘 상태라고 들었다.


이 정도쯤 되니 앙코르와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구분이 어려워졌다. 그냥 멋지다는 생각뿐, 자세히 알기엔 너무 먼 캄보디아였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여행자들의 사진을 떠올리며 갔던 캄보디아에서 광활한 풍경보다 소소한 재미들을 찾게 되니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조각 하나하나에 깊은 뜻이 담겨있었고 스토리가 있는 짜임새 있는 구성까지. 지루할 틈이 없었고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해 호기심이 생길 정도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바로 '통곡의 방' '보석의 방'. 특히 통곡의 방은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유명한 곳이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잊지 못해 통곡을 했던 방이라는데, 소리를 내도 아무 반응이 없는 방에서 가슴을 치면 엄청난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조각품을 보면 하나하나 사진에 담지 않고는 결딜 수 없는 성격이지만, 캄보디아 여행에서는 사진 찍기를 포기해야 했다. 너.무.많.아.서.  또 너무 멋있어서 사진으로는 어떻게도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캄보디아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그저 가슴에 간직하기로 했다. 꼭 다음에 다시 와서 보자며, 여행은 항상 옳으니까.




엄마와의 첫 여행은 정말이지 새로웠다.


지금까지 알았던 엄마의 모습은 예고편에 불과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엄마는 이국적인 풍경에 너무도 잘 적응했고, 오히려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함께 여행을 하게 된 것이 뿌듯했지만, 이제야 이런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젊은 시절부터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살아왔을 엄마가 나를 낳고 키우면서 희생했을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여행하는 내내 웃음기가 떠나지 않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마지막 사진은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게 만드는 깨알 같은 귀요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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