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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달 May 17. 2016

로맨틱 산토리니

산토리니가 궁금한 당신에게

긴 생머리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 가사도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분 좋게 자전거를 타는 그 여자의 모습이 TV에 나온 후 인기 여행지가 된 바로 그곳. 산. 토. 리. 니. 


흰 벽과 파란색 지붕으로 지중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곳을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그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마을, 아름다운 풍경과 여유가 있는 동네인 줄만 알았다.


상상과 현실은 차이가 있는 법!

산토리니 땅에 첫 발을 디디기도 전에 나는 사람에 치어야 했다. 같은 배를 탔던 여행객들에게. 육지에 가까워지는 걸 보면서도 나는 격하게 붙어있는 옆사람과 떨어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배에서 내렸고, 한참 후에야 제대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눈 앞에는 정말 맑은, 온갖 파란색이 다 들어있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산토리니 메인 거리(?)로 가는 버스를 탄 나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어영부영 하루를 보낸 뒤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스식 아침식사는 유럽의 여느 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갓 잡은 손가락만 한 새우를 기름에 달달 튀기고 온갖 야채와 라이스를 넣고 매콤한 향료와 볶아서 줄 것 같았지만, 현실은 이랬다. 동네 슈퍼에서 사 온 듯한 퉁퉁한 크로와상과 빵, 오렌지 주스, 커피.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나는 멋진 풍경을 찾아 나섰다. 파란색 지붕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 마을 골목은 온갖 액세서리와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인들로 넘쳐났다. 단순한 목걸이, 귀고리도 유리로 만들어 독특한 디자인이 많았다.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하지만 매우 좁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골목을 관광객들이 대거 이동하니 나는 소지품을 챙기는 데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금요일 저녁 지하철 2호선을 탄 느낌이었달까.



산토리니의 지붕은 다 파란색이냐고?

이건 마치 "베니스에 물길만 있냐" "인도에 사막만 있냐"고 묻는 것과 같다. 거의 대부분의 지붕이 파란색 아니면 흰색이었지만 TV에서 봤던 깨끗하고 깔끔한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분위기에 조금 실망했지만 오후가 되면서 산토리니의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노을'이다.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새벽과 노을질 무렵이라 하지 않는가. 세계 어디라도 노을 지는 풍경을 만난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 마련이다.


해질 무렵이 되자 사람들은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닷가 쪽으로 나왔고 난간 앞에 자리 잡았다. 지는 해를 보며 어떤 소원이라도 빌었는지 눈가가 촉촉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해가 지는 장면이 아니라 빛이 비치는 곳, 풍경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모습에 집중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들었던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빛을 찍어서는 빛을 보여줄 수 없다. 그림자를 찍음으로써 빛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던 터라 지금까지도 풍경사진을 찍을 땐 피사체의 반대편을 둘러보곤 한다. 이날도 사람들이 석양을 볼 때 나는 반대쪽을 바라보며 산토리니의 옆모습을 발견한 셈이다.


물론 해가 지는 모습도 참 아름다웠다. 이 사진처럼, 그냥 찍어도 화보가 되는 그런 동네다.


산토리니는 오랫동안 여행할 만한 곳은 아니다. 작은 마을인데다 별다른 것이 없어 이틀, 삼일이면 길을 다 외우는 것도 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도 멋진 풍경을 만나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와 선물까지 가득 사 올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만. 족. 스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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