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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달 Apr 02. 2016

필름 사진 속 유럽

'매혹의 도시' 프랑스 파리&독일 하이델베르크

때는 바야흐로 2006년. 시각예술 전공자였던 나는 해외에서 열리는 전시나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유럽 여행을 떠났다. 내가 갈 곳은 프랑스 파리와 독일 쾰른, 하이델베르크였다. 프랑스 파리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크고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가 열렸고 독일 쾰른에서는 큰 규모의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었다.


너무 어릴 적이어서 기억에도 없는 제주도 여행 이후 처음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를 간다는 것은 매우 긴장되는 일이었다. 두근두근. 나는 무언가 남기고 돌아오겠다며 필름 카메라와 수첩을 제일 먼저 챙겼다.



밤하늘의 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독일에서 프랑스로 떠나는 기차에서 나는 달을 보았다.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 시차 적응이 안되었는지 잠들지 못했다. 무엇보다 종이 찾기가 가장 힘든 여행이다. 가방에 고이 담아온 수첩은 어디에 있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밤기차는 자주 탔던 것 같다. 낮 시간에는 이동하는 시간이 아까워 주로 밤에 타곤 했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 다른 나라를 갈 수 있다니, 새롭다. 독일의 날씨는 너무 추운데 얼굴에 닿는 바람 느낌은 날카로운 듯 부드러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라곤 달 밖에 없어 괜히 긴장된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mp3에 새로운 음악을 채워 넣는다. 여행할 때 들었던 음악은 한국에 돌아간 후에도 그때의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번에는 재즈 곡들을 많이 가져왔다. 이어폰을 꽂자 온갖 잡생각이 시작된다.


첫날 공항에서부터 하이델베르크에 가는 동안 택시가 벤츠라는 사실에 놀랐던 것, 쾰른 성당과 미술관을 관람했던 것,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쇼핑했던 것...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참! 그렇게 유명하다던 맥주와 과자가 쓰고 짜다는 걸 느꼈던 것도.




필름 사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것

요즘 필름 카메라를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필름 생산량이 급격하게 줄었고, 현상을 하거나 인화하는 사진관도 많이 없어졌다. 그만큼 사용하기 편리한 디지털카메라는 발전했고, 이제는 컴퓨터를 이용하면 필름 느낌의 사진도 금방 뚝딱 만들어낼 정도다.


하지만 필름 사진만의 느낌은 디지털이 아무리 발전해도 재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색감이나 입자가 다른 점도 중요하지만, 한컷 한컷 찍는 사람의 기분과 느낌을 디지털로는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필름 사진은 한 장 찍는 것 자체가 '돈'이다. 게다가 사진을 보려면 현상과 인화를 거쳐야 하는 수고를 기꺼이 해야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다른 곳을 보면서 연사를 해대는 것은 그저 손가락으로 셔터를 누르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나는 필름 카메라를 챙겼지만(물론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도 가져갔다), 생각보다 많이 찍지 못했다. 가방에 카메라 두 개와 많은 양의 필름을 넣고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



유럽에서 돌아온 나는 필름들을 들고 사진관에 갔다. 필름 스캔을 맡기고 며칠 뒤 파일을 찾았는데 글쎄, 이렇게 코딱지만 한 사진을 주더라. (당황) 필름 스캔 시 사이즈를 크게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높은 편이어서 따로 말하지 않는 한 이렇게 코딱지만 한 사진을 돌려준다고. 얼핏 듣기에 맞는 말 같아 조용히 필름과 파일을 받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사진들이 내 마음엔 쏙 들었다. 얼마 있지 않아 외장하드 한쪽 구석에 보관되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여행사진을 훑어보면 더 애착이 가는 건 역시 이 필름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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