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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달 Aug 25. 2020

친구들의 생일을 챙기기로 했다

소소한 행복 주기

학창 시절, 친한 친구들 무리에서 누군가 생일을 맞으면 방과 후에 피자헛으로 몰려가 새로 나온 피자와 케이크를 자르고, 직접 쓴 손편지와 선물을 주고받고, 다 같이 이상한 가발을 쓰고 스티커 사진을 찍고, 노래방에서 목이 쉴 때까지 부르고 나서야 마무리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고, 취직을 하고...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친구들과 함께 생일 케이크를 자르던 기억도 소소한 선물을 주고받던 재미도 이제 온데간데없다. 어느 순간부터 나와 친구들은 카톡으로 생일 축하한다는 무미건조한 문자 몇 개 만을 주고받고 할 뿐이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형식적인 안부만 묻고 살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면서 메시지로 전할 수 없었던 속마음과 현실적인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가슴 아픈 일과 좋은 일들이 적절히 섞여있었다.

각자의 현실에서 노력하며 버티고 있는 우리가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모두 힘내자고 토닥토닥해주고 싶었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다.


2020년이 되면서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다른 몇몇 친구들도 출산과 육아를 시작하게 됐다. 나는 엄마가 된 친구들의 생일에 맞춰 영양제를 하나씩 선물하기 시작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자신을 챙기지 못하고 우울하거나 힘들어지는 때가 많다. 그 시간을 대신 지내 줄 수는 없겠지만 일 년 중 하루라도 소소한 기쁨을 주고 옛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선물에 대한 반응은 대략 비슷비슷하다.

사는 게 바빠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고.

친구에게서 선물을 받아본지가 오래되었다고.

학교 다닐 때의 추억들이 생각난다고.

그리고 생각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우리는 또 만나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각자의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키우면서 몇 년이 흐를지 모르겠지만 일 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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