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하다 보면
초반에 쏟아붓는, 어찌 보면 과잉의 노력이 결국 즐거움의 총량을 늘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할까. 초반의 이 급속한 성장의 직전을 만들어내는 것은 외부의 기준이라기보다는 대개 자기 스스로의 동기부여다. 빨리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든, 능숙함을 통해 빨리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열망이든, 내 마음속 저 목표점에 빨리 닿고 싶다는 욕심이든.
이 이야기를 일의 현장으로 가져와 일을 고용주와 나 사이의 거래 관계로 생각하면, 과잉의 노력을 쏟아붓는 시간을 셀프 착취라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크건 작건 스스로 목표를 정하면, 고용주와 나 사이의 제로섬 게임 바깥에 내 일의 또 다른 층위가 생겨난다. 과잉의 노력을 쏟아붓는 것은 고용주에게 필요 이상의 노동력을 갖다 바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내 삶에서 개인적 충만함을 위한 기울기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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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마음, 제현주. 어크로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오래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한다. 생각하고 마음을 먹고, 주변의 동의를 구하고도 다시 살펴보고 결정을 하거나 구매를 한다. 이 과정을 오래도록 반복하다 보면 어떤 선택이 나를 만족스럽게 하는지 선택의 경험치가 누적된다. 엑셀보다는 브레이크를 먼저 밟는 사람이면서도 충동적 이도록 나를 내버려 두는 몇 가지 예외 분야가 있고 경험치 누적으로 인해 선택의 속도가 무척 빨라서 기분에 따른 결정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중에 하나가 책 사기. 쫌생이가 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대부분의 소비는 자기 검열을 거친다. 그러나 책은 예외다. 책이라는 도구, 인류의 유산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쓰레기 같은 책을 산다 하더라도 그런 실패를 책 값으로 만회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여기고 그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켜켜이 좋은 선택이 쌓여가는 것이다. (책은 예외라고 해놓고 결국 내가 이 책을 왜 샀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언부언하고 싶지 않지만 불필요한 오해가 싫어서 결국 길게 말하는 편) 제현주 작가의 책이기도 했고, 일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좋은 말 좀 골라내서 이력서에 잘 가져다 붙여볼까 하는 마음으로 목차랑 처음 몇 파트를 가열차게 읽었지만 이직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그라들면서 몇 달 동안 책장에 있었다. 긴 연휴에 일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마침 이번 달 독서모임 주제도서로 다섯 명이 선택했고, 일은 내 삶에서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지금이야말로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다. 젊은 시절은 일을 열심히 하기에 좋은 때인 것 같다. 그 ‘열심’이 반드시 성과나 탁월함, 하물며 인사고과나 이직 같은 걸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어느 순간에는 잘하는 탁월함 이전에 무조건 꾸역꾸역 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서 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하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개인으로서는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지 체득하게 된다. 회사에 필요 이상의 노동을 제공하고 싶지 않은 권리 같은 것을 생각하다 보면 고민 없이 시간이 지나가고 결국은 분절된 자신으로 사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유능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나로서는 씁쓸하지만 그렇다. 입사하고 지금까지 거의 매일 능력치보다 어려운 일들이 쌓여간다고 느꼈다. 겨우 그 노력과 시간이 허망해지지 않도록 이 일에서 나는 어떤 디딤돌과 탁월함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막연하지만 하나의 방향, 해야 할 두 가지 일을 찾았다. 언젠가는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 되기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