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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곰 Aug 08. 2021

친구에게

느림보 두 사람이 느긋하게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며 살아갑니다. 현재 곁에 존재하는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가장 역사가 깊은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95년에 학교의 교실에서 만났어요. 경기도에 생겨난 신도시 속으로 분양권을 얻고 물처럼 밀려들어오는사람들, 가족을 따라 그 곳에 도착하여 낯선 표정을 짓던 어린이들, 그 많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우리는 잘도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학교에서 인사를 나누고, 성당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성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떡볶이나 어묵을 먹으며 친해지고, 그리고는 문턱이 닳도록 서로의 집을 오갔어요. 작은 일인용 침대에 빼곡하게 누워 시디플레이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서로의 책을 빌려 읽고 그 무렵 사랑하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시절의 청소년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 친구와 써본 바로 그 교환일기를 저희도 꽤 열심히 썼습니다. 일기장이 오가려면 그만큼 자주 만나야 하는데, 만나서 한참동안 수다하고도 일기장에 쓸 이야기는 늘 남아있었어요. 그러니까 몇시간을 떠들어놓고 "그 이야기는 시작도 못했다~ 일기장에 써~"라고 말하는 식이었달까요.


 마음이 멀어진 것은 아닌데 일상이 멀어지고 나니 모르는 지현이가 아는 지현이보다 많아졌어요. 지현의 세계는 여러 가지 이유로 깊고 단정한데 그 세계의 언어를 점점 덜 목격한다는 것이 어느 날에는 참 서운합니다. 우리는 가끔 편지를 쓰거나 둘 다 외국에 있을 때에는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야기를 나누고나면 언제나, 여러가지 색이 다양하게 묻은 색색의 알약들이 칸칸으로 분류된 통 속으로 들어가 정리되는 것처럼 마음이 정돈되곤 했습니다.


 살아오며 정리되지 않았던 어떤 마음들, 사라진 줄 알고 무심해졌었는데 문득문득 수면 위로 떠올라 나를 놀라게 하는 찰나들을 지현과 편지를 나누는 동안 좋은 자리에 둘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들어서 우리 교환일기를 써볼까, 오래전 그때처럼? 이라고 물었어요.


 느림보 두 사람이라 저희의 연재는 꽤 느긋하게, 아마도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냥 저희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더 이해하기 위한 여정일텐데, 그 여정을 함께하는 분들도 어쩌면 함께- 자신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물꼬로이 글을 사용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어딘가로 흘러가 어느 날 좋은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면 좋겠어요.


무겁지 않게 기대하며 시작합니다.


/ 예슬 씀.


너무 잘 아는 너를, 너무 궁금해하며.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서로가 친구라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함께 합니다.


/ 지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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