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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곰 Aug 08. 2021

마음에게 발언권을 주는 일

첫번째 편지, 예슬

여름밤에 우리, 전진희.

달리기를 시작했어. 지현이는 달리기를 마지막으로 한게 언제야? 나는 지난 겨울, 다시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몇 번 달리러 나가다가 심박수가 높아지는 느낌이 그리 즐겁지 않아서 그만두었었어. 그리고 올해 봄 어느 자리에서,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던 어떤 멋진 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다시 달려볼까?’ 생각이 들었지. 그것을 진심으로 무척 많이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다보면 그런 마법같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 같아.


런데이 라는 앱이 가르쳐주는 대로 달리고 있어. “이제 천천히 걷기를 시작합니다!” 하면 ‘오예!’ 하면서 걷고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하면 ‘네 해보죠!’ 속으로 대답하면서. 마지막에는 30분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게되는데, 그렇게 자주 듣다보니 어느새 굳건하게 믿게 되더라. 바깥에서 온 확실한 언어에 마음을 비스듬히 기울여두고 인터벌트레이닝을 하는 중이야. 그래도 십년 전에는 종종 마라톤에도 나갈만큼 달리기를 좋아했던 터라 그날의 트레이닝이 끝나갈 무렵에는 뭔가를 덜한 느낌이 들어서 괜히 아쉽고, 더 뛸 수 있을 것 같고, 더 뛰어볼까 싶고 그래. 신기하게도 매번.


피곤한것이 분명하고 그게 다 티가 나는데도 자러가기 싫어서 버티며 울상이 되는 어린아이처럼 딱 그 모양이지 않을까. 그런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은 “내일 또 재미있게 놀려면 지금 자야해. 얼른 침대로 가.” 라고 보통 이야기하잖아?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달리기를 마무리할 무렵에는 그런 얘기를 아무도 안해줘. 물론 보통의 나라면 스스로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면서 “오래 계속 달리려면 한번에 너무 무리하지마.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천천히 음미해.” 같은 어른의 말을 내 마음과도 다른데 힘주어 하고, 그럼 말 잘듣는 어린아이처럼 속수무책으로 그 말을 믿고는 집으로 갔을거야.


마음에게 발언권을 제대로 주지 않고 얼마나 살아온걸까. 그렇게 해야만 해서 하는 일들이 참 많은데, 왜 달리러 나와서까지 나는 착한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 싶었어. 그래서 말 안듣는 말썽쟁이처럼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더 달리고 있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채로 양화대교에 도착해서 고개를 한강 쪽으로 돌리고 숨을 크게 쉬는 순간이 정말 좋아.


이렇게 깨끗하게 신나는 마음도 흔한 마음이 아니니까 나는 마음에게 발언권도 주고, 확성기도 대어주었어. 하다가 지쳐서 멈추게 되면 나중에 또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심각했을까. 마음이 방방 뜨면 땅으로 끌어내리는 대신 신나게 방방 뛰면서 하늘로 손을 뻗어보는거야. 손을 잡고 애써 내려오지 않아도 때가 되면 마음은 다시 가라앉을테니까. 하늘과도 땅과도 잘 지내는 방법은 하늘과 가까워질 때에는 하늘로 두 손을 들어 반기고, 땅과 가까워질 때에는 땅에 두 발과 무릎을 내려놓고 안기는 일. 그저 그렇게 그 마음에 순응하는 일 같아. 아마 불안했던 것은 계속 들뜨거나 계속 가라앉을까봐 였을텐데 이제는 알아, 그것도 그 때 뿐이지.


돌아보면 착한 어린이도 딱히 아니었어 나는. 늘 엄마가 하는 말을 반대로 했거든. 예를 들면 파란 옷이랑 노란 옷을 손에 들고 엄마에게 “둘 중 뭐 입을까?” 질문하고 엄마가 “노란 옷이 잘 어울리네!” 하면 파란 옷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살았던 것 같아.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간 다음에는 청개구리 에너지를 발휘할 곳이 없었어. 그리고 무섭더라고. 내 인생을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런 결정을 하면 어때? 제안해주는 어른도 없는 세계가 주변 친구들보다 일찍인 고등학생때 찾아와서 그런지도 몰라. 청개구리 어린이는 어느덧 책임감 강한 착한 어른이 되어버렸어. 내 스스로 어른의 말을 나에게 하고, 그 말을 철썩같이 믿으며 움직이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인생이 어느 날 벼랑끝에 매달려서 위태롭게 흔들릴까봐 두려워했어. 벼랑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걷다가 발에 닿는 땅이 없어지면 날개가 돋아날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아무튼 겁이 많아.


그렇게 조심스럽고 무겁게 걸음을 놓으며 산 시간도 벌써 이십년 가까이. 이제는 좀 지친건가 싶고, 요즘 그래서 내 속의 청개구리 어린이를 잘 돌보려고 해. 마음 가는대로, 하던 것과 다르게 해도 큰 일 아닌 건 그냥 좀 봐주기도 해. 그러니까 마음에게 이야기할 기회도 주고, 왠만하면 멋대로 한번 해볼 수 있게 나를 키워보려고. 나의 요즘 핵심가치는 그래서 ‘자유’!


지현이는 요즘 자유롭니?




예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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