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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곰 Aug 08. 2021

나의 고통, 나의 기쁨

첫번째 편지, 지현

디센던트(The Descendants), 조니 클루니.

‘자유’라.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워서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한 주가 지나갔어. 할 일이 남아있으면 언제나 초조한 기분이 드는데 일주일 넘게 일이 아니라 자유라는 단어에 쫓기고 있다니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났어. 멍하니 빈 문서를 바라보다 미지근한 물에 몸을 씻으면서 지금 내게 있는 자유는 무엇일까 계속 생각했어.


 일하는 거 말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하고 싶은 만큼만 하는 자유. 이걸 자유라고 불러야 할지 게으름이라고 봐야 할지, 천성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신랑과 둘이서 살고 있으니까, 어른 둘이 느긋하게 사는 거지. 사람들은 살면서 다들 많은 일을 하잖아.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걱정을 포함해서 늘 해야 할 일이 많은 기분이었거든.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아마 언제까지도 해결할 방법이 없는 일들. 난 언제나 그 일의 목록이 단순했으면 하고 바랐어. 추상적이기보다는 손에 잡히는 분명한 일들. 그래서 외국에서 지내는 매일의 ‘생활’ 자체가 참 좋았어. 말도 잘 안 통하고 거기서 태어난 것도 아니니까 모르는 것도 많지만 그래서 먹는 거, 입는 거, 사는 거 자체에 집중하는 일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사소하지도 않고.


 처음 엄마 곁을 떠나서 외국에 갔을 때도, 결혼하고 양쪽 부모와 친구들을 떠나 더 멀리 갔을 때도 향수병이 없었어. 생경한 언어와 풍경이 주는 외로움보다 반대편 땅에서만 자라는 이름 모를 채소를 먹는 아침이 즐거웠어. 기꺼이 해야 할 과제 같았어. 멀어져 보니 내가 그리워할 건 나밖에 없더라고.


 그런데 돌아갈 곳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생각을 하는 여름이야. 일곱 번째 회사에 들어가고 두 번의 이사를 하고 첫 차를 사는 사이에,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렸어. 가급적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고 도망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겨우, 지금의 내가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이에도, 천진하게 멀리에서 웃거나 울고 있을 동생과 한낮 무더위에 시위밖에 할 수 없는 늙어버린 엄마와 아빠들을 생각해. 다르게 살고 싶어서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면 결벽이 두려움이 되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멈출 수 없는 런닝머신 위에서 그런 생각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부모가 된다는 것, 아픈 아이를 키운다는 건 너무나 요원해서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한숨들이 쌓여가지만 그럴 땐 달릴 수밖에. 실제로 달리기를 한 게 언제였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거 같아. 그런데도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때라서 무던히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어. 구름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여름 동안 티도 안 나는 책임을 이고 지고 종종 걸음을 걷고 있어. 나의 자유 말고, 말하지 못하는 내 가족의 자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한 편으로 너무 치우치지 말아야지, 울면서 달리지 말아야지, 타협하는 걸 내가 두 번째 자유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밝고 즐겁게 이 삶 속에서 달려야지.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분명히 그런 여행이었을거라 믿어의심치 않는 너의 신혼여행은 어땠니? 


“Goodbye, Elizabeth. Goodbye, my love, my friend, my pain, my joy. Goodbye. Goodbye. Goodbye.”


지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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