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객의 입맛을 저격한 스릴러 뮤지컬
뮤지컬 '레베카'는 마치 독특한 팝업카드를 연상시킨다. 작품은 2013년 한국 초연 당시 한국 대형 뮤지컬 시장에서 드물었던 '스릴러' 장르를 내세웠다. 스릴러 장르가 지닌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한껏 살린 작품은 2021년까지 여섯 시즌이 이어질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은 스테디셀러다. 무엇보다 작품 흥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의 한국 로컬라이징 프로덕션으로, 제작사는 다년간의 뮤지컬 제작 경험을 통해 한국 관객의 취향에 알맞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레베카'는 스릴러의 거장 히치콕 감독의 동명 영화로 이미 유명세를 치른 영국의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를 원작으로 탄생했다. 뮤지컬 '엘리자벳', '모차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등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각각 대본/작사와 작곡을 맡아 완성도를 높인 것도 놓칠 수 없다. 소설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른 뮤지컬은 거대한 저택에서 일어난 은밀한 비밀, 그로 인한 사건들을 긴장감 넘치게 다루며 큰 흥미를 이끌어낸다. 또한 여기에 막심과 '나(I)'의 로맨스,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 강렬한 킬링 넘버들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던 평범한 이야기에 독특한 캐릭터를 넣어 색다른 즐거움을 선물한다. 가족 없이 (그나마 극 초반 함께 여행을 다니는 반 호퍼 부인마저도 '나(I)'에게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혼자 살아 온 '나(I)''가 부유한 가문의 막심과 사랑에 빠지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이를 둘러싼 사건이 단순하지 않게 된 이유는 '레베카'의 모든 캐릭터가 쉽게 종잡을 수 없는 입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나 젠틀하고 존경을 받았던 막심, 그의 첫 아내 레베카 부인, 어딘가 음침하게만 보였던 집사 댄버스 부인은 각자 은밀한 비밀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비밀이 서서히 무대 위로 드러나며, 또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렇게 '레베카' 속 캐릭터들에게서 시작된 상상력은 하나의 퍼즐 조각이 된다. 결국 이야기가 흐를수록 거듭되는 반전은 흩어진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해결의 과정이다.
어두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곳곳에 등장하는 통쾌한 장면도 인상 깊다. 가난하고 여리기만 했던 '나(I)'가 맨덜리 저택에 가득 차 있던 레베카 부인의 흔적을 지우는 강력한 수를 둘 땐,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릴 정도다. 또 작품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강렬한 뮤지컬 넘버 외에도 서정적이거나 흥겨운 분위기의 음악들은 적절한 완급 조절로, 관객들을 피로하지 않게 만든다. 물론 '레베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댄버스 부인의 서슬 퍼런 고음도 전율을 선물하기 충분하다.
맨덜리 저택을 소유한 최상류층 신사 막심 드 윈터 역에는 민영기, 김준현, 에녹, 이장우가 캐스팅됐다. 맨덜리 저택의 집사 댄버스 부인 역엔 신영숙, 옥주현이 출연한다. 여리고 순수하지만 강인하게 성장하는 나(I)' 역에는 임혜영, 박지연, 이지혜가 출연한다. 2022년 2월 2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 온라인 연예매체 <뉴스컬쳐>에 기고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