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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베르 May 12. 2020

이야기를 담은 작곡가

그는 작가다. 15살에 자서전을 쓰기도 했던 그의 글 속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먼저 자신을 투영시킨 두 개의 캐릭터가 있다. 그 하나는 ‘플로레스탄’으로 때로는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거침없는 열정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이제비우스’로 다소 우울한 면이 있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몽상가다. 또한, 주변 지인들이 그의 글 속에서 캐릭터로 자주 등장한다. 이 작가는 바로 스물네 살 때 ‘음악신보’라는 음악 저널의 편집자와 비평가로 활동한 낭만 시대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다.      


그는 ‘음악신보’에 ‘다비드 동맹’이라는 상상적 이야기를 통해 평론의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성경에 있는 다윗과 골리앗 캐릭터에 빗대어 두 그룹이 토론을 벌이는 형식이었다. 당대 보수적이고 속물적인 예술을 팔아먹는 장사꾼을 골리앗으로 총칭하고, 자신의 음악 신보를 중심으로 한 진정한 예술가와 평론가 집단을 다윗 동맹으로 명칭 했다. 다윗 동맹에는 슈만의 두 가지 대비되는 자아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 그의 스승 비크를 묘사한 ‘마에스트로 라로’, 멘델스존을 모델로 한 ‘메스’ 등이 등장한다. 이 대조되는 두 그룹이 둘러 모여 앉아 음악에 대해 논쟁을 하고 낭만파 음악의 발전을 주제로 가상의 토론을 벌이는 내용이다. 이러한 그의 창조적인 음악비평 덕에 ‘음악신보’는 유럽 전역에 권위를 인정받는 음악 저널로 입지를 굳혔고 그의 글을 통해 쇼팽, 리스트, 브람스 등 많은 신예 음악가들이 국제적 명성의 계기를 얻었다.      


슈만의 이러한 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은 대조되는 심상을 다양한 색채의 음표로 그려냈다. 낭만이 가득한 섬세하면서도 에너지가 있는 묘한 음악 세계가 그의 작품 속에서 펼쳐졌다. 문학 외에 그의 작품 세계의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두 가지는 피아노와 그의 사랑하는 연인 클라라였다.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고 충격을 받아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가 꿈이 된 스무 살의 슈만은 맹렬한 피아노 연습에 들어간다. 그를 3년 안에 당대 최고의 연주자로 만들 자신이 있었던 비크 선생도 그의 옆에 있었다.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엔 너무 늦은 나이였지만, 의지와 열정에 불타는 슈만에게 장벽은 없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워 보였고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최선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바로 가져오지는 않는다. 오른손 약지의 힘을 더 기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도구를 손에 끼고 연습을 하다가 급기야는 심각한 손 부상을 당한다. 열정을 불태웠던 피아니스트의 꿈은 단숨에 날아갔지만, 피아노에 매진했던 시간은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던 만큼 못다 이룬 그의 꿈은 88개의 건반을 통해 표현되었다. 그의 작품번호 1번에서 23번까지가 모두 피아노곡으로 <나비>, <어린이 정경>, <판타지 슈티케>, <크라이슬레리아나> 등의 작품들을 통해 반음계 진행으로 인한 장조와 단조의 모호함, 불협과 해결에 예상치 못한 타이밍, 섬세한 다이나믹 변화 등의 독특한 피아니시즘을 완성한다. 또한, 그의 음악적 어법의 8할을 담당하는 그의 사랑 클라라로 인해 그의 음악은 수많은 이야기와 암호로 물들었다.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선생의 반대가 그들의 사랑을 더 애절하고 비밀스럽게 만들었을까? 슈만은 다섯 개의 하행 선율로 이루어진 ‘클라라 모티브’를 음악 곳곳에 은밀하게 박아 놓았다. 이 모티브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경우가 많고 <환상곡>,

<노벨레테>, <다윗 동맹의 춤곡> 등에서 이 모티브가

뚜렷하게 등장한다.      


슈만의 음악 세계의 토양이 문학과 피아노, 그리고 클라라로 다져졌다면, 그 토양에 다채로운 꽃을 피워낸 장르는 가곡이다. 슈만은 평생 동경했던 슈베르트에게 큰 음악적 영향을 받았고 ‘베토벤 이후의 음악적 발전은 가곡의 발전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처럼 가곡 장르를 매우 특별하게 생각했다. 그런 슈만이 클라라와의 사랑이 결혼으로 결실을 맺게 된 행복과 기쁨을 가곡으로 쏟아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슈만은 당시 편지에 ‘길을 걷고 있으면 끊임없이 시가 그리고 멜로디가 마음속에 떠올랐다.’라고 적었다. 그는 결혼 전날 <미르테의 꽃>이라는 가곡집을 클라라에게 선물했다. 그들의 결혼이 이루어진 1840년 2월부터 1년 동안 슈만은 무려 130여 편의 가곡을 작곡했다. 슈만은 그의 문학적 소양과 독특한 피아니시즘을 바탕으로 시와 음악을 하나의 심상으로 결합하는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예술가곡 발전을 이루었다. 가사와 음악의 결합을 위해, 고정된 틀을 벗어던지고 가사의 심상이 음악으로 표현되는데 집중했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작곡가의 선율을 빌려오기도 했는데 클라라에게 선물했던 <미르테의 꽃> 중 첫 번째 곡인 <헌정>이란 곡의 후주에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선율 모티브를 사용했다. 간절한 사랑의 진정성이 아베마리아 선율을 타고 묵직하게 전달된다. 또한, <두 사람의 척탄병>이란 곡에서 전쟁에 패배하고 죽어가는 프랑스 병사가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하는 구간에서 프랑스 국가 <La Marseillaise>의 선율이 등장하며 이야기의 현장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가사의 미묘한 감정의 동요를 표현하기 위해 때로는 예상치 못한 불협음이 등장하고, <시인의 사랑> 첫 곡에서처럼 마지막 음이 해결되지 않고 질문을 던지듯 끝나기도 한다. 또한, 피아노 반주와 노래가 여러 선율을 나누어 가지며 다양한 음악적 대화를 만든다. 슈베르트의 곡이 묘사된 자연의 소리를 배경으로 화자의 감정의 깊은 폭을 전달했다면 슈만의 곡은 자연 자체를 예술적으로 표현해내어 화자의 감정을 투영하는 가곡을 만들어냈다.     


어느 날 문득 마음에 파고든 시 한 편처럼 음악적 심상으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슈만의 음악은 꿈과 낭만, 그리고 환상의 세계로 청자를 이끌어간다. 또한, 작은 작품들이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어 큰 작품을 만드는 그의 음악 스타일을 통해 청자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경험하게 된다. 슈만은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음악은 다양한 이야기의 비밀을 찾는 몫을 우리에게 남기며 우리 곁에 조용히 머물러있다. 예상치 못한 때에 등장하는 악센트,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다가 어느덧 순식간 해결되는 종지부, 끝날 듯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잦은 전조, 절뚝거리게 하는 당김음과 부점 리듬 등의 그의 음악적 표현은 그 부분만 본다면 어색하고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하나의 음악적 문맥 속에서는 섬세하고 독특한 음악의 질감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슈만의 음악처럼 우리의 삶도 단면적이지 않기에 그 심상의 이야기를 조금씩 조금씩 표현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섬세하고 독특한 삶의 질감을 갖는 인생으로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며 서사적인 호흡 속에 삶을 이끄는 수많은 사람에게 슈만이 남긴 비밀 이야기를 선물하고 싶다. ‘음악이란 무엇입니까? 더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라는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그의 음악을 통해 더 깊게 들으며 사는 삶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https://youtu.be/qCvcLQot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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