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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베르 Apr 22. 2020

베토벤의 가곡

베토벤 기악곡의 아우라와 스케일에 가려져 그의 성악곡은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13세부터

53세까지 끊임없이 성악곡을 써 내려갔다. 그의 성악곡은 민요, 미사곡, 오페라, 합창곡, 가곡을 포함하여 100여 곡이 넘고 그중 가곡은 70여 곡이나 된다. 또한, 연극이나

오페라에 삽입하려는 목적으로 작곡한 성악곡도 꽤 많았다.     



베토벤에게 성악곡 작곡은 어떻게 보면 친숙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스승인 네페와 살리에리가 주로 성악 작곡에 능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9살에 만난 궁정 음악가인 네페를 통해 음악과 성악 작법에 대한 기초를

배웠고, 1792년 본에서 빈으로 이주한 후에 오페라 작곡가이자 궁정악단 음악감독인 살리에리와 공부하며 시어의 음악적 운율법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궁정악단의 베이스와 테너인 성악가였으니

성악 음악과 친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웅장한 곡의

대가였음에도 민요 수집에 관심이 많았는데, 38세에 운명교향곡을 완성하고 나서 그다음 해부터 독일 민요뿐만이 아니라 영미, 스코틀랜드, 웰시, 아일랜드 민요들을 대략

200여 곡이나 모았다. 그 후 39세부터 50세가 될 때까지 수많은 민요곡을 만들었다. 청력을 잃어가는 그에게 여러 나라의 민요 선율은 노스탤지어와 이국적인 낭만, 자연스러운 리듬에 대한 영감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베토벤은 다양한 분야에서 성악 작곡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그중에서도 훌륭한 시의 발견은 가곡 작곡의 열망을 불어넣어주었다. 베토벤은 시와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그는 시의 운율과 음악적 리듬의 조화를 중시했는데 많은 작품 중에서도 괴테의 작품에 빠져들었다. <파우스트>, <빌헴름 텔>, <에그몬트>의 텍스트를 사용해 곡을 썼고 <마왕(Erlkonig)>, <오월의 노래(Mailied)>, <새로운 사랑, 새로운 인생(Neue Liebe, neues Leben)>, <슬픔 속의 기쁨(Wonne der Wemuht)>등 괴테의 시로 많은 가곡을 남겼다. 익히 알려진 대로 예의를 중시하는 괴테와 가식을 혐오하던 베토벤은 서로 기질적으로 잘 맞지 않았지만, 괴테의 작품은 그의 감정을 표출하는 좋은 재료가 되었다. 베토벤은 또한, 여느 가곡 작곡가들처럼 자연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귀가 안 좋아지기 시작한 26살부터 베토벤은 몇 시간씩 산책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연필로 메모하고 스케치북에 옮겨 적었다. 산과 들을 혼자 산책하며 자연을 통해 영감을 받았다. '자연은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분을 상하게 할 정도로 자기주장을 하거나 질시하지 않고 어떠한 가식도 없이 늘 포근하게 감싸주었다.'라는 그의 말처럼 삶의 처절한 싸움과 고독함 속에 자연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그의 음악이 탄생한 것처럼 그의 가곡 작곡은 그가 큰 작품을 쓰는 힘이 되었다. 또한, 삶의 어려운 시기에 많은 가곡이 작곡되었다. 특히 베토벤이 조카 양육권 문제로 심한 집안 분쟁으로 괴로울 때 음악사에서 첫 연가곡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멀리 있는 연인에게(An die ferne geliebte, 1816)>를 작곡한다. 이 곡은 6개의 노래가 테마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6개의 곡이 조성의 순환(Eb-G-Ab-Ab-C-Eb) 구조를 가지고 있고 ‘나는 앉아서 언덕의 꼭대기를 바라보고 있다.'라는 첫 가사의 선율이 마지막 곡에서 다시 등장하며 6개의 노래가 하나의 노래처럼  구성된다. 또 피아노 반주가 각 곡을 이어주며 유기적인 연관성을 만든다. 반면에 잦은 조성의 변화와 다이내믹의 변화로 대비되는 다양한 심상을 표현해준다. 이러한 구성은 당시에 굉장히 진보적이었고 후대 작곡가들의 연가곡 작품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고독하게 먼 곳을 바라보며 그의 떠나버린 연인을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 베토벤의 손끝에서 깊은 사색의 그리움으로 완성된다. 베토벤에게 낭만이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가곡 작곡은 그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가곡의 특징으로 본다면 초기 가곡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중기 가곡은 단조롭고 끝없는 유절형식(각 절마다 같은 선율)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최고의 가곡으로 손꼽히는 <아델라이데(Adelaide)>와 괴테 시에 곡을 붙인 <새로운 사랑, 새로운 인생> 등은 당시에 파격적인 통 작형식(각 절이 다른 선율)으로 작곡되었다. 특히 <아델라이데>는 당시 성악 독창곡으로는 최초로 공식적인 무대에서 연주된 곡으로 음악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의 곡이 슈베르트 가곡처럼 시어의 뉘앙스와 내용을 섬세하고 심도 있게 묘사하진 않았지만, 성악과 피아노의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과 시의 운율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능력, 시어의 감정을 표출하는 힘은 그의 가곡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다.      



그의 곡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절제와 균형, 사색을 담은 그의 가곡은 예상치 못하게 받은 선물 같은 느낌을 준다. 그가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해에 만든 가곡 <포기(resignation)>의 서두에  지시어로 쓴 ‘느낌을 가지고 그러나 단호히, 잘 강조되어 말하고 있는 것처럼'을 통해 그의 음악 세계와 삶의 태도를 만날 수 있고, 대 작곡가의 말년의 작품으로는 믿기지 않는 천진난만한 유희가 섞인 <입맞춤(Der Kuss)>이란 곡에서 그의 소년미를 엿볼 수 있다. 그의 가곡은 베토벤에게도 마지막을 장식해준 선물이었다. 피아니스트로서 마지막 공식 무대가 그의 가곡 <아델라이데>를 연주했을 때였고, 그가 생의 마지막으로 들은 곡도 <아델라이데>였다. 병상에 있는 할아버지를 위한 조카 손녀의 마지막 노래였다. 그 노랫소리가 그에게 직접 들리진 않았겠지만, 그 순간 그는 미소를 띠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영적인 소리를 통한 자유와 기쁨을 아는 동시에 현실 세계의 고통과 좌절도 겪었다. 그 간극 속에서 끊임없는 고뇌와 의지로 삶을 이겨냈고 그의 처절한 인생의 싸움은 음악이란 선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겪어본 자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위로를 그의 가곡이 지친 우리들의 일상에 조용히 속삭여준다.      



오 희망이여!

너를 통하여 높이 들어 올려져

고통받는 자로 하여금 알게 해 주오

천사가 그의 고통의 눈물을 헤아리고 있다는 것을


-베토벤의 가곡 <희망에게(An die Hoffnung)> 중에서-


https://youtu.be/KumuAaKIA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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