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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베르 Apr 14. 2020

미친 존재감의 작곡가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

-생각과 열정으로 자아를 발전시킨 사람

-자기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려 했던 사람 

-삶의 투쟁 끝에 기쁨을 노래한 사람

-단절이 아닌 소통을 원한 사람

-소박하고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

-유머를 잃지 않은 사람     


바로 서양 음악사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미친 존재감을 뿜는 베토벤에 붙는 수식어이다.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베토벤의 음악으로 음악적 언어는 다 완성됐는데 뭐하러 그다음 수많은 작곡가가 나와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투덜대며 농담을 하곤 한다. 그만큼 베토벤이 내놓은 음악적 양식과 스타일은 음악사적 혁명으로 베토벤 이전과 이후라는 큰 획을 긋는다.


그의 교향곡이나 피아노 소나타, 현악 4 중주곡 등을 듣다 보면 왜 그가 음악의 성인인 ‘악성’으로 불리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고전주의의 형식에 정갈히 담겨있던 음악을 형식과 영역에 있어 제한을 두지 않고 확대함으로써 낭만 시대의 시초를 이루었고, 예상을 뒤엎는 음악적 동기의 자유자재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화성의 진행과 해결로 음악적 긴장감과 색채를 만들어냈다. ‘더 위대한 아름다움을 위해서 어길 수 없는 규칙은 없다.’라고 말하며 그는 기존 작곡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의 음악에 나타나는 창조적 투쟁과 자유는 그의 삶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투영된다.


그의 삶은 전 생애에 걸쳐서 상황의 한계를 극복하며 싸워나간 전쟁터였다. 신동 모차르트처럼 키우려는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시달렸지만, 전 생애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가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냈다. 또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알코올 중독자였던 무능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는 십 대부터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오르간 주자로, 궁정악단에서는 부지휘자로 열심히 일했고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고 난 후에는 연주회를 주최하고 저작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돈을 모아 가족들을 챙겼다. 자존심이 강했던 베토벤은 아무리 자신을 후원해주는 귀족이라도 특권의식으로 거들먹대면 쓴소리를 쏟아냈고 신념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1795년 프라하,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베를린으로 연주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서 이제는 성공한 음악가로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 오를 때쯤, 생각지 못한 열병과 함께 청력을 조금씩 잃어갔지만, 그는 작곡을 멈추지 않고 삶의 걸음을 이어갔다.


굴복을 모르는 베토벤도 31살 때 의사에게 완전히 청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 하일리겐슈타트에 요양차 머물고 있을 때에 청력을 완전히 잃게 될 두려움과 죽음의 두려움으로 급기야 33살 때 유서를 쓰게 된다. 그러나 동생들에게 마지막 남기는 유서를 써 내려가며 도리어 그는 작곡에 대한 열망과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다. ‘작곡에 대한 이 열정을 모두 작품으로 쏟아내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다.’라며 이전보다 더 강한 삶의 의지를 다진 후 교향곡 <영웅>, <운명>, <전원>, 피아노 협주곡 <황제>, 피아노 소나타 <열정>, <발트슈타인>,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 현악 4중주 <라주모프스키> 등의 걸작들을 쏟아냈다. 불굴의 의지와 열정으로 그는 그 후 십 년(1804~1814) 동안 가장 왕성한 작곡 활동을 하면서 힘 있고 웅장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늘 강인하고 틈이 없어 보이는 베토벤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적인 모습이 많았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늘 마음속에 그리워했고 교회에 다니진 않았지만, 신을 찬미하는 신앙심이 깊었다. 그가 요양할 때 시골 음악단이 찾아와 지역을 대표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하자 그들의 음악적 열정에 감동하며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고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작곡을 해주기도 했다. 또한, 제자인 체르니에게는 친절한 선생이었고 말년에 만난 슈베르트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건넸던 선배였다. 우연히 로시니를 만났을 때 그의 작곡 여정을 응원하며 <세빌리야의 이발사>와 같은 좋은 곡을 쓰라고 따듯하게 격려했다.


48세에 청력을 완전히 잃은 베토벤은 사람들과 대화를 잘 나눌 수는 없었지만, 자연과 독서를 통해 세상과 단절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칸트 등의 책에 관심이 많았고 잠자기 전 당대 독일의 문호 괴테와 쉴러의 시를 자주 읽었다. 평생 자신이 소유한 집 한 채 하나 없었지만, 늘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찬양하는 넉넉함이 있었다. 마왕 같은 기인적인 모습 너머에 소박하고 따뜻한 정서들이 그의 음악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의 음악 세계를 보려면 당연히 그의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현악 4중주 같은 기악 작품들을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이미 그의 음악 세계의 숲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이제는 그 안에 들어가 잘 심긴 ‘가곡’이라는 나무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의 가곡은 그리 부각되지 않아서 어린 시절 쓴 습작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베토벤은 평생 가곡 작품에 몰두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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