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베르 May 15. 2020

아킬레스건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처럼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는 허리에 기다란 깃털을 이고 산다.


누구나 하늘을 나는 멋진 날개를 원할 텐데

날개를 덮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허리 깃털 때문에

날고 있을 때나 걸어 다닐 때에도

그는 매우 불편하고 괴로웠다.


누군가는 이건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무기라며

수시로 우쭐함을 장착하고 깃을 펼치라고

대단한 거 알려주는 듯이 조언했지만,

그는 이런 걸로 뽐내야 만나게 되는 사랑을

찾고 싶진 않았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독수리처럼은 아니어도 멋진 날갯짓으로 창공을 누비고 날렵한 판단력을 키워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놈의 엿가락 같이 붙어있는 깃털을 없애고 싶은 

마음 때문에 좀처럼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무료한 시간 속을 가까스로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모르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그의 깃털에 있는 초록과 파랑이 각도에 따라

무지갯빛이 되어

자연의 색깔과 조화를 이뤄 녹아든다는 것을 말이다.

그 순간, 갑자기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늘 기운 없던 그의 눈빛에 생기가 돈다.

그리고는 오래 사용하지 않아 칙칙하게 먼지 쌓인 깃털을

천천히 부채꼴로 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잘라버리고 뽑아버리고 싶었던

그의 아킬레스건인데,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도구가 되다니...

한 순간의 변화에  그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오랜 체증이 확 내려간 것 같은 가벼운 발걸음에

자꾸만 히죽히죽 웃음을 흘린다.


땀 흘리는 이에게 부채질을 해줄까

안식처가 필요한 이에게 비밀장소인 그늘막이 돼줄까

펜을 들고 다가와 묘한 빛깔을 관찰하는 이에게 기꺼이

모델이 돼줄까


하고 싶은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일렁이느라

그의 하루가 예상치 못하게 분주해진다.



공작의 비상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잡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