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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Mar 01. 2019

<괴짜사회학>

연구란 무엇인가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사회학>을 처음 읽은 건 대학을 졸업하고 뭘 해야 하나를 놓고 고민할 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게 된 이 책은 '연구를 하는 삶'이 얼마나 흥미로운 삶인지를 보여주었다.


이 책은 사회학과 학생인 수디르 벤카테시(이하 수디르)가 '빈민 거주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고, 빈민 거주지역으로 직접 들어가 생활하면서 쓴 에세이이자 연구기록이다. 사회과학에서 '과학적' 연구방법이라 하면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한 후 해당 자료를 이용해 통계적인 결과를 추출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삶을 연구하는 입장도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입장은 비과학적이며 결과를 일반화하기 힘들다는 비판에 놓여있다.

(왼쪽) 한국 커버 (오른쪽) 미국 커버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수디르는 도시 빈민가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중산층 지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학생이었다. 그는 이따금 공원 한가운데에 모여서 카드놀이를 하며 놀고 있는 흑인 노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시카고 흑인 사회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흑인 청년들과 이야기를 해보기 위해 시카고 내 청년을 둔 흑인 빈민 가정이 밀집한 공영 주택단지를 찾아가게 된다. 알코올, 매연, 오줌 냄새가 코를 찌르는 주택단지 속에서 그는 갱단원을 만나고 그 날 향후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제이티'를 만나게 된다. 설문조사를 하러 왔다는 수디르의 말에 제이티는 궁금한 것을 질문해보라고 한다.

수디르: "흑인이면서 가난한 것은 어떤 느낌이야?"

제이티: "난 흑인이 아냐"

수디르: "그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면서 가난한 것은 어떤 느낌인가?"

제이티: "난 아프리카계 미국인도 아니야. 깜뚱이야"

수디르: "......"

제이티: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깜둥이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교외에 살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넥타이를 매고 일해. 우리 깜둥이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조차 없어"


처음 이 질문의 주고받음 속에서 수디르가 빈민 지역 사람들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이는 비단 수디르뿐 아니라 빈곤문제를 연구하는 '빈곤하지 않은 사람들'의 시각이 자칫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 사회에서 강남좌파, 부자 지식인 등이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해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은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지지와 역할이 너무 중요함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런 사람들일수록 더 겸손하게, 치열하게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날 그 건물에서 하룻밤을 보낸 수디르에게 제이티는 말한다.  "얼간이 같은 질문이나 하면서 돌아다녀선 안돼. 우리 같은 사람들이랑 어울려야 한다고.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왜 그러는지 알아야 해. 젊은 청년들이 왜 거리에서 살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그리고 수디르는 그 말대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주택단지를 다시 찾아간다. 그리고 주택단지에서 제이티와 그리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 속에 흡수된다. 마약을 거래하는 갱단 두목을 친구로 매춘부와 노숙자가 가득한 빈민 거주지역 속 사회를 하나둘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경찰을 불러도 경찰이 출동하지 않는 곳, 구급차를 불러도 구급차가 오지 않는 그곳에서 갱단과 일부 주민들이 어떻게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주 섬세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실상을 '고발한다'.


'가난한 사람, 가난한 지역, 가난한 계층'을 다루는 연구자들이 정작 그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해, 현실적으로 나오는 정책들, 주장들이 그들을 돕지 못하고 방관하거나 현상을 유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가난한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꿈은 이루어진다'는 신화가 처해진 환경과 상관없이 꿈을 꾸지 않고 꿈을 이루지 못한 개인을 탓하게 만들 뿐이다. 실상은 열심히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내가 경찰에게 자네가 사는 동네엔 가지 말고 내가 사는 동네에만 오라고 말했다고 해보세. 그런 다음 나는 자네가 범죄가 만연한 지역에 살고 있으며 그 동네는 내가 사는 동네보다 범죄가 더 많다고 글을 쓰는 거지. 그럼 자넨 뭐라고 할 텐가?"

" 부인이 경찰을 모두 차지해버렸으니 부당한 처사라고 말할 것 같아요."

" 자넨 흑인들이 이 주택단지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어 해. 왜 가난한가. 왜 이렇게 범죄가 많을까. 왜 가족을 부양하지 못할까. 그럼 이제 백인을 연구하겠나? 하지만 우리를 희생자로 만들진 마. 우린 우리가 어찌해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질 거니까. 모든 게 우리가 어찌해볼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수디르가 만난 할아버지, 갱단원, 매춘부 중 일부는 대학교육을 받고 중산층이 사는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결국 그들은 다시 빈민지역 혹은 흑인들이 모여사는 지역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도시에서 그들은 '차별받기' 때문이다. 제이티의 경우 대학에 들어가 시카고 도심에 있는 중견회사에 취직했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기회가 제한됨을, 자신보다 일을 못하는 백인들이 먼저 승진하는 것을 보고 주류사회를 떠나 공영 주택단지와 갱단 생활로 돌아왔다.   


" 우리는 도시 안의 도시에 사는 셈이지. 그들은 그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그게 결코 바꾸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 이 도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게 될 거야." ... "자네가 살고 있는 곳 같은 데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헛고생하는 부류의 흑인들이 있지! 왜 그 노력이 헛되다고 하는지는 나한테 묻지 말게. 또 다른 부류는 그런 게 아무런 소용없다는 사실을 아는 많은 흑인들이지. 이곳은 그리 유쾌하지 않지만 얻어맞는 일은 없을 걸세. 적어도 경찰한테 말이지. 그래서 흑인들이 이곳으로 오는 거지"


수디르가 그랬듯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 다수는 다양한 차이(경제적 차이, 출생 지역의 차이 등)로 발생하는 불평등함이 사회제도 내에서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다. 당연한 것으로 신뢰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협소한 생각인지, 믿음인지를 수디르가 만나는 이들을 통해 알게 된다. 우리 사회는 과거 전쟁 이후 대기업의 성장,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확대로 마치 개인이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과하게 포장되어 있다. 전쟁 이후에 아무것도 없는 사회에서 무언가를 일구어 내던 그때, 소 한 마리로 지금의 대기업을 일구었던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너무 다르다. 더 무서운 것은 누구나가 지금의 사회에서는 제도의 보완으로 개인이 노력해서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다고 너무 철썩 같이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디르가 그랬듯.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이지만 마치 한 편의 가벼운 에세이를 읽는 느낌으로 낄낄 웃으며 읽히는 책이다. 책의 내용은 심각하나 책의 서술은 재미있다. 책을 덮을 때 마치 난 시카고 어느 지역을 다룬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했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연구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아. 이런연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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