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뼈 부상을 입은 60대 노인의 투정은 이상하게 오래 걸렸다. 수술이 끝났으면 집에 돌아와야 하는데 아버지는 달라졌다.
뭔가를 잘 기억하지 못했고, 없는 말을 지어냈다. 밤 시간에는 간병인을 고용했는데 아버지의 기이한 행동에 간병인이 두 명이나 그만뒀다. 병원에서는 퇴원을 시키거나 요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섬망’이 오래 간다고 대답했다. 수술 후 일시적으로 뇌 기능의 저하가 오는 증상인데, 그 섬망이 찾아왔으니 별 일 아니라는 식이었다.
하루는 시부모님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병원에 가 보았다.엄마와 동생이 매일 병원에 가 보고 있었다. 동생이 아버지 머리를 감겨주고 왔다는 말을 할 때도, 엄마가 아버지 밥 반찬을 하고 있다고 말할 때도 별 일 아닐 것이라고 주문을 외웠다. 그저 투정 부리는 아빠를 왜 계속 받아주고 있나보다 라며 외면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렇게 안 가봐도 되나 싶어 병원에 가 보았다. 병실에서 아버지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느냐고 묻자 저 창문으로 누가 뛰어내릴 거 같다고 말했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슨 시덥지 않은 소리야, 아빠, 나 누군지 알아?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00야, 엄마랑 00가 너무 고생한다.
그 때 알았다. 이거, 뭔가 이상하구나. 당장 병원 관계자를 찾아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왜 이렇게 된 건지. 그러면 안 되지만 ‘기자’라는 직업까지 들먹여가며 상황을 정확하게 말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복숭아뼈 수술을 했고, 섬망 증상이 오래 가고, 그래서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 퇴원하라. 하지만 우리는 퇴원할 수 없었고 병원은 더 이상 할 게 없는데 어쩌라는 말만 반복했다. 뭘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또 집에 돌아가 아이를 봐야했다. 동생도 그랬다.
그리고 엄마는 무너져 있었다. 엄마는 하루는 요양원을 알아보겠다며 서울, 경기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더니 또 어떤 날은 어떻게 저런 곳에 아빠를 보내냐며 울었다. 우리 모두 아빠에게 치매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려고 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일이 더뎌졌다. 엄마 혼자 하기엔 버거웠고 우리가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팔자를 원망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도 별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