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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Jan 21. 2022

3. 심정지

그래도 우리  누구도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아는 슬픈 이야기인데 이무렵 쌍둥이가 한양대 병원에 입원했다. 친정 집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빠가 병원에 입원했고 몇일 뒤에 애들이 신생아가 걸리는 바이러스에 걸려 나란히 병원에 입원한 . 나는 전투병사처럼 하루에  하나를 먹을까 말까 하며 고약한 약냄새에 치이며 살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친정엄마는 아빠 때문에 오지 못하고 남편은 낮동안 회사에 가고 혼자 두 아이가 있는 병실을 지키며 나는 종종 생각했다.

아빠는 치매가 왔고, 우리는 아마 앞으로 긴 시간을 치매 환자의 가족으로 살아야할지 모른다, 그러니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 애들을 먼저 챙길건지, 아빠를 챙길건지, 엄마를 챙길건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고 그런 생각조차 부담이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살면서 한 번도 부모를 위해 무언가를 해 본적 없는 철없는 30대 딸이, 느닷없이 딸 둘을 한 번에 낳아 키우고 있는데 치매 환자의 가족이라니. 그런 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 반복했지만 그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먹지 않는 아이들을 먹이고, 자지 않는 아이들을 재우고, 놀아주고, 웃어줘야 했으니까. 간호사가 들고 오는 약을 시간 맞춰 먹여야 했고 39도까지 오른 열을 내리기 위해 미온수 목욕도 시켜줘야했다. 거기에 아빠가 치매가 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어올 틈은 솔직히 너무 없었다… 아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지 않나, 내 고난을 전가할 이유가 없기에 나는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굴어야 했다.


그런데 저승사자는 그런 마음가짐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왔다. 입원한지 3주차, 그러니까 복숭아뼈를 다친지 3주쯤 됐을때의 일이다.

동생이 다급하게 전화했다. 아빠가 간밤에 심정지가 와 지금 호흡기를 차고 있다고.


심정지? 심장이 멈췄어?

굉장히 비현실적인 단어 아닌가. 심정지라는 단어를 기사에서 몇 천번이나 썼나. 사회부 기자로 일할 때 가장 많이 쓴 단어가 아마 심정지일 것이다. 경찰이 사인을 ‘심정지’라고 말하면 기자들은 ‘그러니까 왜 심정지가 왔느냐’고 묻는다. 심정지만큼 기사 안 되는 죽음의 이유는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이 바로 그 심정지였다. 그런데 나는 왜 심정지가 왔는지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다.

? 그저 물음표였다.

심장이 멈췄어? 그래서?

심장이 멈췄다고? 그래서 지금은 어쩌고 있어?

심장이 멈춘게 뭐야, 그게 무슨 뜻이야?


그렇게 익숙하고 아무것도 아니던 단어 ‘심정지’가 괴이했다. 심장이 왜 멈췄어가 아니라 심장이 멈춰서 지금은 아빠가 어쩌고 있는지? 계속 그것만 물었다.

동생은 호흡기를 붙이고 있다고 했고 우리 둘 다 알았다. 심장이 멈췄고 강제로 살려두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먼저 말하지 않았고, 인정하지 않았다. 계속 심장이 멈췄으니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라는 대화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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