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동생이 출근을 했고 엄마 혼자 병원에 가 있었다. 이 병원에서 좀 더 큰 대학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부랴부랴 시부모님을 다시 병원으로 모셨다. 시부모님은 며느리가 안쓰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고 나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시부모님이 도와주실 만한 상황이지만 신생아 병수발을 하게 할 줄은 몰랐다.
병원에 가니 엄마가 큰이모와 함께 수척하게 앉아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보호자가 한 명 같이 타야 한다고 했다. 응, 내가 탈게.
우리는 그 병원에서 할 일이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 아무튼 복숭아뼈를 다쳤는데 왜 상황이 이렇게 됐는지 물어보고 따져야 했다. 병원 관계자를 불러냈다. 그런데 그 사람과 다툴 시간이 없었다. 그냥 이 지긋지긋한 병원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대학병원에 갔어야해’라며 후회했지만 그건 후회할 일이 아니다.처음엔 작은 수술이었다. 동네 병원에서 하면 되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몇 번을 되뇌었다.
구급차를 타자마자 돈 얘기가 나왔다.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데 얼마라고. 알았다고 그냥 일단 가라고 했다. 아, 이게 공짜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모두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병원에 도착해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한참 뒤에 의사가 나왔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연명치료를 지속할지 여부는 가족들이 결정하는 건데 지금으로서는 무의미한 게 의학적 소견입니다.
뭐야, 당신이 결정해 라는 말이 자칫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이 날 여기서 ‘아, 죽는 거구나… 아빠가’ 라는 걸 처음 인지했다.
그런데 엄마와 동생은 아니었다.
하루에 2회 아침 저녁 면회가 가능한데 엄마와 동생은 매일 두번씩 면회를 들어갔고 나는 다시 아이들이 있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동생은 전화해 오늘은 아빠가 웃고 있다느니, 손을 잡은거 같다느니 라며 희망을 가졌고 매일 남편이 퇴근한 시간에 맞춰 저녁 면회를 간 나는 엄마와 동생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빠를 살게 하는 건 저 거대하고육중한 기계일 뿐이고, 심장이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데 저 기계가 계속 심장을 쥐고 놔주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모든 걸 엄마에게 맡겼다. 하루는 의사의 권유대로 엄마가 병원 내 장기이식 관련 팀에 가서 상담을 했는데 해당 팀 사람이 “이식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어요”라며 특정 환자의 상태를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환자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건 아빠였다. 아빠는 장기 이식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병원에서 행정적 절차에 따라 이 팀에 엄마를 보낸 것이다. 엄마가 그 사람은 내 남편이오 라고말하자 담당자인 수녀님이 “그 환자는 보내주세요 중환자실에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 없는 환자가 많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날 엄마가 처음으로 나에게 ‘어떡할까’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 마음 편한대로 하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잃는 것과 배우자를 잃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다. 뭐가 더 슬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결정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것만은 잘 알것 같았다. 엄마는 조금 현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