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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풀잎 Jan 09. 2024

[책리뷰] 사진신부, 그 시절 파란만장했던 여성들의 삶

<알로하 나의 엄마들>, <사진신부 진이>


사진신부 :


1900년대 초 돈을 벌기 위해 많은 한인들이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그곳의 사탕수수 밭에서 노동을 하며 돈을 번 한국의 남자들은 같은 한국인과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사진을 한국으로 보냈고, 한국의 10대 후반 여자들이 중매쟁이들에게 건네받은 사진을 보고 자신의 사진을 보내어 성사가 되면 하와이로 시집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고 한다.  



어디선가 사진신부라는 말과 그 흑백사진 이미지를 본 적 있다.

그 사진 한 장으로 다 설명되는 ‘사진신부’.

그 시절은 남편의 얼굴을 미리 알고 결혼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사진 신부들은 그나마 사진을 미리 본다는, 그리고 나름 고를 수 있다는

자신의 사진 또한 보내어 남자 쪽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알고, 선택한 것이라는

모던한 결혼 같은 느낌이 있다.


다만 국내에서의 결혼은 얼굴만 모를 뿐, 집안도 알고 형편도 알고 나름 마을에서의 평판도 알겠지만

사진신부는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고, 알 수 없으며 오로지 사진 한 장이 가진 정보가 전부라는 맹점이 있다.

사진을 언제 찍은 것인지 알 수 없으며, 사진 속 차림새나 풍경이 가짜 일 수 있다는…그런 맹점.


오로지 사진 속 얼굴만 진짜 일 뿐,

나이도 배경도 사정도 알 수 없는 데다

하와이라는 낯선 곳으로 몇 날 며칠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여정에 선뜻 오르기는 쉽지 않았을 듯.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소설로 만나보았다.

픽션이지만 거의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들이 분명해 보였다.



먼저 읽은 책은 이금이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저자 이금이  출판 창비  발매 2020.03.25.



이 책은 정말 재밌고 쉽게 읽힌다.


주인공 버들이는 서당의 훈장인 아버지의 딸이었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 딸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도와 바느질을 해야 했던 버들이. 그런 버들이에게 중매쟁이 아주머니가 하와이 이야기를 꺼낸다. 하와이에는 나무에 먹을 것과 옷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허황된 이야기와 함께, 먹고살 걱정 없이 공부하며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민 한 남자의 사진 한 장. 버들이는 그때부터 남자의 사진을 보며 연애하듯 꿈을 꾼다. 이 남자와 함께 살며 돈을 모아 집에도 보내고, 공부도 하고, 행복하게 사는 미래를 꿈꾼다.


이웃에 사는 친구, 시집갔다가 남편이 죽는 바람에 친정으로 돌아온 친구도 함께 하와이로 향한다.

그리고 또 한 친구, 무당 할머니의 손녀도 함께 간다.


하와이에 도착하기까지 세 친구가 함께 배를 타고 가며 희망에 부푼 이야기, 그리고 도착해서 만난 사진과 달리 늙은 아저씨, 심지어 할아버지인 남편을 만나고 눈물바다가 되는 이야기, 그리고 남편을 따라 간 농장에서의 고생스러운 삶…. 빠르게 전개되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처음엔 농장에서 일하다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 나가는 과정도 그려진다.


주로 한국여성들은 바느질을 해본 경험이 많아서 그 부분이 현지인들의 호감을 사고 그게 돈벌이로 연결된다. 그렇게 버들이와 다양한 친구들의 삶을 통해 하와이로 이민 간 사람들이 그곳에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는지를 알 수 있다.


버들이는 특히 남편의 독립운동 참여로 많은 고통을 받는다. 남편은 독립운동에 참여하느라 돈을 벌지 못하고, 오히려 독립운동자금을 대는데 급급하고, 결국 가정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은 버들이의 몫이었다.


그 시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해외 동포들이 힘들게 농장에서 일한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보니 더욱 안타깝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와중 독립운동 자금이라니.. 나는 심지어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데 내가 떠나온 나라, 다시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나라의 독립을 위해 그 피 같은 돈을 낼 수 있을까….


소설은 마지막에 소설적인 반전도 숨겨 두었다.


여러모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 소설을 아이와 같이 읽고 그 시절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사진신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져 다른 책이 있나 찾아보다가

미국인이 쓴 <사진 신부, 진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사진신부 진이>

저자  앨런 브렌너트   출판  문학수첩    

발매 2014.04.24.



이것은 번역된 책이어서 일까. 읽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앞부분 사진신부로 가게 되는 과정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과 복붙 한 듯 똑같아서 지루함이 없지 않았다. (비슷한 스토리이지만, ‘알로하’ 쪽이 훨씬 소설 같은 느낌이라 더 재밌다)


이 책은 사실에 근거하여 쓴 르포 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진도가 빨리 나가진 않지만, 읽다 보니 뒷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졌다.


앞서 말한 복붙 한 듯 똑같은 부분은 사진 신부가 하와이에 도착해서 남편들을 만나는 장면이다.

남편들 중 멋진 차에 한쪽다리를 올리고 뽐내며 찍은 사진을 보낸 사람이 있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할아버지였다는 것 등 세세한 이야기가 이토록 같은 것은 아마도 그 에피소드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실제 사진신부였던 분에 대한 논픽션 책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책들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들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사진신부가 하와이에 도착하는 것까지는 같은 이야기지만

이후 주인공 진이의 삶은 버들이와 달랐다.

버들이는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아이들을 돌보는 안정적인 가장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로서 사는 것이 문제였다면 진이의 남편은 노름을 해서 번 돈을 다 날리고는 아내를 때리는 폭력 남편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진이가 남편의 곁을 떠나 도망치면서 이 소설이 비로소 시작되는 느낌.


20살 남짓한 한국 여인이, 결혼하기 위해 찾아간 하와이에서 그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겪게 되는 삶.

돈도 없이 오로지 바느질하는 기술 하나를 가지고 삶을 헤쳐나가는 그 파란만장한 이야기.


더불어 이 책에서는 ‘알로하’에서 다루지 않은 미국에 먹혀버린 ‘하와이’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담겨있다. 원래 하와이의 주인이었던 하와이 원주민들이 땅과 함께 그들의 권리도 빼앗기는 그 서러운 이야기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그 피 같은 돈을 내어 주고, 목숨을 내어준 그들의 헌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100여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겪어낸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


교육받지 못하고, 개인의 권리 따위는 인정받지 못하던 조선에서 태어난 ‘여성’으로서

하와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돈을 벌고, 말을 배우고, 자식들을 키워낸 놀라운 여성들의 이야기.


그래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기록될 가치가 있고, 이렇게 읽힐 가치가 있다.

그들의 삶이 그대로 역사이므로.




얼마 전 읽은 곽아람 기자의 <나의 뉴욕 수업>이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시민권 취득시험에  ‘아메리칸드림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나온다면
정답은 ‘더 나은 삶  A better life’라고.
급우들 중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틀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민자들이란 결국
더 나은 삶’을 찾아온 사람들이니까.


엘리스아일랜드 이민박물관의 설명문에서
발견한 문장 하나가 나를 뭉클하게 했다.

They sought a better life.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추구했다.

곽아람 <나의 뉴욕수업>






더 나은 삶을 위해 하와이행 배에 올랐던 많은 사람들.


사탕수수 농장에서 허리 펼 틈 없이 일하면서도 고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자금을 댔던 사람들.


이민자 신분으로 차별과 불평등 속에서도 성실함으로 그 땅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


그리하여 자녀들을 자신은 받지 못한 교육을 받게 한 사람들.


소설 속 인물들처럼 그들의 그 과거가 후회 없이,


‘더 나은 삶’으로 완성되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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