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 <원청_잃어버린 도시>
<원청>
저자 위화
출판 푸른 숲
발매 2022.12.02.
위화 작가의 <허삼관 매혈기>를 재밌게 읽어서 이 책도 무척 두껍지만 두려움 없이 손에 들게 되었다.
과연, 읽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몰아친다.
소설은 청 말기, 중화민국 초기 1900년대의 혼란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실 중국 역사에는 관심도 아는 것도 없어서
소설에 몰입하면서 이 배경을 너무 모르는데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면
어렵고 재미없어지려나, 생각했는데…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다.
린샹푸는 부유한 집안에서 독자로 태어나 자랐지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거대한 저택에 혼자 살았다.
그런 그의 집에 어느 날 젊은 남녀가 찾아왔다.
북쪽에 계신 외삼촌을 찾아가는 길에 마차에 문제가 생겨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느냐고,
자신들은 아창과 샤오메이, 남매라고 했다.
남쪽에서 왔다는 그들의 말을 처음에는 잘 알아들 수 없었다. 말이 날아다니듯 빨랐기 때문이다.
하룻밤이 지난 후, 샤오메이는 아팠고, 아창은 자신은 홀로 외삼촌을 찾아갈 테니 아픈 샤오메이를 며칠 부탁해도 되겠느냐고 했다.
성정이 워낙 따뜻한 사람이었던 린샹푸는 샤오메이를 맡아주었고, 그녀는 하루 만에 말끔히 나아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린샹푸 어머니의 베틀을 꺼내 옷도 만들고, 린샹푸에게 맛있는 식사도 만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샤오메이는 매일같이 아창을 기다리는 것 같아 보였는데 아창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고, 얼마 안 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후, 린샹푸는 아내가 된 샤오메이에게 자신의 재산을 모두 보여주는데 엄청난 금괴와 집문서 등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샤오메이는 금괴 중 반이 조금 안 되는 양을 훔쳐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홀로 남은 린샹푸는 괴로워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힘들게 모으신 재산을 잃었다는 생각에 부모님께 죄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몇 개월 후 샤오메이가 돌아온다.
린샹푸의 아기를 가졌다면서 이 집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고 말이다.
린샹푸는 금괴를 어디다가 썼는지 묻지 않고 그녀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떠나지 않도록 정식으로 사주단자를 올려놓고 예식을 치른다.
그리고 혹시 그녀가 다시 떠나면 그곳이 어디든지 찾으러 갈 거라고 다짐한다.
얼마 후 샤오메이는 딸을 낳았고 세 사람은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한 달 후, 샤오메이는 다시 사라져 버린다.
린샹푸는 어린 아기를 품에 안고, 샤오메이를 찾아 떠난다.
샤오메이와 아창이 처음 왔을 때 자신들을 '원청'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소개했기 때문에
린샹푸는 원청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나, '원청'이라는 곳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다 '시진'이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린샹푸는 이곳이 원청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의 말투가 아창과 샤오메이가 쓰던 말투와 비슷했고, 샤오메이가 신던 나막신, 쓰던 두건 등 비슷한 물건들이 그 도시에 있었다.
린샹푸는 시진에서 샤오메이를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린샹푸는 샤오메이를 찾는 것도 문제였지만, 어린 아기 젖을 먹이는 것이 더욱 문제여서
시진의 집집을 돌아다니며 젖동냥을 했다.
그래서 딸의 이름을 100집의 젖을 얻어먹고 자랐다고 해서 '린바이자'라고 지었다.
린샹푸가 시진에 도착했을 무렵 시진엔 여러 가지 재앙이 닥쳤다.
강력한 회오리바람에 집들의 지붕이 다 날아가고, 한 달여 동안 매일같이 폭설이 쏟아지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닥쳤던 것이다.
그 가운데 린샹푸는 극적으로 아이를 지켰고, 좋은 이웃들을 만났다.
그는 시진에서 샤오메이를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게 되는데.....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시기, 그래서 토비(도적떼)가 날뛰던 시기,
민중들은 토비들로부터 가진 것들을 빼앗기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기던 시기
특히나 토비들의 잔인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는데
그런 부분조차 너무 그려지게 써놓아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크게 보면 한 남자가 부모를 잃고,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 여인이 낳은 딸을 품에 안은 채 여인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그 안에 이 남자의 고된 삶이 있다.
딸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낯선 땅에서 만난 가족 같은 친구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산 삶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의 삶이 하나같이 비극적이어서
그 시절을 살아낸 중국의 민중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덤덤하게 보여주고 있다.
쑨원이 어쩌고, 위안스카이가 어쩌고...
장제스와 마오쩌뚱이 어쩌고....
신해혁명이 어쩌고, 1.2차 국공합작이 어쩌고...
그런 정치적인 이야기, 역사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 속의 이야기는 그 시절을 직접 겪어낸 진짜 민중의 이야기다.
정치가들이 황제를 끌어내고, 세력다툼을 하고, 전쟁을 하는 사이
그저 먹고사는 일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민중들이 겪은 이야기다.
뒷부분 <또 하나의 이야기>는 샤오메이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부분을 통해 줄곧 품고 있던 ‘왜’를 해소하게 된다.
그녀는 '왜' 금괴를 가지고 도망쳤는지, 그 금괴를 어디다가 썼는지,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아기를 낳으러 돌아왔는지, '왜' 또 떠나야만 했는지.
린샹푸는 '왜' 시진에서 그녀를 찾을 수 없었는지..... 그 모든 궁금증이 이 마지막 장에서 풀린다.
마지막 장은 더욱 슬프다.
10살 어린 나이에 민며느리로 가게 된 샤오메이. 그녀가 시골집을 떠나 처음으로 배를 타고 나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묘사하는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세상이 궁금하고, 넓은 세상을 보고 싶던 그녀. 누구보다 총명하고 반짝이는 눈을 가졌던 그녀.
아버지가 두 손으로 그녀를 안아 흔들리는 대나무 지붕 배에 태웠다. 그녀는 곳곳을 기운 돗자리에 앉았다. 깁지 않은 곳은 기름기가 반질반질했다. 대나무 지붕이 그녀의 굶주린 시야를 막아, 노를 밟았다 놓았다 하는 사공의 맨발과 아버지의 흔들리는 뒷모습만 보였다. 샤오메이는 아버지가 그녀를 시진 선가에 민며느리로 데려가는 중이라고 사공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 대화를 듣고 있으니 무척 피곤해졌다. 대나무 지붕 바깥의 넓은 수역을 보고 싶어서 그녀는 아버지의 등과 사공의 노 젓는 맨발 사이로 바깥 경치를 훔쳐보듯 바라보았다. 작은 배의 일렁임과 뱃전을 스치는 물소리가 놀랍고 신기했다.
위화 <원청_잃어버린 도시>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 샤오메이는 폭설이 내리는 중 무릎으로 이렇게 기도한다.
‘다음 생에도 당신 딸을 낳아주고 그때는 아들도 다섯을 낳아줄게요… 다음 생에 당신 여자가 될 자격이 없다면 소나 말이 되어 당신이 농사를 지으면 밭을 갈고 당신이 마부가 되면 마차를 끌게요. 채찍질해도 돼요.’
위화 <원청_잃어버린 도시>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없었던 그녀의 안타까운 삶.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채 그 사람을 기다리느라 평생을 바친 그의 안타까운 삶.
잃어버린 도시 '원청'은
그들이 잃어버린 사람,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서로를
그래서 그들이 꿈꾸었지만 이룰 수 없었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단숨에 읽히는 글솜씨로, 이 거대한 이야기를 써 준 위화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후속 편을 기다려본다.
유튜브에 출연하신 위화 작가님 인터뷰를 봤는데
딸 린바이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후속 편으로 쓰일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셨다.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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