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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풀잎 Oct 28. 2024

[책리뷰] 이 이야기는 정말 거짓일까?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내가 좋아하는 김민철 작가님의 문장 수집 관련한 온라인 강연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올해의 책'이 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김민철 작가님이 언급한 책.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나도 읽어봐야지 메모해 놨는데....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고는 앉은자리에서 1부 <비밀 노트> 편 완독.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빌려와서 바로 다 읽어버린 책.







이렇게 두꺼운데!(무려 670페이지)

챕터가 워낙 잘게 나눠져 있어 그냥 계속 읽게 되는 책.

대체 이 작가님 필력 무슨 일??



먼저 도서관에서 다 읽어버린 1부 <비밀 노트>는

매우 수려하게, 예쁘게 잘생긴 쌍둥이 어린 남자아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아이들의 이름은 끝까지 언급되지 않는데

그들의 캐릭터만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쟁통에 시골에 계신 할머니에게 맡겨진 두 아이.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온갖 잔혹한 일들을 거리낌 없이 하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무표정하게 자신들이 할 일들을 해내는 두 아이를 그려보면서

무척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하건, 그것을 탓할 수도, 정죄할 수도 없는데

그것은 그 시절의 탓이라고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부 <타인의 증거>에서는 이 두 쌍둥이 형제의 이름이 밝혀지는데

아버지를 따라(?) 국경을 넘어간 아이가 클라우스(Claus), 할머니 집에 남겨진 아이가 루카스 (Lucas)다. (- 두 아이의 이름 스펠링이 동일하다 배열만 다름)

루카스는 원래 살던 마을에 남아서 이웃들과의 관계가 형성되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다양한 사람들의 면면이 새롭다.


3부 <50년간의 고독>은 클라우스 입장에서 루카스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갑자기 대혼란이 시작된다.


알고 보니 이 이 3부작은 각각 따로 쓰였고, 시차를 두고 발표된 작품들이었다.

배경이 되는 시대와 마을이 같고, 등장인물이 같고, 이야기가 시대순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약간은 다른 이야기로 볼 수도 있는 것.

특히 3부는 내용이 좀 달라서 내가 잘못 읽었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했나 찾아봤는데

다 비슷하게 읽은 듯.



1부와 2부는 연결이 되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3부가 클라우스 시점에서 돌아와 다시 만나는 이야기였다면 말끔했을 것도 같고,

그런 한편 3부는 독립적으로도 완성도 있는 느낌이라 아쉬울 것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제목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보니, 어딘가에서는 거짓말이 있고, 그렇다면 그 거짓말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해설을 읽어보니 이 전체 제목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번역 과정에서 세 권의 책을 묶으면서 만들어진 제목이고,


작품의 원제는 1부 <커다란 노트(Le Grand Cahier)> (1986), 2부 <증거(La Preuve)> (1988), 3부 <세 번째 거짓말(Le Troisieme Mensonge)>(1991)이라고 한다.


내 뇌피셜로 말해보자면,

1부 <커다란 노트>는 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담는 노트라는 뜻이 아닐까.


2부 <증거>는 그 전쟁 안에서도, 각자의 삶을 살아간 다채로운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 '인생'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라는 것.

(해설에서 정리해 놓은 부분을 인용하자면, 2부에 나오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아버지의 아이를 낳고 방황하는 처녀, 남편의 억울한 죽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도서관 여직원, 한 권의 책을 쓰겠다는 꿈을 좇으며 폐인이 되어가는 알코올 중독자인 서점 주인,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영리하지만 불구인 소년, 미남이고 지적이지만 소심한 동성연애자인 공산당 간부, 사회체제의 희생양이 된 늙은 불면증 환자... 이들의 인생은 각각 한 편의 장편소설이 되기에 충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3부 <세 번째 거짓말>은 이 번역서의 제목을 따라가 볼 때, 첫 번째 이야기도, 두 번째 이야기도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이 세 번째 이야기도 거짓말이다...라는 뉘앙스로 들리는데, 역설적인 표현이 아닐까.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사실은 다 실제 있었던(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걸 표현하는?



아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술술 순식간에 읽게 되는 재밌는 책이지만, 그 책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뭘까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책.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소설 읽으며 알  수 있었는데

이 작은 소도시로 대변되는 곳은 어디일까.. 궁금했는데 해설을 읽어보니 작가의 고향인 헝가리 쾨세그라는 작은 마을이라고 한다.

구글지도에서 찾아보니 너무 아기자기 예쁜 마을이다.

딱 오스트리아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https://maps.app.goo.gl/vAJeRoMLZnq5idWb8


1935년에 헝가리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작중 쌍둥이 형제를 자신과 오빠를 형상화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전쟁 중에 겪은 이야기들이 상당수 이 소설 속에 녹아든 것이라고.



이처럼 어쩌면

우리의 현실이 이토록 드라마틱한 소설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특히 '전쟁'같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밖에 없는 사건을 마주한 사람의 현실이라면 말이다.


지금도 그 전쟁을 겪고 있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아고타크리스토프 #헝가리 #제2차세계대전 #소설추천 #존재의세가지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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