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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May 17. 2024

부추부침개의 계절이 왔다

한 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부침개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이맘때 부추부침개를 자주 하셨다. 부추가 몸에 좋다며 한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아침마다 부침개를 부쳤다. 여전히,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철이 더 없던 그때의 나는 그런 엄마가 싫었다. 부추부침개 그게 뭐라고. 가뜩이나 날도 더운데 뜨거운 부침개가 뭐야.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요즘 나의 최애 애호박을 넣은 부추부침개. 구운 애호박의 단맛이 너무 좋다. 


때문에 어쩔 없이 엄마랑 살게 어느 아침. 출근하느라 바쁜 나를 붙들고 기어이 부추부침개를 먹고 가라던 엄마. 쳐다도 보지 않았다.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좁은 주방에서 부침개를 하고 있던 엄마가 처음부터 좋게 보이지 않아서다.


"먹고 가."

"싫어. 늦었어."


괜한 신경질을 내며 현관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엄마가 비닐봉지를 내민다. 


"가면서 먹어."


그 안에는 뜨거운 김으로 축축해진 부추부침개가 머리 감고 말리지도 않은 것처럼 엉클어진 채 담겨 있었다. 그 상황이 너무 짜증이 났다. 뜨거운 부추부침개도 싫고, 그거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린 엄마도 싫고, 먼 거리로 출근하기도 싫고, 그럼에도 그걸 받아야 하는 이 상황도 싫고, 기분인 이런 나도 싫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 들었던 그날의 아침. 10년도 더 된 일인데 어쩌면 어제 일처럼 이렇게 생생한 거야.



다 싫다고 엄마가 내민 비닐봉지까지 뿌리칠 수는 없었다. 


"아, 정말... 싫다는데 왜..."


부추부침개를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울었다. 부추부침개 그게 뭐라고. 내가 뭐라고. 이 더위에 부추부침개를. 이 뜨거운 걸 들고 어떻게 서울까지 가라는 건지. 그날의 눈물은 부추부침개 때문이었을까. 엄마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왜 이제와서 사랑하는 척 하는 거야. 사랑해 달라고 할 때는 그렇게 모른 척 하더니. 그렇게 아들 한 사람만 보고 살더니. 


애 낳으면 엄마 마음 이해한다고 하는 말도, 나를 보면 백프로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짐작하겠지만 나는 매정한 딸이다. 이 코멘트도 엄마에게서 나왔다. 언제부터 매정한 딸이었는지, 아니 그러기로 했는지 시작은 알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끝도 알 수 없다는 거다. 이 캐릭터의 끝이 어찌될지 현재로서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일단은 그러기로 했다. 


그래서다. 내가 아무리 이효리 언니를 좋아하긴 하지만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같은 프로그램은 볼 수 없겠다고 생각한 것은. 내게 죄책감을 주는 프로그램일 테니... 미리 차단하겠어.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엄마를 완전 싫어한다거나 보지 않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자식된 도리는 한다. 거기까지다. 왜냐하면 엄마는, 엄마로서 보다는 여성으로서 엄마는 멋진 사람이니까.


이렇게 쓰고보니 또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 엄마로서 꼭 인정받아야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닐까.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잘 산 것도 인정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까. 이렇게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걸까.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나는 엄마가 불편하다. 


부침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가볍게 시작한 글인데 무거워졌다. 다시 분위기를 바꿔서... 엄마가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한 부침개는 싫지만 내가 가끔씩 하는 부침개는 좋다. 맛있어서가 아니라 한 끼 때우기에 적당해서다. 


자고로 음식이란 부담 없이 만들고 맛있게 먹는 게 최고다. 부침개가 그랬다. 야채 적당히 썰어서 부침가루 넣고 쓱쓱 반죽물 만들고 기름 둘러 부치면 끝이니까. 애들도 잘 먹었다. 그래서 종종 재료가 있고 날씨가 딱 부침개를 먹기 적당한,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부쳤다. 


안식월처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때는 더더욱 마다할 이유가 없지. 4월에는 미나리가 한창 나오는 계절이라 부추대신 미나리부침개를 해 먹었다. 시장에서 한 다발에 5천 원. 한 다발은 너무 많지만 반 다발은 팔지 않으니까 샀긴 했는데 양이 많긴 많다. 사실 미나리 한 다발은 처음 사봤다. 살 일이 없었으니까. 


안식월은 안 해 본 던 일 하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내가 좋아서 벌인 일, 아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양이 많으면 어때. 부쳐도 먹고 데쳐서 무쳐 먹으면 되지 뭐. 만들 시간은 충분하다.


상수동에서 먹은 새우미나리전. 바삭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왜 미나리부침개냐고? 안식월 직전, 후배랑 간 술집에서 미나리부침개를 시켜 먹었는데 눈이 동그래질 정도로 맛있었다. 재료를 보니 이건 집에서도 충분히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어서 일부러 만들어 본 것이다. 


칵테일 새우 넣고 부침가루만 넣으면 끝인데, 아뿔싸. 칵테일 새우가 너무 짜다. 건강을 생각해서 일부러 생협에서 샀는데 완전 소금맛이다. 나는 못 먹겠다. 그래서 내 부침개는 새우를 빼고 미나리만 부쳤다. 향긋한 미나리 향이 그만이다. 이런 게 어른의 맛인가.


내가 만든 거 아님. 회사 근처 식당. 퇴근이 빠른 내가 안주 먼저 부추전 시켜놓고 회사 사람들 기다릴 때.


미나리가 들어가면 부추가 나온다. 부추는 엄마가 키우는 작물이니 구입할 필요가 없다. 때때로 부추를 뜯어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엄마의 부추 사랑은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완제품에서 재료 공급책이 되었을 뿐. 


하지 감자가 나오는 6월에는 감자전이 시작되겠지? 김장김치를 다 먹어가는 계절 가을에는 김치부침개를 부칠 테고. 부추부침개와 감자전, 김치부침개의 사이클에서 올 봄 처음 만들어본 미나리부침개까지 나의 부침개 메뉴 하나가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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