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연극 맥베스 모든 공연 매진... 추가 공연 결정'이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 긴박감을 느꼈던 걸까(기사 보고 공연을 보러 간다는 걸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이때 처음 경험했다, 책 <이런 제목 어때요?>에도 이런 제목의 효과가 실렸으니 참고하시길).
그때쯤이면 몸이 나아져서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보려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모든 공연이 매진인지 한번 확인하려 했을 뿐인데 남은 좌석이 있어서였을까. 홀린 듯 공연 예매를 눌렀고 좌석을 지정했으며 결제가 되었다. 이때가 공연 3주 전이었다.
아픈 동안 집에서 딱 일만 했다. 하루 9시간 근무에만 집중했다. 나머지는 다 스톱. 책과 관련된 글도 써야 하는데 쓸 수 없었다. 외부에 사람을 만나러 나가지도 못했다. 하나 잡은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까지 생겼다. 세상에나. 책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던 길을 돌려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서 인증샷을 보내주었던 선배인데... 어찌나 죄송하던지.
무리하면 아플까 봐. 아프면 또 일까지 못하게 될까 봐그것만은 피하고 싶어서 조심해서 생활했다. 공연 날은 휴가를 냈다. 일하고 서울까지 가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공연을 무사히 볼 수 있을까 걱정하며 서울로 향했다. 출퇴근하지않는 것이 감사할 정도로 날이 더웠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그랬는지 사람이 많았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국립극장에 도착했다.
여기가 이렇게 예쁜 곳이었나. 해질 무렵이라 그랬는지,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랬는지, 참 예뻐 보였다. 내가 홀린 듯 공연 예매를 한 뒤, 친구가 내 소식을 듣고 공연을 예매해서 같이 보기로 했다. 비록 좌석은 떨어져 있지만. 대구 출장이 잡혔다고 하더니만 친구는 공연 시간에 겨우 맞춰서 공연장에 도착했다. 나였으면 못 왔다. 친구의 체력에 박수를.
포토월인데 이제 여기서 사진 찍을 체력도 없다.
공연 시작할 때 관계자가 말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도 핸드폰을 켜면 안 된다고,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뭐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지만 하지 말라는 건 안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공연은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나는 예상보다 좋았다.
식상한 표현이나,황정민이 황정민 했다. 영화 속 황정민 캐릭터를 다 합해놓은 듯했다. 원작 그대로가 아니라 현대적으로 변형을 했다고 하더니 그런 연출도 괜찮았다. 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드디어 배우들의 커튼콜.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기어이 꺼낸 사람들이 있었다. 공연 관계자가 이를 쫓아다니면서 일일이 제지했다. 하지 말라는 건 안 해야 하거늘, 이거 원....
배우들이 한 명씩 인사를 하고 관객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맥베스 황정민과 레이디 맥베스 김소진이 손을 잡고 무대 뒤편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난데없이 눈물이 났다. 무대저 끝까지 간 곳에서 황정민이 뒤를 돌아보았다. 무대의 막이 내릴 때까지 어딘가를 응시했다. 커튼콜이 끝이 아니었다. 공연은 바로 이 지점에서 끝나는 거였다. 그러니 당연히 커튼콜에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거였다. 공연이 끝나지 않은 거니까. 그제야 공연 관계자의 안내가 이해되었다(오해해서 미안합니다).
내가 느낀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이 장면이었다. 끝까지 관객을 혹은 무언가를 응시하는 황정민의 표정에서 나는 눈물이 터졌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아픈 몸이 된 내가 서러워서였는지, 아픈 몸으로 걱정과 달리무사히 공연을 봤다는 안도감이었는지, 이런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기쁨이었는지, 욕망을 쫓다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미쳐 버린 맥베스가 안타까워서였는지.
음악회든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공연 중에 울어버리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건 내가 그만큼 연주에, 공연에 몰입했다는 증거다. 연극 <맥베스>도 그런 공연 중에 하나로 남았다. 그래서 기어이 이 글을 쓴다. 기억해두고 싶어서. 이 기분, 이 감정, 이 느낌을.
약 먹은 지 열흘. 팔이 타들어가는 증상은 줄었다. 등통증도 줄었다. 그렇다면 그간 내가 느낀 증상은 신경주사 후유증이 아니라 디스크 증상이었던가. 내 이야기를 듣던 지인이 말했다.
<백년목>에 보면 목에는 신경이 다양하게 지나가서 방사통도 다양하고, 말단에서 일어난 통증인지 목디스크 방사통인지 구별하기 힘들다,가 결론이었어요.
정체모를 그것 때문에 오늘도 기분이 오락가락 한다. 타들어가는 팔 통증만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잠잠하나 쎄하고 시원한, 갑자기 뼛속이 서늘해지는 기분은 여직 남아 있다. 내가 다닌 한의원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치료에는 시간과 환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침만으로, 약만으로, 주사만으로 되는 건 없다. 가급적 자주 일어나서 움직여주는 이유다. 글 쓰는 시간도 짧을수록 좋다. 그래서 이만 쓴다. 퇴고까지 하려면 이정도가 적당하다. 아쉽게도 연극 <맥베스>는 18일, 어제 끝났다. 이 글을 읽고 혹시 봐야겠다 싶은 분들은 다음 기회를... ㅠ.ㅠ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인 친구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잊기 전에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세상에. 노트북도 무거웠을 텐데 내 책까지 들고 대구와 서울을 동동거리며 다녔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친구야, 그러지마. 우리 이제 몸 아껴야 해. 말만 그랬지 나도 몸을 아끼지 않고 길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한 자 한 자 진심을 담아 사인을 했다. 이래저래 눈물 나던 날이었다. 땀도 무지하게 나고.
집중의 입모양. 30년 우정 앞에서 무릎을 아낄 수 있나. 벗은 안경은 노안의 흔적. ㅠ.ㅠ
- 목 디스크 치료일지는 다음에 더 긴 버전으로 만나요. 쓸 수 있을....까. 쓸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