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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니 Oct 31. 2024

첫 시도의 기록

세 명의 배우와 각양각색 수강생

여자는 거칠게 식탁을 밀고 일어난다. 됐어, 헤어져. 좌절한 얼굴의 남자는 그 앞에 무릎 꿇는다. 이러지 마. 딱 한번 잔 것뿐이야. 내가 사랑하는 건 너인 것 알잖아. "네, 여기까지 합시다." 이 말 한마디에 애걸하던 남자는 금방 웃으며 툭툭 털고 일어난다. 


즉흥극. 간단하게 주어진 관계와 상황만으로 배우들이 극을 이어간다. 심장이 뛰었다. 의심과 회피. 눈물. 노여움. 신경질. 애원. 무대를 채운 감정들이 오랜만이긴 했지만, 단순히 그 감정들을 바로 앞에서 목격해서는 아니었다. 유년기. 명절을 맞이해 들린 친척집에서 사촌언니의 장난감을 발견한 기분. '나도 이거하고 싶어.' 순수한 욕망의 실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현직 배우가 진행하는 시민 대상 무료 강연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 안 하려고 했지만, 이 강연으로 무언가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즉흥극을 해보고 싶다니. 큰 성과였다. 

이 강연을 통해 내가 연기에 정말 잠재력이 있는지, 연기를 정말 좋아하는지, 하고 싶어하는지

첫 시도였다. 내 잠재력을 발굴하는 첫 시도. 

미드 써리 크라이시스를 맞이하고, 내 잠재력 찾기 프로젝트의 첫 시도로, 이 강연을 신청했다. 

잠재력 찾기 프로젝트. 알고 싶었다. 이제껏 제대로 임해본 적은 없지만,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연기 잠재력 찾기 프로젝트 첫 시도였다. 

진짜 내 잠재력을 알고 싶었다. 잘하는 것도 재능이지만, 좋아하는 것도 재능이기에. 얼마나 좋아할 수 있는지만이라도 알게 된다면 성과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력치뿐 아니라 얼마만큼 이것을 좋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잠재력을. 알고 싶었다. 연기에 대한 내 잠재력을 알아내고 싶어 처음 움직인



중년의 배우가 자신의 연기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릴 적부터 차분한 성격에 글 쓰는 게 좋아 문예반에 들었지만, 연극 동아리를 만들었다는 그는 몇 번이고 연극을 포기하려 했단다. 그때마다 다시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생겼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과 병행하면서 꾸준히 연기했다. 극단 생활을 오래 해 매체 연기는 비교적 늦게 시작한 편이라곤 하지만, 필모그래피는 빼곡했다.


선배를 따라 강연에 참여한 두 명의 배우가 더 있었다. 두 사람은 선배의 지시로 즉흥극을 선보였다. 

"주제는 불륜입니다. 두 사람은 부부예요." 이 문장으로 단숨에 막이 올랐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배우는 휴대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마무리했고, 이제 막 귀가한 배우는 의미심장하게 상대를 불렀다. 화장실 휴지통에서 뭐 좀 발견한 게 있는데... 남편은 딱 잡아떼고, 부인은 울부짖는다. 


"이제 상황을 좀 더 줄게요. 여자는 이 남자와 끝내고 싶어 해요. 남자는 아닙니다. 이렇게 가 볼게요."


그러니 방향이 조금 더 명확해졌다. 남편은 본격적으로 빌기 시작한다. 부인을 만지고, 쓰다듬으려 하지만, 이미 마음이 접힌 부인은 손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몇 분이나 실랑이가 이어졌을까, 결국 여자는 그 말을 하고 만다. "그만해, 그냥. 헤어져."


강연장이라곤 하지만, 단차가 전혀 없는 공간이었다. 감상보다는 목격에 가까웠다. 이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상대에게 드러낸 적의는 실제의 그것이었고, 눈앞에서 일분일초마다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도 덩달아 잔뜩 몰입해 상황을 지켜봤다. 숨 쉬는 법도 잊은 것처럼 객석이 조용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강연장이 아닌, 두 사람의 스무 평 남짓 아파트 거실에 있는 것 같았다. 그제야 이해했다. '무대'가 연극의 3 요소가 아니라 4요소에 들어가는 이유. 배우와 관객만 있다면 어떤 곳이나 무대가 되는구나.


마법이 끝난 것처럼, 일순간 두 사람은 극에서 빠져나왔다. 눈물이 아직 눈가에 고여있는데 "저희 열몇 살 차이 나요."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터져 나오는 박수를 참지 못하며 문득 데자뷔를 느꼈다. 이거 어디서 봤는데. 지독한 상상력의 운명론자는 이 순간이 미래의 나를 구성하는 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데자뷔를 느낀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인상 깊었던 건 배우들만이 아니다.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족을 잃고 애도의 수단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이. 밤 산책의 일환으로 집 근처 강연장을 찾았다는 부부. 시니어 배우를 꿈꾼다는 온기 가득했던 선생님. "이젠 좀 써라..." 대중 앞에서 면박의 탈을 쓴 애정을 보여준 어머니와 예비 작가 따님. 젊은 시절, 대학교에서 무료로 나눠준 티켓으로 연극을 엄청 봤는데, 예전 생각이 나서 강연을 신청했다는 어르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닥불도 없고 크리스마스트리도 없는데 그런 곳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이토록 따스하고 무해한, 아름다운 사람들 틈에 있다니. 


"모르겠어요. 오늘 여기 온다고 생각하는데 괜히 뭉클한 거예요. 찡했어요." 강연자가 그렇게 느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첫 시도치고 큰 성과였다. 즉흥극 해보고 싶어하는 자신을 알아차린 것도, 50대에도 도전하신다는데, 역시 늦은 건 없다는 위안을 얻은 것도. 강연을 듣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터다. 또 하나, 솔직히 처음 본 배우. 아니, 처음 본 배우라고 생각한 연사는 어머니 또래임에도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칼에 한 손에 쥘 듯한 얇은 허리을 갖고 있어 그림자만 보면 20대의 그것인지 회갑을 넘긴 이의 그것인지 알 수 없을 법했다. 그보다 놀라웠던 건 그의 활력이었다. 일상의 그 어떤 중년에게서도 저런 활기와 열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젊음이 팔딱이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모친상을 치렀다는 그녀는 친밀한 모녀 수강생을 보며 찬사를 보냈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은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꼬옥 안아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소감을 물었다. 더 나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팁을 주었다. 따뜻하고, 작은 일에도 성심성의를 다 하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정말 연기를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배우라는 건, 배고픔을 감수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내내 할 수도 있는 일이겠구나. 그래, 그쯤 되어야 공평하지. 


여운이 가시지 않아 수업이 끝나고 한참을 휴대폰을 붙잡았다. 배우님의 인터뷰와 약력을 다시 훑었다. 세상에... 그 작품에 나오셨다고? 같은 영화 두 번 안 보는 내가,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극장에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본 영화에 출연하셨단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바로 기억하는 그 배역이었다. 파리한 얼굴. 갖춰 입었지만 미처 추스르지 못한 마음이, 부스스한 머리칼과 메마른 피부로 한눈에 드러나보였던 그 역할. 극 중 임팩트가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대사. "어떻게 다리가 무너지니" 그 대사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무슨 일이 있구나' 관객에게 힌트를 줬던 배우. 바로 그 배우였다. 이럴 줄 알았음 사인이라도 받을걸. 후회가 막심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 이미 수업은 끝났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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