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
ㅣ 들어가며 ㅣ
<북유럽 디자이너 토크>는 다양한 분야의 북유럽 디자이너들과 직접 마주 앉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는 토크 세션입니다. 북유럽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비롯한 패션, 건축, 뮤지엄, 놀이터, 카페, 게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중 하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건축물 중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덴마크의 미술관이 있다. 코펜하겐에서 북쪽으로 약 35km 떨어진 Fredensborg 시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현대 미술관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이다. 북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서 단연 주목받는 미술관 중 하나다. 지난 2010년 출장 중 이 미술관에 처음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때의 감동은 잊히지 않는다. 디자인 업계에 있다 보니 개인적으로, 업무상으로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를 다닐 기회가 있었지만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단연 최고였다. 미술관에 도착해 처음 마주하는 건물의 입구는 그저 유럽의 오래된 고택 느낌이다. 하지만 입구를 들어서면 현대적으로 리모델링된 실내와 더불어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야외 조각공원, 푸르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분위기에 압도된다. 건축과 자연의 완벽한 공존이다. 이제 북유럽에 살게 된 나는 연간회원으로 틈날 때마다 들르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토크 세션은 어느 때보다 기대가 컸다.
늦가을 어느 날 진행된 <디자이너 토크>는 루이지애나 미술관 내의 작은 오피스에서 진행되었다. 미술관의 디자인 총괄 (Head of design), 마리에 뤼베커 (Marie d’Origny becker)와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Communication manager), 토마스 벤딕스 (Thomas Bendix)와 함께해 흥미로운 미술관의 이야기를 함께 해주었다.
이렇게 디자이너 토크 세션에 참여해주어 고맙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소개를 부탁한다.
토크 세션을 함께 하게 되어 영광이다. 디자인 총괄을 맡고 있는 마리에,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토마스라고 한다. 미술관의 전반적인 운영과 전시기획 등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루이지애나 (Louisiana)라는 미술관의 명칭은 이 건물의 최초의 소유자였던 알렉산데르 브런 (Alexander Brun)의 세 명의 아내 이름 루이즈 (Louise)에서 유래한다. 이후로 그 장소에 지어진 미술관 역시 ‘루이지애나’로 명명했다고 한다. 미술관 자체의 건축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는 요르겐 보(1919~1999년)와 빌헬름 워럴트(1920년생) 두 건축가에 의해 무려 30여 년의 기간 동안 상당히 공을 들여 완성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단순히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만은 아니다. 바다, 공원, 하늘과 어우러진 미술관 건축이 하나로 어우러져 거대한 작품이 되고 있다. 모든 것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멋진 상상력에서 출발한 결과이다.
각자 본인 소개와 어떤 계기로 미술관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마리에) 학교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 비주얼 디자인에 관련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오다가 뮤지엄 분야에서도 디자인 역량을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하게 되었다. 현재 뮤지엄의 디자인 부문 총괄을 맡고 있다. 뮤지엄의 브로셔부터 매거진, 그래픽 포스터, 사인 디자인 뮤지엄의 비주얼 랭귀지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을 맡고 있다. 이렇게 뮤지엄 안에 인하우스 디자인팀이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기에 상당히 매력적인 직업이라 생각한다.
토마스) 저널리스트와 에디터로 오래 일하며 광고, 뉴스, 소셜 분야에서의 경력을 갖고 있다. 예전에 잠시 이탈리아 로마에 있을 당시 예술 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디자인 매거진을 위해 일을 하다가 루이지애나에 합류했다. 현재 마케팅에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루이지애나는 덴마크를 넘어 북유럽을 대표하는 뮤지엄 중에 손꼽힌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뮤지엄은 어떤 의미인가?
자랑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상당히 가치 있는 유산 (heritage)이다. 지난 20년간 루지애나 뮤지엄은 많은 변화와 발전을 해왔다. 느꼈겠지만 이곳은 단순히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전시 공간에 있는 작품들 하나하나도 물론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그 공간과 건축이 주는 이야기는 하나의 ‘예술’에 가깝다. 뮤지엄의 건축과 야외공원,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바다 풍경까지 어우러져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예술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특히 이곳은 덴마크인들에게 홈 같은 곳이다. (‘Homey - 집 같은 느낌’이라는 표현을 썼다.)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 아직도 조금은 낯선 분야이다. 이 분야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매 시즌 새로운 작가들과 전시를 기획하고 협업하는 과정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흥분되는 시간이다. 예술가를 포함해 건축가, 디자이너, 작가, 아티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가진 이들과 함께 협업한다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또한 관람객들에게 예술이라는 낯선 분야를 ‘접근’시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그들의 선입견을 없애주고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해주어 마침내 그들이 예술에 대한 장벽을 허물게 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전시기획에 따라 뮤지엄의 전체의 콘셉트도 변화하고 성장한다.
전시 기획을 할 때 특별히 중요하게 초점을 맞추는 부분이 있다면?
뮤지엄의 지난 10년간은 초점은 조금씩 바뀌어왔다. 시대의 변화와 문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랐다. 이를 위한 프로젝트로 1년에 한 번 이상 메이저 전시 (major exhibition)을 기획한다. 예를 들어 작년에 진행했던 피카소 특별전이 그것이다. 또한 컨템프러리 아트 (contemporary art) 영역 역시 중요한 부분 전시 테마이다. 컨템프러리 아트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설치미술, 미디어 아트, 경험 전시 등 다양한 포맷으로 진행되고 있고 관람객의 반응 또한 뜨겁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의 예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주요 과제이다. 내부적으로는 이를 사우나 원칙 (Sauna principal)이라 칭하기도 한다. 즉, 차갑고 따뜻한 것을 동시에 오가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작품과 초현대적인 컨템프러리 아트를 믹스해 구성하는 식이다. 현재는 달 (Moon)에 대한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과학과 예술이 접목된 역시 사우나 방식의 흥미로운 전시이다. 이 같은 경험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흥미로운 방식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정말 마음에 든다. 미술관에서도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은데
최초 뮤지엄 설립자는 특히 아이들을 위한 섹션 (Children wing이라 부른다)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전시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가장 액티브 한 공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그곳에서 놀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온다. 뮤지엄이 하나의 문화가 되고 이야기가 되어가는 것을 본다. 상당히 뿌듯한 일이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결국 우리의 미래를 이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이지애나 뮤지엄은 전시내용도 좋지만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에 모두 놀라곤 한다. 이곳에 자리 잡게 된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미술관의 설립자이자 아트 컬렉터였던 쿤드 젠슨이 강아지와 산책 중에 우연히 이 땅을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에도 꽤나 고가의 지역이었는데 당시에는 노인들을 위한 케어센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한다. 자신이 소장한 작품을 대중에 공개할 수 있는 뮤지엄 건축을 계획하던 그는 1956년 이 땅을 매입하게 된다.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외레순드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후 건축가 요르겐 보(1919~1999년)와 빌헬름 워럴트(1920년생)에 의해 30여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사려 깊고 신중하게 지어진 이 공간은 ‘자연의 일부가 된 완벽한 뮤지엄’ 이란 찬사를 맡으며 매해 수많은 관람객의 발길이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행이나 출장 일정 사이에 꼭 그 도시의 미술관을 방문한다. 여러 도시의 미술관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동의한다. 그 나라의 혹은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뮤지엄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루이지애나도 마찬가지다. 덴마크의 역사가 담겨있고 현재 혹은 미래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특히 뮤지엄 건축물과 공원이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스며들듯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덴마크를 표현하는 그 자체와도 같다. 동시에 현재 그리고 앞으로 덴마크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중요한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이유로 전시기획에 있어서도 상당히 많은 리서치와 세밀한 전략을 세우고 진행한다. 단순히 흥행 위주의 전시가 아닌 어떤 방향성을 던져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시 디자인은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충실함과 동시에 관람객들의 동선과 행위 등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과정이라 생각된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때문에 실질적인 제안 즉, 전시 브로셔나 공간 안내도, 사인물 등도 전체 전시의 콘셉트가 고스란히 표현되도록 그래픽적 요소나 색채, 비율 등을 최대한 고려하여 디자인한다. 동시에 관람객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부드러운 동선’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뮤지엄에 있어서 이 ‘흐름’은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메인홀(main hall)의 작품들을 둘러보며 감상하다가, 서브 홀(sub hall)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관람객의 감정선의 변화를 유도한다. 각 홀이 전혀 다른 전시내용이라 할지라도 ‘루이지애나’라는 커다란 지붕 아래에서 하나의 융합된 감정선을 끌어오게 하는 것이다. 같은 작품이라도 이곳에서 보게 되면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관람객들이 많은 이유이다. 이런 피드백을 받는 또 하나 그 이유는 바로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 (nature)’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천혜의 자연환경은 이미 미술관의 일부이기에 루이지애나의 특별함이 완성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처음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마주하는 ‘메인 입구의 첫인상’에 적잖이 놀란다는 것이다. 매년 70만 명이 방문하는 뮤지엄 치고는 아주 작고 소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오면서 펼쳐지는 드넓은 자연의 풍광에 감탄하게 된다. 이는 겸손(humble) 하며 자연을 존경(respect) 하는 덴마크의 마인드를 잘 반영한 설계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수 많은 작가들과 전시를 진행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정말 부럽다. 지금까지 인상적인 전시가 있었다면 소개해 달라
(웃음) 말할 수 없다. 너무 많아서. 마치 지금까지 먹어본 수많은 음식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과도 같다. 그래도 하나를 고르자면 우리 모두 2017년에 진행한 테른 사이먼 (Taryn Simon) 사진전이 기억에 남는다. 볼 수 없는 숨겨진, 혹은 비밀스러운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그녀의 이야기는 감각적이며 압도적이었다. 물론 관람객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기획해보고 싶은 전시다.
https://youtu.be/QTW1YeF9hOw?list=PLQjV1I6Kfcoc56WDwIJE3pYVqvW7mLNfp
https://youtu.be/4yxizkenxZ0?list=PLQjV1I6Kfcoc56WDwIJE3pYVqvW7mLNfp
https://youtu.be/K21VOMQqizU?list=PLQjV1I6Kfcoc56WDwIJE3pYVqvW7mLNfp
크리에이터들과 새로운 전시를 기획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여 진행하는가
무엇보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맥락과 잘 부합되는지를 본다. 때문에 작가의 선정이나 협업 과정 역시 상당히 섬세하고 엄격하게 진행된다.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세분화된 프로세스와 철저한 고증, 트렌드의 반영까지.. 다각적으로 고려하여 진행되기에 기획단계에서도 상당한 준비기간이 소요된다.
최근 다양한 뮤지엄들이 온라인 전시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온라인 환경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지만 결론적으로 ‘온라인 전시는 하지 않는다’이다. 대신 루이지애나 채널 (Louisiana channel)를 통해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작가와의 인터뷰 진행을 하여 공유하고 있다 (이미 500여 명의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문하기 전 미리 전시작가에 대해 숙지하고 온다면 그만큼 질 높은 감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 관람이라는 것은 결국 ‘경험’이다. 현장에서 직접 작품을 보고 경험해야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는 북유럽 디자인 트렌드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덴마크인으로서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상당히 흥미로운 흐름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덴마크의 예술은 아시아, 특히 일본에서 상당히 많은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젠(Zen), 심플리시티(simplicity), 크래프트먼쉽 (Craftsmanship), 겸손 (humble) 등의 키워드는 아시아와 북유럽을 관통하는 공용어인 것만은 확실하다.
디자이너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누구와 경쟁하기보다는 스스로가 가진 재료(material)를 믿으며, 절대로 호기심 (curiosity)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첨단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모든 정보를 너무나 쉽게 얻어버린다. 호기심이 성장할 틈이 없어 보인다. 가까운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에 들러 영감을 주는 작가들의 전시에서 아날로그적인 지성을 얻는 것을 권하고 싶다. 결국 이런 아날로그적인 지성을 얻게 되는 순간들이 모여 호기심을 지속시켜주고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는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자연에 대한 겸손과 존경의 태도 - 이번 토크 세션을 진행하면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단어였으리라. 실제로 루이지애나 뮤지엄은 수많은 화려한 수식어에 비해서 지극히 겸손한 모습이었고, 대자연을 존경하는 자세로 마치 환경에 조용히 스며들듯 존재했다. 덕분에 관람객은 건축과 자연의 어우러짐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을 바라보는 감정에 휩싸인다. 다른 미술관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경험이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스스로를 애써 드러내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이들을 빛나게 해주는 ‘지혜로운 조연’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 전시되는 작품에는 어떤 특별함이 스며들어 있다. 결코 다른 뮤지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몇 단어로 형용하기에 힘든 그 어떤 것이다. 그 특별함이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결국 당신에게 발견될 것이다.
진정한 가치가 담긴 본질 속에는 가볍지 않은 여운이 있는 법이다.
ㅣ END ㅣ
글쓴이 : 조상우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로, 사진을 기록하는 포토그래퍼로, 그림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유럽으로 향한 한국인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은 책, <디자인 천국에 간 디자이너 / 시공사>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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