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될 줄 알았을까? 엑스포 단상
부끄러운 민낯
"서면상 혹은 미팅에서 지지 의사를 밝혔던 국가들이 실제 투표에서는 사우디를 택할 줄 몰랐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의 결과에 대한 정부측 인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역시 사우디 돈맛에 넘어가 그렇구나.. 하고 수긍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좀 다른 생각도 든다. 정말 서면 지지를 받으면 그대로 우리를 택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공기업에 3년 정도 근무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민간기업과 달리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물론 좋지만, 결과가 좋게 나오기가 힘든 무수한 여건 속에 있다. 예산도 없고, 전문성도 부족하므로 결과가 좋게 나올리가 없다. 그들 자신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 외부에서 평가하는 냉정한 결과보다는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보고 과정에서 상사/상위 부처/더 윗선의 좋은 '피드백'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면 자료나 수치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거나 가라로 꾸미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엑스포에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이번 판세에 대한 오판도 왜 그런지 얼추 짐작이 된다. 분위기 상 열세라는 것이 분명하지만, 윗선에서 필요성을 느끼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어필하고 싶어함을 알게 되면 아랫 사람들은 그런 기조에 맞춰 자료를 만든다. 자료 상에는 허점이 없다. '서면상 지지국가 00곳' '대사 미팅시 긍정적 반응 00곳' 보고서는 그러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싶었던) 시그널들을 가능한 많이 담아서 윗선에 보고했을 것이다. 리스크가 있다고 냉정하게 부정적 반응을 보인 국가들을 정리하기도 어려우니 (높은 분들이 찾아가서 엑스포 찍어주면 뭐도 해주고 뭐도 해줄께.. 하는데 웃는 낯에 침뱉는 이들이 있을까) 긍정적 반응 위주의 보고와 희망적인 예측이 담겼을 것이다. 윗분의 희망을 뒷받침해주는 근거자료가 충분하니. 언론에도 힘을 실으며 으쌰으쌰 분위기를 만들면서. 소수의 희망을 "국민의 열망"으로 탈바꿈 시킨다. 그리고 그 헛된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명분이 마련된다.
얼마전 읽었던 '세이노의 가르침'에 이런 말이 있었다. "명분이란 개인의 욕심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주는 습성이 있으므로 언제나 명분에 속지말고 그 속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야한다." 겉만 화려한 포장지를 벗기고 보니 엑스포 유치를 위한 체계적인 분석과 계획도 없었고 세계인의 마음을 울릴 메시지도 준비돼있지 않았다.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건 밖에서 보면 잘 안다. 외국인들이 조중동을 읽진 않으니까. 국뽕으로 점철된, 한국인들끼리 똘똘뭉친 대의명분에 손을 들어준 29개 국가에 그나마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