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급진적인 주장이지만,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엉터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 주장은 ‘최종 고용자’ 또는 ‘최후의 고용자’(employer of last resort·ELR)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에 빗대 명칭이다. 민간 금융시장에서 자금 융통이 막혔을 때 중앙은행이 나서 자금을 빌려주는 것처럼, 민간이 충분한 고용을 일으키지 못할 때 정부가 나서 이들의 일자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다.
ELR 도입을 일찍이 주장했던 사람으로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1919-1996)가 있다. ‘민스키 모멘트’라는 금융시장 불안정 연구로 유명한 그 민스키다.
포스트 케인지언으로 분류되는 민스키는 주류 케인지언 경제학자들과 달리 정부의 복지 지출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복지로는 가난을 구제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실업은 그 자체로 사람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기 때문에 정부는 복지보다 일자리 제공에 열중해야 한다고 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겐 복지 혜택을 줘야 하지만, 일할 능력이 되는 사람에겐 일자리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스키는 ELR 프로그램으로 늘어나는 정부 지출은 복지 지출 삭감으로 상당 부분 충당될 수 있다고 했다.
요즘 ELR이 다시 거론되는 이유는 기본소득(basic income) 논의가 활발해진 이유와 같다. 민간 고용이 늘어나기 힘든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월가에서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 핌코(채권운용사) 창업자도 ELR 찬성론자다. 그는 2016년 11월 자신이 몸담은 야누스캐피털의 투자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
“Corporations are fighting structural headwind, such as demographic aging, technological displacement of jobs(robotization), deglobalization, and overleveraged balance sheets. They focus on the bottom line as opposed to public welfare. Government must step in, not by reducing taxes, which will only increase profits at the expense of labor, but by being the employer of last resort in hopefully a productive way.”
요약하면, 여러 구조적 요인으로 민간 기업이 고용 창출은 고사하고 먹고 살기도 바쁘니, 정부가 최후의 고용자로 민간 고용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의 스승 격인 앤서니 앳킨슨 전 런던정경대(LSE) 교수(1944-2017)도 ELR 도입을 찬성했던 인물이다. 그는 2015년 펴낸 책 ‘불평등(inequality)’에서 “정부는 실업을 예방하고 줄이기 위한 명시적인 목표를 채택하고, 원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주는 공공부문 고용을 보장해줌으로써 이 목표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했다.
‘공공부문 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 정부가 실업자를 공무원이나 공기업·공공기관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ELR에서 말하는 ‘고용 보장’은 공공 일자리를 말한다.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고, 공원과 숲을 가꾸고, 골목과 범죄 사각지대를 순찰하는 일 등이다. 물론 아무에게나 어린이나 노인을 돌보게 할 수는 없다. 업무에 따라 자격 심사도 거치게 된다.
임금은 최저임금을 적용해 지급한다. 민간 고용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마찬가지 이유로 근로시간도 법정 근로시간(예컨대 40시간) 내로 제한된다. 이에 따라 ELR에 드는 비용은 ‘최저임금×근로시간×참가인원’으로 산출된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파트타임 근로자도 ELR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는데, 대신 파트타임과 ELR 근로시간을 합친 것이 법정 근로시간을 넘어선 안 된다.
ELR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이 나온다. ELR은 정부가 노동력을 놓고 민간 기업과 경쟁하겠다는 것이며, ELR 도입 시 민간 고용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반면 ELR에 찬성하는 앳킨슨 교수는 민간 노동시장에서 노동 공급을 어느 정도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지금 문제는 민간에서 노동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것이며, ELR로 정부가 노동력을 흡수하면 민간 노동자의 임금 협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설명한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도 관건이다. 비판자들은 ELR로 실업률이 낮아지고 소비가 늘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기본임금에도 가해지는 비판이다. 찬성론자들은 ELR이 오히려 물가 안정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경기가 좋아져 민간 고용이 늘고 노동임금이 오를 때, 노동력이 ELR에서 민간 노동시장으로 이동해 임금 상승 압력을 낮춘다는 것이다.
찬성론자들의 논리가 허술하진 않지만, ELR은 여전히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책으로 여겨진다.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복지를 줄여 정부 재정부담이 크게 늘지 않을 거란 분석도 있지만, 정부가 얼마나 돈을 들여야 하는지, 대규모 공공 일자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등에 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록 미국에서 1935~1943년 뉴딜 정책의 하나로 공공사업국(WPA)이 800만 명에게 공공 일자리를 제공한 선례가 있지만, ELR은 이를 상시화하자는 것이어서 도입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ELR이든 기본소득이든 도입 가능성은 민간의 고용 창출 능력에 달렸다. 그런데 이런 지적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차량공유업체인 우버가 선진국에서 사실상 ELR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만 있으면 누구나 유사 택시 영업을 할 수 있는 우버가 잉여 노동력을 흡수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버 운전자 상당수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벌고 있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이게 지속가능한 모델인지 의문도 큰 상황이다. 게다가 자율주행차가 보편화하면 우버 운전자가 사람에서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민간 고용을 늘리기 위해 노동 규제 개선, 노동자 재교육 등을 우선 시도해봐야겠지만, 그래도 민간 고용이 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LR이나 기본소득 도입을 ‘미친 짓’이라며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