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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May 27. 2024

Ep 3. 긴 여행의 마무리

4월 22일 시작, 5월 16일 마무리, 장장 24여 일에 걸친 전국 여행을 잘 마무리하였다.


즐겁다.


이렇게 서울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장기간의 여행은 즐거움도 가져다주지만 못지않게 큰 피로감도 안겨다 준다. 여행 말미쯤에는 서울에서의 삶이 슬슬 그리워지곤 했다. 하지만 여행의 과정은 매우 의미 있었고 이 글을 통해 내가 느낀 소소하지만 중요한 사실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1. 전국을 돌아다니며 내가 느낀 짤막하지만 의미 있는 생각들의 모음

2. 지역별로 느낀 점

3. 사진, 그리고 생각

4. 앞으로의 계획


시작해 보자.


1. 전국을 돌아다니며 내가 느낀 짤막하지만 의미 있는 생각들의 모음


지난 대부분의 삶을 수도권에서 살아온 내게 한 달 가까운 타지에서의 시간은 엄청 특별하지는 않지만 나름 새로운 '낯설게 보기'를 가능하게 해 준 것 같다. 대단치는 않지만 나름 곱씹어 볼만한 생각의 조각들이 많이 쌓였는데 지금 그 내용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어떠한 생각의 집합체이기도 하고 단순히 흥미로운 사실이기도 하다.


- 생각보다 심각한 지방 지자체의 인구 소멸 이슈

어떤 지역을 방문하기 전에 '나무위키'를 통해 해당 지역에 대해서 공부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이기도 했고 방문하게 될 지역의 현황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들어서였기도 했다. 나무위키에 빠지지 않는 항목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인구 현황'인데 보통 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인구 통계 그래프가 그려지고 그 모양은 대부분 역삼각형이었다 (인구가 줄고 있다는 소리). 교과서에서만 보던 인구 소멸 현상이 실제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고 어떤 지역을 방문했을 때 '어린이 보호 구역'이 아닌 '노인 보호 구역'을 심심찮게 보았을 때 그 느낌은 보다 더 구체화되었다. 카카오맵을 통해 해당 지역을 줌인, 줌아웃 해가면서 근처에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 종종 살펴보기도 했는데 이른바 '번화가'라고 불릴 수 있는 지역도 상당히 제한적이었고 어딜 가든 사람이 많은 서울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지역에서 상당한 한산함이 느껴졌다. 이는 산업의 발달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가 있는데, 실제로 나무위키를 통해 살펴본 바 젊은 사람들이 해당 지역에서 뿌리를 딛고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많이 부족하다는 게 느껴졌다. 가끔가다 젊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지역도 볼 수가 있었는데 이 또한 해당 지역의 '공무원' 혹은 근방 대학의 대학생 들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 Epiphany는 일상에서 발견된다.

Epiphany라는 단어가 있다.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단어인데 옥스포드 사전의 정의를 빌리자면 'a sudden and surprising moment of understanding'이다. 즉,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참 의미가 기묘하면서도 좋다. 금번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이러한 '깨달음'의 순간이 오기를 기대했었고, 혹시나 이런 깨달음이 없더라도 깨달음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초기 글을 통해 밝혔었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후자'에 가깝다. 여행이라는 돗자리를 펴고 '자 깨달아봐'라고 한 들 깨달음이 오지는 않더라. 오히려 좋은 자연과 풍광, 깨끗한 공기, 좋은 음식들 많이 먹고 왔다. 사실 그뿐이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삶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깨달음은 어떤 몰입이 아닌 불현듯 찾아왔었는데 그걸 금번 여행을 통해 새삼 다시금 알게 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평소에 자기 회고를 틈틈이 해 왔기 때문에 더 생각할 만한 주제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새로운 것은 없었다. 다만, 이번 여행을 계기로 PM이라는 업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고 관련된 도서를 틈틈이 탐독하고 왔다. 결국 overwhelm(과함, 혹은 과도함)이 문제였지 적당한 pressure 하에서는 여전히 나는 이 '기획'이라는 업무를 상당히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 해당 지역의 발전상은 노면 상태와 '헬스장'을 보면 된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로드 트립이었고 따라서 전국 각지의 도로들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확실히 지자체에 따라 도로 노면 상태가 다르다는 게 체감이 됐다. 예를 들어 여수와 같이 관광과 산업이 잘 발달 돼 있는 도시는 노면의 상태가 서울과 특별히 다를 바가 없었고 그에 반해 인구가 매우 적은 어떤 지자체는 조금만 외지로 가면 노면 상태가 거칠어져 확실히 운전에 주의가 필요했다. 이는 운전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또한 헬스장을 통해서도 해당 지역의 '번화함'을 어느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었는데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떤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해당 지역의 '일권' 헬스장을 검색해서 찾아갔었고 해당 헬스장의 '컨디션'에 따라 해당 지역의 발전상을 어느 정도는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가 있었다. 역세권이 아닌 헬세권이라고 해야 하나. 잘 발달된 도시의 헬스장은 서울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고 어떤 지자체의 헬스장은 일권 비용이 상당함에도 상당히 낙후된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 관광객 유치를 위한 각 지자체들의 노력

이번 여행 동안 돌아다닌 지역은 총 13곳이다. (홍천-고성-동해-영덕-안동-대구-통영-거제-순천-여수-해남-군산-대전) 사실 우리나라 크기가 엄청 큰 편은 아니기 때문에 지역별로 엄청 특색 있는 관광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대부분 비슷했는데 

가. 유적지이거나, 

나. 자연경관이거나, 

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이었다. 

특히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 중 상당수는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케이블카, 루지, 집라인 등 레저성 관광 자원이었는데 특히 케이블카의 경우 상당히 많은 지자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케이블카와 같은 관광 자원들은 지자체별로 많이 겹쳐 특이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관광 경험 상 reusable 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느껴졌다. 예를 들어 통영 케이블카를 타는 경험은 매우 좋았지만 통영에 갈 때마다 케이블카를 타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통영에서 케이블카를 탔으면 여수에서 케이블카를 타는 재미가 다소 떨어지기도 했다. (비슷한 경험이니까?) 관광객이 잘 모여야 지자체에 돈이 들어오고 또 지역 투자로 재투자되는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많은 지자체에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확실히 국내 관광만의 '특색'은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다고 느꼈고 이는 지자체 차원 혹은 국가 차원에서의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다 같은 바다가 아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동해, 남해, 서해의 바다를 모두 보게 되었다. 세 바다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보게 되니 약간의 흥미로운 차이점이 느껴졌다. 물론 같은 동해 바다라도 하더라도 지역마다 느낌은 다소 다르다. 하지만 일단 삼면의 바다 별 대략적인 특징을 적어보자면


동해: 우리가 알고 있는 웅장한 바다에 가장 어울리는 느낌이다. 장엄하게 들리는 파도 소리, 끝도 없이 펼쳐진 수평선, 거침 등. 동해 바다를 쳐다볼 때 가장 속이 후련한 느낌이었다. 내가 괜히 속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금번에는 고성, 동해, 영덕바다를 보고 왔는데 단연 기억이 남는 바다는 고성 바다였다. 한적함 속에 거친 웅장함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꼭 방문을 추천한다.


남해: 남해바다는 다소 잔잔한 편이다. 다만, 색이 참 아름답다. 약간 에메랄드 빛을 띠고 있다고 해야 할까. 통영, 거제, 여수, 해남에서 모두 바다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색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지중해가 떠오르는 것 같다. (지중해를 가 본 적은 없다.)


서해: 세 바다 중 가장 심심한 바다이다. 어떤 웅장함은 없고 고요하고 조용한 느낌이 든다. 다만 서해 바다의 특성상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이는 또 다른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뭔가 속이 뻥 뚫리기를 바라기엔 다소 아쉽지만 오이를 먹을 때 초고추장을 찍어 먹듯 초고추장 같은 느낌을 주는 나름의 매력이 느껴지는 바다이다. (특색이 돋보였다.)


- 도시의 삶, 그리고 시골의 삶

그래봤자 여행객 주제에 뭘 그리 깊게 알았겠냐만은 확실히 서울의 속도보다는 다소 느리고 편안함이 느껴졌다. 덜 치열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른 의미로 각 지역만의 색다른 라이프 스타일들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지역마다 그 특유의 온도와 느낌들이 있다. 이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으나 분명 서울의 그것과는 다른 지점들이 느껴졌다. 오히려 내가 서울의 삶이라는 cliche에 너무 빠져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번화가' 지역이 매우 한정적인 부분이 있어서 3박 혹은 2박 말미쯤에는 약간의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같은 도로를 6~7번을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분명 '정신없음'이 주는 나름의 매력도 있는 것 같다. 


- 기업의 수도권 집중화

앞서 이야기했지만 확실히 일자리의 다양함은 수도권을 쫓아오기 어려운 것 같다. 대구에 방문했었는데 심지어 거점 대도시인 대구조차도 일자리가 부족한 형국이라고 하니 생각보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밀도 높게 자리 잡혀 있는 것이 체감되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수도권, 수도권 그 외로 나누어지는 현재의 상황을 타파하는 것은 요원할 것 같다. 젊은 사람이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웬만해서는 서울로 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게하와 같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형태보다는 주로 호텔, 모텔 등 1인 숙박 형태로 여행을 지속했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음식점, 편의점 등에서 하는 꼭 필요한 대화를 제외하고 깊이 있거나 긴 시간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제한되었는데 가끔 여행 중에 합류하는 지인들과의 대화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특히 처음 여행 시작 시 거의 5일 가까이를 침묵하다가 동해에서 절친을 만나서 대화의 물꼬를 텄을 때의 그 기쁨이란. 시간이 한 달 여 지난 지금도 체감적으로 그 순간의 희열이 생생히 그려진다. 인간은 역시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또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물론 관계에 '집착'해서는 좋을 것이 없겠지만 적절한 관계가 삶에 있어 엄청난 활력소가 됨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가 있었다. 나중에 은퇴를 하고 지방에 자리를 잡게 되더라고 이러한 관계의 끈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하고 실행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보통 여행은 같이 하는 게 더 즐겁지만 혼자 하는 여행의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행선지도 내 마음, 행선지에 가서 뭐 할지 언제까지 할지도 내 마음, 숙소도 내 마음, 무엇을 먹을지도 언제 잘 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에 선택 하나하나에 내 취향이 묻어나게 된다. 그리고 여행의 기간에 대한 선택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나'라는 사람은 확실히 여행을 '휴식'으로 정의하는 사람이다. 여행지에 가서 좋은 풍경을 '여유'있게 보고 편안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다. 현지에서의 맛있는 음식과 술은 덤. 좋은 풍경과 푹신한 소파가 있는 넓고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책을 보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것'을 실컷 했다.


- 일상 음식에 대한 그리움

누군가가 나에게 여행지에서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었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여행 말미에 해남에서 먹은 '롯데리아 햄버거'이다. 일반적으로 여행지에서 먹는 고기, 회, 조개 구이 등이 오히려 익숙해지고 여행 말미로 갈수록 평범하게 먹던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더라. 여행 말미의 해남에서 발견한 '롯데리아'에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테이크아웃을 해와서 모텔에서 허겁지겁 햄버거를 먹는데 그동안 먹었던 그 어떤 햄버거보다도 맛있었던 것 같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맛의 '정의'는 상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며 시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금은? 햄버거는 햄버거일 뿐 아무 생각 없다.


- 방어 운전

나는 초보운전이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큰맘 먹고 차를 구매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기대한 게 있다면 바로 '운전 실력 상승'이었다. 여행 24일 중 2일을 제외하고 운전을 매일 했고 그중에 절반은 나름 장거리 운전을 했으니 운전 실력은 당연히 늘었을 것이다. 다만 운전을 매일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방어 운전'이 생각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구불구불한 시골길의 경우에는 차가 없고 곡률이 커서 중앙선을 슬금슬금 조금씩 넘게 되는데 자칫 별생각 없이 거칠게 운전을 했다가 나랑 같은 생각으로 운전하고 있는 운전자와 서로 키스를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뒤에 차가 있다고 해서 너무 압박받지 말고 본인의 페이스대로 항상 사주 경계를 하며 운전하는 게 최선이다. 그렇게 잘 주의해도 사고를 피할 수 없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주차난

지방 지역을 방문하면서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일반적으로 번화가는 해당 지역의 '시청', 혹은 '군청' 중심으로 몰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식당 등을 찾을 때 당연하게도 그 근처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문제는 주차였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경우에 '계획' 도시가 아니다 보니 좁은 이차선 도로에 양쪽으로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다. 주행도 어렵거니와 주차를 하는 게 참으로 번거롭고 어렵게 느껴졌다. 일단 음식점에 갈 때 네비를 찍고 가지만 음식점 옆에 주차를 할 생각은 애초에 포기한다.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빙빙 돌면서 주차 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어떻게든 주차를 하고 몇백 미터를 걸어 해당 음식점에 방문한다. 이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했는데 관광객 입장에서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 캠핑 의자가 굳이 필요 없네?

여행을 가기 전 크고 편해 보이는 캠핑 의자를 하나 구매했다. 이를 테면 이런 형태로 쓰기를 기대했다. 유유자적하게 운전을 하고 가다가 경치가 좋은 장소를 발견하면 차를 정차하고 캠핑 의자를 펼쳐서 깨끗한 공기와 풍경을 느끼며 책을 읽는 것. 그런데 그런 지역을 발견하면 대부분은 잘 갖추어진 '카페'가 있더라 시원하고 따뜻한 장소에 푹신한 의자까지 있는데 굳이 캠핑 의자를 펼칠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인간은 위대하다. 좋은 풍경에서 쉴 수 있는 공간들을 너무나 잘 마련해 두었다.


- 들풀, 들꽃의 아름다움

영덕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내가 묵었던 펜션은 아침만 되면 파도 소리가 철썩철썩 귀를 간지럽혔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참을 수가 없어 이를 제대로 느끼고자 아침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왔다. 해안선을 따라 정처 없이 걷는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들풀, 그리고 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시선이 머무르는 대로 잠시 시간을 보냈다가 이동하고를 반복했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일상에서 보내주는 축복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나치기 쉬웠지만 소중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 평일의 관광지

평일의 관광지는 한산하다. 어딜 가든 그렇다. 주차도 편하고 사람도 없어 편히 둘러보기 좋다. 다만 나처럼 '혼자' 관광을 하러 온 방문객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눈썰미가 조금 있는 분이라면 이 사람의 사연은 무엇일까 하고 궁금했을 법도 하다. 지금은 다소 여행이 물려있지만 다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가급적 평일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기간 여행인지라 주말이 겹칠 때가 있는데 확실히 사람이 비교가 안되게 많아진다. 정신이 다소 어지러울 지경이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일상의 짐에 여행의 짐까지 얹히는 기분일 것 같다. 특히 나처럼 휴식이 중요한 사람일수록 평일에 여행지를 찾아야 한다.


- Peak-End Rule (정점과 종점 규칙)

정점과 종점 규칙이라는 게 있다. 인간은 경험을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인식한다는 것이다. 정점과 종점, 즉, 어떤 기간을 두고 가장 Peak를 찍었던 지점과 마지막 지점을 기반으로 해당 경험을 평가한다는 뜻이다. 행동경제학 창시자 '대니얼 커너먼'이 제시하였다고 한다. 나도 이 규칙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 행선지인 대전에 특히 힘을 더 실었는데 일부러 숙소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5성급 호텔로 예약하고 좋은 와인에 소고기까지 먹었다. 이쯤 되니 나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 Peak는 언제였을까. 돌이켜보면 동해에서 친구를 만난 그 순간이 아닌가 싶다. 내 안에 응어리져 있던 대화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는 그 순간.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찌 됐든 이번 여행은 참 즐거웠다.


- 오랜 시간 여행은 힘들다. 여독

마지막 대전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앓아누웠다. 분명 휴식을 겸한 여행인데 왜 여독이 있냐고 물을 법도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매번 바뀌는 숙소, 모든 길이 초행길, 운전 스트레스,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누적된 적지 않은 걸음 수, 이 모든 게 누적돼 한 며칠을 앓았다. 몇십 일 몇백 일을 아무렇지 않은 듯 여행하는 여행 유튜버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여행도 체질인 것 같다. 나 같은 휴식주의자는 최대 2주가 적당한 것 같다.


- 뻔한 이야기지만 역시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

평일에 장거리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멍 때릴 시간이 많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역시 여유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스레 깨달은 점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넘어졌던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Capacity 지점을 너무 오랜 기간 넘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인가 하는 부분을 잘 체크하여야 한다. 인생을 고통이 아닌 축제 혹은 선물과 같이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나만의 작은 챌린지를 지속적으로 즐기며 살아내겠다.


- 단순화

오랜 기간 여행을 하면서 일의 본질, 혹은 기획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역시 답은 '단순화'에 있는 것 같다. 무엇이든 실행가능한 레벨로 단순화시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심플하지만 명징한 논리로 치환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same page에 설 수 있게 된다. 굵고 단순한 비전, 투명한 상황 파악, 현재의 지난하지만 실행 가능한 전략, 해당 전략의 의미와 타당성에 대한 설득과 합일,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무엇보다도 일은 같이 하는 것. 어쩌면 내가 리더가 되는 순간은 리더의 무게를 오롯이 인지하고 '내가 과연 리더를 할 수 있는 재목인가'에 대한 자기 회고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느낀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늘 인지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형태로든 부족한 점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채워갈 수 있어야 한다.



2. 지역별로 느낀 점


- 홍천

왜 첫 행선지를 홍천으로 정했는가? 특별한 이유는 없고 강원도 바다를 바로 보러 가기에는 거리가 다소 멀다고 생각해서 중간에 정류할만한 지역이 있는가 찾다가 발견했던 지역이다. 홍천은 늘 '비발디파크' 갈 때만 방문했었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홍천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해 볼 수 있었다. 홍천의 '홍' 자가 넓은 홍 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만큼 홍천은 넓은 지역이다. 다만 넓은 지역에 비해 관광 자원은 그리 많지 않다고 느껴졌고 다소 심심하다고 느꼈다.


- 고성

이번 여행의 베스트 지역 중 하나이다. 고성의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서두에 밝혔듯 같은 동해 바다라고 해서 느껴지는 감성이 같지는 않다. 보다 더 웅장하고 거칠게 느껴졌다. 북쪽과 가까워서 그럴까? 사람이 많지 않고 시골 감성이 묻어 나오는 것도 좋았다. 속초나 강릉만큼 접근성이 좋지는 않지만 여유가 있다면 한번쯤은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 동해

깔끔하고 볼거리도 많고. 전반적으로 좋은 도시로 느껴졌다. 다만 다른 지자체에 비해 크기는 다소 작은 듯했고 오랜 시간 머물기보다는 2박 3일 정도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 영덕

2년 간의 군 생활을 했던 추억의 지역이다. 영덕 방문을 선택했던 이유의 90%는 군생활이 한몫했다. 서울에서 방문하기에는 다소 먼 지역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관광 자원의 경우 특별히 방문할 정도는 아닌 듯 보였다. 다만 영덕 바다 뷰 펜션에서 걷는 바닷길은 매우 아름답고 좋았다.


- 안동

안동은 여러 가지 의미로 매우 유명한 지역이지만 관광 측면에서 그렇게까지 특별하지는 않았다. 지자체가 매우 넓은 편이라 끝에서 끝까지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서쪽에 있는 하회마을부터 동북쪽에 있는 도산서원까지의 거리가 거의 50km에 육박할 정도니 말이다. 한 곳만 추천하자면 '도산서원'을 추천한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철학과 생각들이 잘 정리 돼 있고 곱씹어 생각할 지점이 많이 엿보인다.


- 대구

영남의 거점 도시, 대도시답게 관광지라기보다는 서울 근방의 느낌과 유사하게 느껴졌다. 다만 도시 설계가 매우 잘 되어 있어 운전하기 매우 좋은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든 10차선, 12차선 도로가 뻥뻥 뚫려있어 운전 시 매우 쾌적했다.


- 통영

대표적인 관광 도시, 볼거리도 많고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통영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경험은 특별했다. 남해 바다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통영 방문을 추천한다.


- 거제

거제의 경우 단 하루 묵었기 때문에 특별히 코멘트할 게 많이 없는데 역시 통영과 비슷하게 볼거리가 많다고 느꼈다. 일정 상 바로 떠나게 되어 아쉽고 다시 한번 꼭 방문해 보고 싶다.


- 순천

전라남도 지역의 거점 도시 중 하나, 인구도 많고 매우 잘 발달된 도시이다. 관광으로써도 매우 훌륭하다. 순천 국가 정원의 웅장함이란... 전라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순천 방문을 꼭 추천한다.


- 여수

여수에는 오동도와 해상 케이블카가 있다. 도시가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사실 그뿐이긴 하다. 원래 공업 도시였고 앞으로 '관광 도시'로 거듭나려면 더 많은 볼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네임벨류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웠다.


- 해남

이번 여행 시작 시점에 '땅끝마을'을 꼭 들려보리라 결심했고 실천에 옮겼다. 다른 의미 없이 땅끝 마을을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해남 군청 근방의 지역이 상당히 잘 정돈됐고 깔끔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도시 분위기가 좋았다. 


- 군산

박물관이 매우 특별했던 도시, 이때쯤부터 몸이 좋지 않아 많이 돌아다니질 못했는데 볼거리도 많고 충분히 방문할만한 지역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다시 와 보고 싶은 도시.


-대전

충청 지역의 거점 대도시, 과학의 도시, 대구도 그렇고 대전도 그렇고 사실 도시 지역은 서울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관광으로써의 의미보다는 익숙한 지역에 방문한 느낌이었다. 오노마 호텔 27층에서 바라본 대전 경관이 좋았다.



3. 사진, 그리고 생각

홍천에서 방문했던 무궁화 수목원, 보다시피 무궁화 꽃이 피질 않았다. 7월부터 본격적으로 핀다고 한다. 너무나도 아쉬웠다.


고성에서 처음 먹어본 참치숯불구이, 맛이 독특하고 맛있었다. 다시 생각날 것 같다.


아름답지 않은가? 이 것이 고성의 바다이다. 실제로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동해의 바다도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영덕 바다 산책길,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영덕 산책길에 발견한 들풀, 들꽃.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영덕 메티세콰이어길, 휴식의 공간


안동에서 본 월영교, 야경이 무척 아름답다.


대구의 노을, 예쁘다.


통영 해상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광경, 통영 바다색이 아름답다.


거제 바다, 고즈넉하다.


순천 국가정원, 크기가 엄청나고 매우 잘 꾸며져 있다.


순천 드라마 촬영장, 과거 이야기 속으로.


여수 밤바다, 장범준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해남 땅끝탑으로 가는 길, 바다색이 참 영롱하다.


군산 갔다가 방문한 서천에 있는 장항송림산림욕장, 풍경도 예쁘고 지인과 같이 걷기 좋았다.


마지막 행선지, 대전의 오노마 호텔, 역시 5성급 호텔이다.



4. 앞으로의 계획


업을 바꿀만한 새로운 방향성이 잡히지는 않았고 아직까지 애정이 남아있는 PM 업을 계속해 볼 생각이다. 다만 다음 행선지는 좀 더 신중하게 정해보려고 한다. 많이 만나보고 서로 교류해 보고 핏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해 온 일들을 잘 정리하여 주니어 PM 분들을 위한 강의 개설 작업도 진행하게 될 것 같다. 여러모로 6월~7월은 이러한 일들로 바쁠 예정이고 티타임을 원하시는 분들은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 개인 채널을 통해 연락 주시면 좋을 것 같다. (메일, 전화, DM, 모두 환영합니다.)


끝으로...


여행이 꼭 필요했냐고 묻는다면 그러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엄청난 깨달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의 좋은 지역들을 많이 보고 눈에 담아왔고 운전 실력까지 덤으로 늘릴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많은 전환점 혹은 낯설게 보기가 가능했던 것도 수확이다. 다음에는 기회가 된다면 해외여행을 1주일~2주일 정도 다녀올까 한다. 이번에 간다면 관광도 좋지만 현지 사람들과도 많이 교류해 보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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