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주 아빠 Aug 13. 2023

다이빙하지 마시오.

부모가 되어 보니 보이는 것들

* 표지사진 : Unsplash의 Mark Rohan


 제주는 여름이 한창이다. 바다에서 매일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작년에 있던 일이 떠오른다. 작년 이맘때 아이들과 함께 지금은 폐쇄된 유명한 다이빙 스폿 김녕 해수욕장에 놀러 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다이빙 포즈를 뽐내며 포구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니 옆집 꼬맹이(당시 4학년)가 제법 잘 따라 했다. 이어서 같이 온 3학년 남자아이가 잘 뛰어내렸다. 2학년인 아들내미도 겁내했지만 끝내 뛰어내리기에 성공했다. 아빠가 밑에서 잡아서 건져 올려 주니 그 믿음이 있어서 해낸 것이다. 하지만 당시 4학년이던 딸은 끝내하지 못했다.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나중에 후회할까 봐 괜찮겠는지 물어보고 포구 끝자락에 서서 몇 분을 고민하다 끝내 돌아서는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에 아이는 종종 그때 안 뛴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올여름은 집 근처 다른 포구를 찾았다. 5학년이 된 딸내미는 이제 거리낌 없이 2미터가 넘는 높이의 포구에서 다이빙을 한다. 부모의 역할은 물 깊이가 충분한지 바닷속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주는 정도다. 절대 다이빙을 하지 말라고 막지 않는다. 안전도 배움이다.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고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 것이다.


이제는 이 정도 높이 다이빙은 아무것도 아닌 듯 자신 있게 뛰어내린다. 이럴 때일수록 더 하지마가 아닌 안전하게 하자라고 말해줘야 한다.


실내 수영장에 가면 다이빙하지 말란 표지판이 늘 눈에 띈다. 안전 요원의 눈을 피해 다이빙을 몰래하기도 하지만 이내 제지받기도 하고 이후에는 요주의 인물이 되어 감시받기도 한다. 잔디밭은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고, 아파트에서는 뛰지 말라는 실랑이가 매일 이어진다. 노키즈존인 가게가 넘쳐나고 있다. 애완동물도 되는데 아이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는 심지어 법도 그렇다. 뭐를 하지 말라는 법이 정말 많다. 법조문의 상당수가 하면 안 된다는 것들이다. 법이라는 것이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지 말라는 법이 아닌 이것은 허용된다는 방식으로 문장을 바꿀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파트에서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주에 터를 잡은 이유다. 늘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는 얘기를 삼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마보다는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 보게끔 하고 안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종종 그런 말을 듣는다. 하지 말라는 것 하다가 다치면 왜 하지 말라는 것 하다가 굳이 다치냐고 저런 사람 구해줄 필요 없고 세금 써가며 치료해 줄 필요 없다고. 


본능적으로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새장 속의 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이 사회의 역할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사회가 아닐까?


부모가 되어보니 그런 문법이 꼭 옳지만은 않다고 느껴진다. 차라리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할 수 있을지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지식이 쌓이면 스스로 삼갈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우주가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의 실수를 너그럽게 기다려줄지 아는 어른들이 가득한 세상 이어야 한다. 그래야지 아이들이 실수하였을 때 그 기회를 통해 배우도록 해주는 것이다. 배울 기회조차 주지 않는 다이빙 하지 마시오 문구나 잔디에 들어가지 마시오, 아파트에서 뛰지 마라, 노키즈존은 부모가 되어보니 이 사회의 발전을 멈추게 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할지 배울 기회를 잃어버린다. 그저 학습된 무기력감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만 알게 된다. 그렇게 어른이 된 아이들은 도전 정신을 상실한다. 하늘을 나는 법을 까먹은 피터팬은 후크 선장과 싸워 이길 수 없게 되고 네버랜드를 지킬 수 없게 된다.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지 말라는 문법 대신 어떻게 해야지 안전하게 할 수 있을까로 바꿔서 키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구에서 무차별적으로 음주파티를 벌이며, 위험한 행동을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 때문에 김녕 다이빙 스폿이 사라졌지만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포구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다이빙을 하며 배운다. 썰물과 밀물의 차이에 따라 바다의 깊이가 어떠한지, 수온의 변화를 감지하고 어떻게 준비운동을 할지, 다이빙 전에는 물아래 위험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미리 확인하는지, 미끄러지지 않게 도약은 어떻게 하는지. 하지만 늘 도전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전혀 도전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 죽어가는 것 아닐까? 아이들에게 마음껏 꿈꾸게 해주고 싶다.


그런 법과 제도가 없을 때 자연의 질서는 허용적 문법을 통해 아이들을 잘 성장시켜 왔다. 지금도 자연은 늘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피쿠로스가 옳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