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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Apr 03. 2024

제주, 봄

가장 눈부시고 찬란한 찰나

 제주의 봄은 눈부시다. 하지만 찰나에 불과하다. 1년 중 비가 오는 날이 더 많은 제주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쉬이 꺼내 보이지 않는다. 예상을 뛰어넘는 추위를 지나고 나면 지겹도록 비가 내린다. 비가 어찌나 오는지 비가 그친 날이면 영국처럼 나가서 태닝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우기를 지나고 나면 우중충했던 제주는 어느새 온갖 눈부신 색채 물감을 뒤집어쓰고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기는 1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눈 깜짝할 사이.


되레 나는 이 찰나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눈부신 햇살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아마 우리 모두 눈이 멀 것이다. 눈부신 제주의 봄을 쉼 없이 계속 만끽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나태해져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 모두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생활을 멈추게 만들고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드는 마력이 제주의 봄에게 있다. 어찌 보면 그렇기에 더욱 제주의 봄은 찰나로 끝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눈부신 제주의 봄. 찬란한 찰나. 운이 좋게도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지금 제주는 비가 내린다. 이 비로 그 찰나는 더욱더 빠르게 끝이 나버릴 것이다. 1년을 또 기다려야 할 것이다.


찰나에 끝나는 제주의 봄이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바람과 구름과 비가 제주의 봄을 질투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 찬란한 찰나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자 바람은 꽃잎을 흩날려 버리고 구름은 쉬 파란 하늘을 내보이지 않고 비는 계절의 변화를 촉진하는 것은 아닐까.


제주의 찬란한 봄. 무다리라며 못난 다리를 일컬을 때 쓰는 무마저도 이 시기엔 메밀꽃과 유채꽃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하얀 꽃망울을 피워내 온 무밭을 하얗게 뒤덮어 가뜩이나 다양한 채색의 제주에 하얗지만 빛나는 무채색을 더해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제주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의 삶도 우주의 시간에서는 찰나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아니면 안 된다. 순간을 즐기라는 명언이 아무리 누군가의 머릿속에, 카카오톡 상태메시지에, 인스타그램 피드에 박제되어 있다 하더라도 정말 그 순간을 즐기는 호사를 누리는 사람은 얼마 없기에 이렇게 빨리 스쳐 가버리는 봄이 더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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