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날씨가 변덕스럽다. 일기예보를 믿고 있다가는 낭패당하기 쉽다. 파워 J인 나지만 제주에서 시간을 보낼 땐 다소 느긋하게 P의 자세로 지낸다.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받기 십상이다. 계획했던 팟럭(Potluck)이 취소될 때도 있고, 비가 올 줄 알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가 급히 바깥으로 뛰쳐나갈 때도 있다.
오늘도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아이의 축구 시합이 취소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날씨는 평소보다 더 짓궂다. 해는 쨍쨍한데 비가 내린다. 그러니 비는 내리는 족족 증발해습기가 되어 지독히도 습하다. 걸을 때마다 끈적이는 발바닥이 가을 한복판에서 여름날의 제주를 떠오르게 만든다. 농담 삼아 말한다. 날씨 요정인 내가 제주에 있으니 해는 떠야겠고, 비는 또 뿌려야겠으니 이 모양이 된 것이 아니냐고. 덕분에 모처럼 거실에 있는 짙은 갈색의 잘 다듬어진 예쁘지만 거대한 10인용 원목 테이블을 혼자 독차지하고 커피를 홀짝 거리며 글도 쓰고 사유도 하며 책도 읽는 시간을 보낸다. 가히 호화로운 시간 사용법이다.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삶도 제주 날씨처럼 변덕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변덕에 적응되어 사는 것은 삶을 달관하기에도 좋은 훈련이 된다. 제주에 살면서 더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비운만큼 채워진다라고 했던가. 비워진 것은 구멍 숭숭한 수세미 같은 것들이었고 채워진 것은 밀도 있게 묵직한 금강석 같은 것들이었으니 되레 비웠으나 묵직해졌다. 그렇게 단단해진 삶을 마주하며 좋은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변덕 또한 감사한 일이다. 후두둑 창문을 내리치는 빗소리와 휘융휘융 바람 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따스한 햇빛의 속삭임이 마치 우리의 삶처럼 동시에 한 공간에 존재하는 제주에서의 어느 호젓한 오후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