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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에 관하여

오늘은 무슨 날씨인가?

by 제주 아빠

도시에서 오래 살았다. 도시는 어디서든 같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도시들도 닮았다. 도시는 늘 직선으로 늘씬하게 뻗은 도로와 그 안을 가득 채운 알로록달로록한 차들, 직각의 건물들과 그 안에 울리는 각종 소음의 메아리가 있다. 그리고 건물에 가려진 조각난 하늘이 있다. 이런 도시에서 살다 보면 인간의 삶은 다채로울지 모르겠지만 날씨는 그렇지 못하다. 매일 아침 일기예보 방송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멋들어진 화장으로 치장한 여성 기상 캐스터가 일러주는 날씨 이야기의 맥락을 보면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저 맑거나,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온다. 가끔 여러 수사를 더하지만 결국 도시에서의 삶을 뒷받침할 실용적인 날씨에 대한 짧은 평이 전부다. 하지만 날씨는 자연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조건이다. 날씨는 어쩌면 자연계의 지배계층이다. 날씨를 그렇게 단조롭게 평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날씨를 수단으로 여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인간의 오만한 사고를 날씨가 볼 때는 얼마나 한심할까.


제주에 내려오고 날씨를 보는 눈도, 날씨를 대하는 태도도, 날씨에 대한 평도 달라졌다. 제주에는 일단 하늘을 가릴 무엇이 없다. 인간이 세운 바벨탑은 하늘에 닿기 위해 끊임없이 위로 위로 향했지만 기껏해야 광활한 하늘을 내 시야에서 조각낼 뿐이지 결코 그 본질은 해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 제주에서의 하늘은 위풍당당 그 모습 그대로 전체를 드러낸 채 우리를 압도하며 위에서 내려다본다. 그렇게 광활하게 넓은 하늘을 보고 있자면 도시에서 기상캐스터가 짧은 요약으로 표현한 날씨에 대한 평이 얼마나 날씨를 모욕한 것인지 느껴진다. 날씨는 결코 그렇게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제주에서의 하늘은 서쪽에서 동쪽까지 남쪽에서 북쪽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가운데 결코 한 가지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맑아도 그냥 맑은 것이 아니다. 우리 집 위로 비춘 태양은 맑아도 멀리 한라산 위엔 구름이 가득할 수 있고, 바다엔 용오름이 휘몰아칠 수 있으며, 지평선 끝에 닿은 (아마도 남원이거나 더 멀리 안덕) 곳은 동시에 비가 내릴 수가 있다. 바로 눈앞에 비가 내리는 장막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비가 내리는 동시에 오름 너머 무지개를 본 적 있는가. 쏟아지는 별과 마른번개를 동시에 본 적 있는가. 그저 하얀 구름이 아닌 물결치는 구름, 휘몰아치는 구름, 양떼구름, 모자 구름... 한라산 꼭대기와 중산간과 바다의 날씨가 모조리 다른 모습인 광경. 도대체 도시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았던가.


날씨는 수단이 아니다. 날씨는 그 자체로 자연을 지배하는 지배자이며, 지구의 생태계를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 목적이다. 그런 날씨를 인간은 알량한 도시 문명으로 짧은 평을 내리고는 안심한다. 불과 수세기 전에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며, 특히 날씨, 기상, 기후 따위에 따라 삶의 양식을 바꿔왔다. 아마도 현대인은 이제는 우리가 날씨를 지배하게 되었다 착각할지 모른다. 잘 갖춰진 도시는 아무리 뜨거워도 건물에 쏙 숨어 에어컨 바람에 안도할 수 있고,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지하 공동구로 엄청난 양의 물을 배출할 수 있으며, 번개에도 보호받을 수 있는 전기 시설을 갖추었기에 날씨 따위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수 없다며 자만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씨에 대한 현대인의 평가와는 다르게 날씨는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언젠가 그 할 일이 인간에 대한 절멸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날씨는 우리가 매일 글로 쓰고, 입으로 말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찬양해야 할 존재 그 자체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한라산은 그 높이를 알 수 없는 높은 구름에 가리어졌으나 중산간은 강렬한 햇빛에 눈이 부시고 눈앞에는 비가 내리며,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현대인이여, 기상캐스터여, 이 날씨를 무어라 표현할 것인가. 몇 단어로 결코 날씨를 지배했다고 오만해지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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