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쉬기
어김없이 여름 휴가가 다가왔다. 너무 덥고 지쳐서 "휴가 처방이 시급하네요."라는 말이 나올 즘이었다.
작년에는 1년에 한번뿐인 휴가, 의미있게 보내고 싶어서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 움직였었다. 그런데 정성스레 실수하는 타입인 나는 야무지게 잘못된 계획으로(!) 거리 계산을 잘못해 거제도 길거리에 그 많은 돈을 흩뿌리고 더워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야 말았다. 물론 추억은 추억이나, 명백히 말하면 고생이었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계획을 세워보고자 하는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미리 맛집을 찾고, 동선을 짜고, 일정을 계산하는 것은 뭔가에 쫓기는 것만 같았기에.... 이번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내키는 대로 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해보니, 뭔가에 쫓기며 살던 나는 이게 더 어렵긴 했다.
아무튼, 적극적으로 쉰 3박4일 여름 휴가... 사진으로 정리해본다.
부산역 초량 이바구길, 브라운핸즈백제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작년부터 가보고 싶었던 "브라운핸즈백제" 카페를 방문했다. 공간 자체가 일제강점기때 지어졌기 때문에 오래되었다. 거의 오픈시간에 맞춰 갔는데, 외관만 보면 이게 카페인지, 들어가도 되는 건지 아리송하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기만해도 아하, 무릎을 치게 된다.
입구가 특이하다. 바닥 타일이나 벽은 손을 보지 않은 것 같다.
내부는 공간마다 분위기가 달랐는데,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이 자꾸 마음이 끌려 구석으로 들어갔다. 넓고 쾌적하고 특이하고 커피향이 가득했다.
그림 전시 정보와 커피, 그리고 서울서부터 먹고싶었던 당근케이크. 휴가가 아니었다면 절대 누리지 않았을 사치를 누렸다. 커피와 케이크는 참 맛있었다. 단, 비싼 편이긴 했다. 그러면 어때, 노래도 불빛도 분위기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부전 카페거리, 연운당
부산에 가서 친구를 딱 한명 만났다. 점점 내 삶에서 부산 지분이 사라지는 것 같다. 부산의 번화가에는 서울의 프랜차이즈 가게가 가득했다. 예전에는 지방마다 특색 있는 가게가 곳곳에 있어서 찾아가는 맛이 있었는데... 이제는 동시다발인가보다. 그 와중에 친구가 데려가준 빙수집, 연운당. 사실 이것도 프랜차이즈란다. 그래도 난 처음 봤으니 좋다. 새롭다.
그나저나 요즘은 고봉빙수(?)가 유행인듯??
하단, 아트몰링
우리 동네에 큰(?) 건물이 생기고 영화관도 들어왔다고 하기에 가봤다. 이름은 아트몰링. 나는 아울렛마냥 3-4층 규모인줄 알고 갔더니 왠걸. 14층까지 있었다. 옥상에는 포토존도 있었다. 파란건 바다 아니고 낙동강!
옥상 햇빛이 너무 따가워서 카페나 갈까 했더니, 이렇게 예쁜 북카페가 있었다. 음료만 이용할 수도 있고, 책과 함께 음료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음료 맛은 그냥그냥. 책도 이용하면 칸막이로 나뉜 좌식 공간에서 누워서도 책을 볼 수 있다. 좋구나.
부평동 야시장
밤에는 부평동에 있는 야시장에 가보았다. 서울 밤도깨비야시장을 생각하고 갔는데... 통로가 좁고 먹을만한 곳이 없어서 좀 힘들었다. 좁은 골목에서 음식 만들고 사람들 많이 다니고 하니 더위가 극심했다. 불쾌지수가 높아져 터지기 직전에 음식을 사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여긴 없지만 아주 커다랬던 타코야키도 먹었다. 역시 수산물의 도시다운 문어 크기에 감탄했다. 가져온건 다 맛있었다.
남포동, 할매가야밀면
빠질 수 없는 메뉴 밀면. 너무 꿈꿔와서인지 맛은 그냥 그냥 그랬다. 하지만 서울에서 밀면 먹을거냐고 하면 no! 부산에서 먹겠습니닷.
(담엔 만두와 함께해야지)
사진에 보이는 것 외에는 그저 집에서 누워있거나 치과에 가거나...책을 보거나 했다. 얼마만의 여유였는지, 책임과 쫓김 없는 평온한 나날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느꼈다.
다음 휴가는 이제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