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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작가 Sep 30. 2020

#04. 도대체 왜 그걸 하고 있나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실질적 열매에서 멀어져 간다.

인도, 맥그로드간지, 2015


  인도의 맥그로드간지 (이하, 맥간)를 여행할 때 이야기다. 맥간은 인도 북부에 위치한 작은 산악마을이다. 특별히 이곳은 티베트의 상징 달라이라마가 중국정부의 핍박을 피해 망명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은 일반적으로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느낌보다는, 티벳불교 느낌의 건축물들이 많다.


  사원에 들어가면 마니차라는 것이 있다. 위의 사진에서 아이가 돌리고 있는 것이 바로 마니차다. 마니차는 티벳불교의 경전을 넣은 통이다. 한개가 아니라 여러개의 마니차가 한줄로 길게 걸려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었다는 의미를 가지며, 승려들과 신자들은 마니차를 여러번 돌리며 불력이 세상에 퍼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한다.


  수많은 신자들이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를 하고 있는 가운데, 한 천진난만한 꼬마아이가 마니차 앞에 호기있게 섰다. 그러더니 갑자기 두손으로 마니차를 돌리기 시작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힘껏 웃으면서 마니차를 계속 돌렸다. 그 모습이 내게는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경전을 읽는 이유는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다. 굳이 경전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 이유는 몰랐던 정보를 얻기 위함이거나,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읽는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사실 정확히 말하면, 좋은 책을 잘 곱씹어 읽어야 스스로에게 남는 것이 많다. 간혹, 책의 내용을 흡수하는 것보다 1년동안 몇권의 책을 읽었는지를 플렉스 하기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평소 책을 읽는 습관이 없었어서, 마음 먹고 책을 읽어보자는 마음에 오기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책은 다독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먼저 정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독이 없는 다독은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남에게 몇권 읽었다고 자랑하거나, 스스로가 몇권 읽었다고 불필요한 자부심을 느끼는 정도의 가치 밖에 없다. 빠르게 읽은 책 100권보다, 제대로 읽은 책 1권이 훨씬 나을 때가 많다.


  하지만 정독보다 중요한게 있다.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지식과 교훈이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공상에 머무른다. 실천이 없는 독서는 그저 머리만 키워서, 지식을 뽐내고 드러내려고만 하는 성향이 있다. 독서의 본질은, 우리가 몰랐던 정보를 얻고, 우리가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읽는다.


  그들 중에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제 경전을 읽고 실천하지 않으면서,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어다고 쳐주니, 그 목적으로 오는 어른들도 많았을 거다. 실제 삶으로는 살아갈 마음은 조금도 없는데, 그저 바라는 마음만 가득히 실고온 위선자들이다.


  나는 차라리 저 꼬마아이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저 아이가 마니차를 돌리는 이유는 단순히 재밌어서다. 어른들처럼, 위선을 떨 마음도 없을 것이고, 그에게는 아직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차라리 아이의 저러한 행동이 훨씬 더 본질에 가깝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실질적 열매에서 멀어져 간다. 배움은 수단인데, 목적이 되어서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경우가 많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갔는데, 정작 자신이 세상에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 돈또한 수단인데, 목적이 되버린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학벌, 돈, 지식, 인맥 등 수많은 수단들을 갖고 있지만, 바르게 사용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 마음 가운데 왜 그것들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 / 글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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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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