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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작가 Sep 30. 2020

#03. 원래 목적을 잃고 있지는 않나요?

돕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돕는 척만 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라오스 루앙프라방, 2015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있을 때다. 라오스에는 아침마다 재밌는 의식이 있다. 소승불교를 믿는 수도승들이 아침마다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탁발의식을 진행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말로 시주를 받으러 다닌다.


  탁발은 단순히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스님들이 밥이나 생필품을 구걸하러 다니는 의식이 아니다. 스님들도 자신들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들이 받은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탁발의 본래 의미이다.


  아침 일찍 탁발을 보기 위해서 거리로 나왔다. 한 무리의 스님들이 이전 집에서 무언가를 받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때마침 그들이 걸어오는 길에는 한 꼬마아이가 앉아 있었다. 꼬마아이가 들고 온 통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던 것을 보아, 아무래도 이 아이도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 나온 듯 했다.


  드디어 스님들과 그 꼬마아이가 서로 마주보며 자리를 잡았다. 꼬마아이는 줄 것이 없으니, 스님들에게 줄 수가 없었고, 이런 경우 스님들이 꼬마 아이에게 뭔가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멀뚱멀뚱 아이를 바라만 보다가 아무것도 나누지 않고 다음 집으로 이동했다.


  탁발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내 자신이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동시에,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나누는 것이 본래의 의미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것은 그것과 달랐다. 이 전 집에서 이것저것 받은 것을 보았는데도.

  요즘은 탁발 자체가 여행객들에게 좋은 볼거리가 되어서, 여행객들에게 뭔가 받아가려고만 할 때가 많아요. 사실 그냥 보여주기 위한 문화행사에 불과하죠.


  타인을 돕지 못하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돕는 척만 하는 것은 오히려 돕지 못하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무엇을 하든지 실체가 없는 보여주기식의 태도는 늘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보여주기식의 태도 뒤에는 늘 자신의 욕심이 가득히 쌓여있기 때문이다. 가치가 아닌 욕심으로 점철된 모든 행위는 결국 허무한 것으로 남게 된다.


  사진 / 글 이정현


#철학

#인문학

#목적의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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