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감사를 가르치고 싶다면, 내가 먼저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나는 민박스탭을 하며 3개월을 지냈다. 덕분에 숙식이 해결되어, 이전에 여행할 때처럼 돈 때문에 걱정을 한 날은 하루도 없었다. 단지 한곳에만 계속 있으니, 여행을 떠나고 싶어 마음 한 곳이 계속 근질근질 했다. 사진을 찍으러 온거지, 나는 민박스탭을 하러 온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계속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여행을 떠나야만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계속 사진을 찍고 싶었던 나는 민박스탭을 하면서 담을 수 있는 사진에 집중했다. 그동안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면, 이제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내가 담을 수 있는 것을 담았던 시간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앞에 광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담기도 했고, 아무런 의미없이 건물사진을 담아보기도 했다. 그 때에는, 이런 걸 뭐하러 찍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주변에서 담을 것을 찾아보려는 습관이, 이후 내게는 아주 좋은 훈련이 되어줬다. 사진을 잘 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 오랜시간을 머물며 사진을 담으면 좋은 점이 있다. 한 장소를 깊이 알아갈 수 있는 시간도 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건, 아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피렌체에 3개월간 머물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스테이크 하우스 사장님과도 친해졌고, 자주가는 아이스크림 사장님과도 친해졌으며, 피렌체 오면 꼭 간다는 질리카페의 노신사점원과도 친해졌다. 아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 사진작가에게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그 때까지만해도 잘 알지 못했다.
위 사진은 피렌체에 있는 산타트리나타 광장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다. 기타를 치고 있던 저 아저씨와 이름까지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었지만, 기타연주를 좋아해서,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연주를 듣고 가고는 했다. 덕분에 서로의 존재를 서로 알고는 있었고, 지나갈 때마다 눈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어느날, 버스킹을 하는 아저씨에게 한 꼬마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본능적으로 10초 후에 생길 장면이 떠올라서 카메라를 들었다. 아뿔싸, 그런데 하필 갖고 있던 렌즈가 135mm 망원단렌즈, 그 모습을 담으려면 조금 더 뒤로 가야했다. 하지만, 뒤에는 건물이 있어, 더이상 뒤로 갈 수가 없었고, 건물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뷰파인더에 눈을 댔다. 역시나 예상대로, 위와 같은 장면이 사진에 담겼다. 다른 렌즈가 있었다면, 건물이 뒤에 없었다면, 조금 더 잘 담았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저 순간을 예상하고 담았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세계여행을 하며 담은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가 됐다.
한국에 있을 때 일이다. 신촌에서 한 피아니스트가 공연을 하는 것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 날 너무 감명 깊었던 나는, 그에게 작게나마 보답을 하고 싶었다. 본래 1,000원짜리 한 장을 넣어두고 오는게 관례지만, 그날따라 하필 지폐가 만원짜리 한 장 밖에 없었다. 그냥 가기에는 너무 멋진 공연이었어서, 만원 짜리를 그냥 앞에 놓여진 상자에 넣었다.
어 저기 손님, 너무 많이 넣으셨어요. 잔돈 가져가셔야죠.
말 한마디에도 재치가 넘치는 피아니스트였다. 버스커에게 후원을 하는 마음으로 넣은 돈에 누가 잔돈을 기대하나. 웃으며 됐다고 손사래치니, 그가 갑자기 일어나서 말한다.
여러분, 제가 버스킹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돈을 넣어주신 분입니다. 모두 박수~~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 바람에 완전히 민망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너무 많이 넣은 것이 아까워(?) 그의 연주를 조금 더 듣다가 자리를 떴다.
위의 이야기처럼, 한국에서는 버스커에게 돈을 넣고 가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돈을 내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노래고, 내가 원해서 듣게 된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감사함을 느끼기가 쉽지가 않다. 오히려 뭔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인사치레 소액을 넣고 가는 게 전부다.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세상에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주어진 것은 없다. 설사 내가 원치 않는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기억하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다운 마음이다. 인간다운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머릿속에만 있지 않고, 밖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습관이 될 때,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피렌체에서 저 장면을 담았을 때, 단순히 아이가 돈을 넣는 모습이 감동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그 현장에서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에게 돈을 주고 저기에 넣고오라고 할 수도 있을텐데. 마치 그 모습이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 분께
늘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단다
말로만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아닌, 아이의 손을 직접 잡고, 그 현장에서 함께 있어준다는 것. 우리 사회가 정말 배워야할 작은 덕목이 아닌가 싶다. 아이가 공부하길 바란다면, 부모가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아이가 공부를 해도 의미가 있다. 아이가 넉넉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서, 함께 동참하기보다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과연 그 아이들이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로 자라줄까?
피렌체를 떠나기 전, 이 사진을 뽑아서 아저씨를 드릴려고 갔다. 아쉽지만, 그 날은 비가 오는 날이라 아저씨가 나오지 않으셨다. 이후 친구에게 부탁해서 나 대신 이사진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영어로 간단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담아. 이후, 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를 보이셨다고 한다.
사진 / 글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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