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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작가 Oct 14. 2020

#15. 가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모든 가치는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아이슬란드, 2016


  사람은 누구나 가치있는 존재라고 한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적절하지 않은 말이다. 누구나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를 모른다는 건, 자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에 감동을 느끼고, 무엇에 분노를 느끼는지를 아는 것이 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교육은 지금껏 그래오지 못했다. 자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곳에 서있기 보다는,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것이 가치있는 선택인 것처럼 이해하며 살아왔다. 오히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이 철없는 행동이고, 경쟁에서 진 패배자로 여겨졌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건 이상적인 일인것처럼 치부당했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는 삶만 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사회가 끊임없이 혁신을 외치지만,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들조차,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안정적인 삶만 꿈꾸며, 새로운 시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가장 폐쇄적인 집단이 창조를 논한다.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 모두는 가치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단, 그 가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먼저 잘 이해해야한다.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과 노력이 없다면, 수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두어도, 가치있게 쓰기란 쉽지가 않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욕심과 야망에 심취하기 쉽다. 절제되지 못한 지식과 꿈들은 결국 수많은 주변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자기의 탐욕만 채우던 이기적인 가치들은 결국 오래가지 못해 소멸한다. 그러한 가치가 진정 가치라고 불릴 수 있을까?


   위의 사진은 아이슬란드 여행을 할 때 담은 사진이다. 아이슬란드 남부의 한 해안가에 추락한 비행기가 있다고 해서 보러 갔다.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정말 광활한 검은모래 해변가였다. 알고보니, 바닥에 넓게 깔린 것은 일반 모래가 아니라, 예전에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터졌을 때 날라온 화산재였다.


  이렇게나 광활한 해변가에 듬성듬성 거대한 바위가 놓여져 있었다. 딱 봐도 인간이 가져다둔 것 같지는 않은 바위였다. 이 역시 화산활동으로 인해, 산에 있던 바위가 여기까지 날라온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엘프스톤(요정바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바위 자체가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광활한 대지에, 생뚱맞게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바위들은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왜 그것이 이토록 우리의 시선을 이끌었던 것일까. 사진을 보면서 각자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만일 저 바위가 산 위에 있었다면, 지금 이순간 그것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만큼 동일하게 느낄 수 있을까? 저 바위가 이렇게 나홀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바위들 사이에 있었던 아이였다면, 과연 우리는 그를 특별하게 바라보았을까?


  경쟁을 통해 나를 발전시키는 것도 나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오로지 경쟁에만 심취하게 되면, 그 분야에 실력은 깊어질 수 있으나, 다른 곳으로 뻗어갈 힘은 생기지 않는다. 만일 축구선수 박지성이, 오로지 남들보다 축구를 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박지성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박지성은 공격수였다. 타의적이었지만,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하면서, 축구라는 것은 자기과시이기 이전에, 팀이 승리해야하는 경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포지션을 성실하게 소화해냈고, 결국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그가 조연의 역할만을 해왔다고 하지만, 자기 인생에 있어서는 주연 그 이상의 가치있는 삶을 살았다.


  나를 잘 이해하는 훈련을 하게 되면, 남들과 경쟁을 하면서도, 경쟁하지 않는 것처럼 살 수 있다. 남들보다 외적으로 조금 부족해보여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이세상에 나라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이니까. 그 어떤 사람도, 나와 100% 똑같을 수 없으니까. 똑같지 않은 우리 인생인데, 우리가 그냥 똑같다고 믿으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여행은 가난한 여행이었다. 일반적인 세계여행자들처럼, 가지고 나온 돈이 넉넉해서, 이것저것 경험할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사진을 좋아하는 마음과, 길 위에서 만난 여행자들에게 사진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지금 이순간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비록 가진 것은 없는 여행이었지만, 오히려 가진 것이 없어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을 했다. 내가 만일 가진 것이 많았더라면,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그토록 절실하게 찍었을까. 내가 만일 아쉬운 것 없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면, 지나가는 인연들을 그렇게 소중히 대할 수 있었을까.


  많은 분들이 질문해주신 것,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654일간 여행을 할 수 있었냐고 한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어서 가능했던 여행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타인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결국 나눔을 함께 했던 길 위의 여행자들이, 불가능해보였던 그 여정을 가능케 해주었다.


  모든 가치는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잘 아는 것이 그 시작이다. 좋아하는 마음에서부터 철학이 생기고, 철학은 더 나은 것들로 이웃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빚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이웃도 함께 공감할 수 있다는 것, 결국 그것이 가치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던가.


  가치있는 일을 한다는 것, 결국 나를 이해하고, 타인과 공감하고 나누는 삶이다.


사진 / 글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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