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월요일 일기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 번화가에 위치한 소품 가게만 봐도 고양이를 소재로 한 인테리어 소품이 눈에 띈다. 젓가락, 수저받침대, 메모꽂이 등. 그런데 사람들은 왜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까? 도대체 나는 왜?
초등학교 4학년에 햄스터를 기운 적이 있다. 집 앞 문방구에서 산 햄스터였다. 두 마리 모두 수컷인 줄 알고 데려왔는데, 암컷과 수컷이었다. 베란다에 둥지를 튼 햄스터 부부는 연달아 3번이나 출산을 하면서 집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미 나이가 들어있던 암컷은 마지막 출산 후, 새끼를 한 마리 잡아먹고는 시름시름 앓아 누웠다.
나는 푹신한 톱밥을 잔뜩 깐 통으로 암컷을 옮겨 보살펴 주었다. 삼 일 뒤에 암컷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남아있는 수컷과 10마리에 가까웠던 새끼들은 내가 여름방학을 맞이해 영어캠프를 간 사이, 엄마와 이모가 배수로에 방사했다. 엄마와 이모는 그들끼리 뭉쳐 잘 살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이모는 그 날로부터 삼주가 지난 어느 날, 집 앞에 있는 배수로에서 찍찍거리는 햄스터를 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그 햄스터들이 방사되자마자 죽었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를 다니던 도중, ‘고양이’가 머릿속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고영희 씨’라고 부르며 고양이의 묘권(필자가 지어낸 고양이 인권 대체어)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소재로 제작한 콘텐츠가 유튜브 뿐만 아니라 지상파에서 넘쳐났으며, ‘고양이처럼 살고 싶다’, ‘고양이처럼 살아야 한다’는 표어를 다룬 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퇴사’에 이어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소재 1위로 등극한 것이다.
퇴사가 답이 아니라는 걸 안 사람들이 ‘어차피 회사는 다녀야 하고, 그렇다면 회사를 다니면서 게으르게 사는 법을 익히자’는 생각을 하면서, 햇볕 아래 나른히 누워있는 고양이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지나가건 말건 도로 한 가운데 누워 햇살을 즐길 용기, 고양이계에서 인기가 없을 지라도 애교 하나로 사람들을 홀릴 용기 같은 것이 그 원인으로 보인다. 그런 용기가 있었더라면, 나는 햄스터를 잃어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ditor by 오피아
다음주 월요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