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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Oct 16. 2019

엄마의 출산

1984년생 엄마가 2014년생 아이에게

2014년 8월 6일 수요일 오전 8시, 3.34kg의 사내가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4일 일찍 세상에 나온 아이는 말 그대로 자신의 힘만으로 엄마의 자궁을 빠져나와야 했다. 의료진과 의료기술 도움 없이 엄마와 아이의 협업만으로 이루어지는 자연주의 출산을 사내의 엄마가 선택한 덕분이었다. 무통주사도, 회음부 절개도 없이, 골반 뼈를 벌리기 위해 하반신을 휘젓는 진통을 여인은 오롯이 느끼면서도 ‘아이가 느끼는 고통은 엄마의 10배’는 말을 차마 못 잊었다. 신비하게도 진통과 진통 사이에는 다만의 쉼이 있었고, 그 시간은 새벽의 강처럼 고요했다. 그러다가도 저 멀리서 밀려오는 진통의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또다시 아래에 집중을 하며 본능적으로 손끝까지 힘을 주는 것이다. “애 머리 보인다.” 30년 경력 조산사 말은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는 이 게임의 막바지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머리통이 럭비공처럼 길쭉해진 아이가 탯줄이 달린 채 엄마 배 위에 얹어졌다. 아이는 엄마 젖꼭지를 향해 기어 올라왔고 그런 아이를 차마 안지도 만지지도 못한 채 이제 막 부모가 된 남녀는 “꽃사슴아, 꽃사슴아.” 불러보기만 하는 것이다. 여인은 여전히 연결되어있는 탯줄을 가만 만져보았고, ‘두근-두근-’ 박동의 여진에 사뭇 감격했다. 아이의 산소 호흡기이자 영양 통로인 이 탯줄을 모체에서 끊어내야만 아이는 비로소 태아에서 인간으로 변모한다. 마지막 ‘두근-’이 멈추었고, 엄마와 아이의 탯자리 개는 끊어졌으며, 아이는 자가 호흡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회복이 빠르다는 자연주의 출산 산모답게 그날 오후, 아이를 안고 조산원을 나왔고, 집으로 향했다. 애착 형성을 위해 집에서 아이를 돌보겠다는 여인의 결심은 이틀 만에 무너졌다. 만 하루가 꼬박 넘는 진통 덕에 나흘 동안 잠을 자지 못한 데다 부은 회음부 때문에 제대로 앉지 못했는데, ‘조리원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본인 결심은 얄궂은 자존심 때문에 뒤집지도 못하고 생후 3일 된 아이를 안고선 눈물 바가지를 쏟아냈다. 3일 전 아이를 낳은 산모의 몸은 금세 눈두덩이를 찐만두처럼 만들어버렸고, 급히 예약한 조리원에 그 어느 산모보다 가엾은 몰골로 입소한 여인이었다. 그렇게 품에 끼고 키우겠다던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 채 여인은 침대에 눕자마자 정신을 놓았고, 그렇게 2주간의 조리원 생활 동안 오케타니 마사지까지 받아가며 ‘남들 다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구나’를 여실히 깨달았다.    


어느 날은 간호사가 목욕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신생아 실로 여인을 호출했다. 그곳에는 다른 산모도 한 명 더 있었는데, 간호사는 목욕 모델이 될 갓난아이를 하나 안고 등장했다. 배냇 저고리 벗겨지는 저 아이가 여인의 눈에는 도대체가 낯이 익은 것이다. ‘우리 아긴가?’ 긴가민가하던 참에 간호사가 말한다. “오늘은 꽃사슴으로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내 아기다!

맨 정신에 낳은 내 아이라도 계속 들여다보아야 낯이 익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길러냈다. 밤중 수유도, 공갈 젖꼭지도, 첫니도, 배변훈련도, 성장통도,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야 한다는 아이의 성장 단계는 모두 수월했다. 머리보다 좁은 엄마 산도를 빠져나오는 최초의 고통에 맷집을 키워, 이후 뼈가 자라거나 이가 나는 성장통 따위 가볍게 넘긴다는 자연주의 출산 덕분인가 여인은 추측할 뿐이었다. 60일 만에 아이의 수면교육에 성공했고 저녁 9시면, 책도 읽고, 맥주도 마시고, 공부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손끝 야무지지 못한 엄마 때문에 이유식도 제대로 안 하고 바로 밥으로 넘어갔지만 돌 즈음 폐렴으로 한 번 입원한 것 말고는 잔병치레 없이 아이는 잘 커주었다. 육아를 턱턱 잘해 내는 이유를 자신이 현명하고 지혜롭기 때문이라고 여인은 자부했다. 이 오해는 5년 만에 풀렸는데, 아이를 알아갈수록 여인은 인정해야 했다. ‘내가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원래 순한 아이구나.’ 그러고 보니 조리원에서 아이 별명은 ‘순둥이’였다.     


아이의 부모에게는 소중한 자산이 하나 있는데, 바로 출산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애 머리 보인다.”는 조산사 말에 여인은 옆에 앉아있던 남편에게 급히 손짓을 했고, 덩달아 이틀 밤샌 남편은 기특하게도 여인의 뜻을 알아채고는 영상을 찍은 것이다. 부부끼리 보던 영상은 어느새 세 가족이 함께 보는 특별한 선물이 되어 있었다. 털 없는 고양이 ‘스핑크스’ 형상 같았던 태초의 본인 모습을 본 아이는 엄마 뱃속 그림을 자주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부른 배 안에 강낭콩 같은 걸 그려놓고는 “이거 꽃사슴이야.”라고 하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2019년 10월, 여인은 안겨있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아랫배 자궁과 이 아이의 크기를 슬쩍 가늠해본다. 얘가 정말 내 뱃속에 있었다고? 강보에 꽁꽁 쌓인 채 두 손위에 올라오던 그 크기가 남아있는 까닭에, 가슴 위에 올려놓은 아이와 함께 까무룩 잠들던 그 무게가 남아있는 까닭이다. 아이를 길러낼 시간보다 무거웠던 그날의 눈두덩이가, 갸웃대며 아이 얼굴을 빤히 살폈던 그날의 신생아실이, 아직도 느껴지는 엄지와 검지 사이 탯줄의 진동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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