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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600만원 수술비 앞에서 떠오른 나쁜 생각

'반려'는 사랑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사실을 11년 만에 깨달았습니다

by 이드id


반려견 수술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개를 왜 유모차에 태우고 다녀요?"


아파트 단지를 산책할 때 중학생 아들이 했던 말입니다. 반려견과 살지만, 강아지는 뛰고 걷는 존재라고만 믿었고,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는 모습은 좀 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반려견이 아파 수술을 받고 나니, 강아지 유모차, 일명 '개모차'는 사치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함께하겠다는 보호자의 책임과 결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학 시절 키우던 반려견은 아파트 단지에서 잃어버려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강아지 밥 한 번 챙기지 않았고, 목욕 한 번 시키지 않았습니다. 모든 뒤치다꺼리는 어머니 몫이었습니다.


아이들이 7살, 5살이던 2014년, 생후 2개월 된 토이푸들을 입양했습니다. 아장아장 걸으며 온 가족의 사랑을 받던 강아지는 어느덧 만 11살의 노령견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오롯이 감당하셨을 고충을 이제야 체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반려견이 5~6년 전 유선종양 수술을 받을 당시 치료비가 220만 원 들었습니다. 부담스러웠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까지 고려하지 않고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했으니까요. 이렇게 큰 치료비가 들어가는 일이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달간 반려견 검사비와 피부병 치료 약 100만 원을 지불했습니다.


피부병 치료가 끝나갈 즈음, 반려견이 오른쪽 뒷다리를 바닥에 디디지 못했습니다. 다니던 병원에서는 촉진만으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더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습관성 슬개골 탈구로 인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검사비, 수술비, 입원비를 모두 합쳐 600만 원 가까이 되는 치료비가 든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아... 우리 형편에 이게 맞나…."


가장 먼저 든 생각입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동안 뉴스에서만 듣던 '유기'와 '안락사'라는 끔찍했던 단어도 스쳤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선택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현실은 막막했습니다. 순간, 공원에서 자주 마주치던 '개모차'도 떠올랐습니다.


개모차는 과잉보호가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더운 아스팔트로부터 발을 보호하거나, 사람 많은 공간에서 안전을 위해, 장거리 산책 시 체력 안배를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노령견을 키우는 저에게 개모차는 그저 선택이 아니라, 걷는 것이 고통이 된 반려견에게 외출의 자유를 지켜주는 이동 보조기구였습니다. '우리 강아지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앉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려의 본질은 사랑이 아니라 '책임'과 '노력' 그리고 '인내'라는 사실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주변 이야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 친구는 고양이 충치 치료에 1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썼고, 누나는 십 년 넘게 키운 노령묘 수술비로 2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감당했습니다. 한 후배 어머니는 직장에 다니면서 심장이 안 좋은 강아지 돌봄과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안락사를 택했습니다. 사랑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선택한 결정이었습니다.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 희망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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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반려동물을 기르는 국민은 전체 인구의 29.9%에 달합니다. 그러나 같은 해 유기동물 수는 약 10만 6,824마리로 집계됐습니다. 또 전체 반려동물 보유 가구의 70.2%가 최근 2년간 치료비를 지출했으며, 평균 비용은 102만 7천 원이었습니다.


반려동물 치료비 부담으로 반려를 포기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반려동물이 고령화가 되면 사람처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이 잦아지고, 수백만 원 단위의 진료비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하지만 동물병원 진료비는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병원별 가격 편차도 큽니다.


최근 국회에서는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펫보험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반려동물 양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표준수가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수의업계와 국회 일부에서는 가격 통제 방식보다 보험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합니다.


현재 일부 민간 보험회사에서 반려동물 진료 관련 보험상품을 출시해 판매 중입니다. 2025년 현재 10여 개의 펫보험이 출시되어 있지만, 한국보험연구원의 2024년 조사 결과 '펫보험' 가입률은 1.7%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치료를 '받게 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는 이제 반려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진료비 편차가 크고 보험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책임감을 가져도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반려인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으려면, 진료 접근성과 비용 부담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일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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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반려동물 진료비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소비자가 주요 진료 항목별로 치료 비용을 사전에 비교할 수 있도록 공공 플랫폼을 확대해야 합니다. 반려인들은 보통 SNS를 통해 정보를 얻고, 병원마다 돌아다니며 치료비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반려견 십자인대 파열 수술을 위해 두 군데의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비용은 1.5배 이상 차이가 났고, 치료 방법도 많이 달랐습니다.


둘째, 반려동물 보험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펫보험 가입률은 전체 반려동물 대비 약 1%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입 조건을 완화하고, 적용 범위를 보다 넓혀야 반려인들이 책임감 있게 치료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반려견 한쪽 다리만 수술했지만, 다른 쪽 다리도 동일한 상태일 것이라는 수의사의 소견을 들었습니다. 당장은 수술한 다리 재활이 우선이지만, 향후 벌어질 수 있는 경제적인 부담에 벌써 마음이 버겁습니다.


셋째, 반려인을 위한 교육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입양 전 충분한 정보 제공과 연령대별 발생 빈도가 높은 질병에 관한 교육 및 치료 비용, 보험 가입과 적용 안내 등 체계적인 사전 교육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입양을 택하지 않을까요.


시작보다 끝이 중요합니다. 가족조차 돌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현실에서, 반려동물의 생애를 책임지기란 더욱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섣부른 마음과 결심만으로 한 생명을 책임지기는 어렵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반려동물을 선택하기 전,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제는 길에서 공원에서 개모차를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반려동물과 산다는 것, 귀여운 순간만 누리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생명을 끝까지 지킬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진심 어린 답변을 떠올린 후 결정해야 합니다. 어릴 때 실컷 예뻐하고, 아플 때 함께 견디고, 병원비를 감당하고, 떠나야 할 순간을 받아들이며,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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