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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Mar 27. 2019

누구나 진즉 깨달아야 할 당연한 말

'항상 곁에 있을 것 같은 사람도 허무하게 곁을 떠납니다'


아빠라는 비참한 이름에 대해 전율을 느낀 날이었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토요일 오전 9시에 병원을 찾았다. 문 여는 시간에 딱 맞췄는데 부지런한 사람이 많아서 한 시간 정도 대기했. 마땅히 앉을자리가 없어 기다란 의자 가장자리에 앉아 동병상련 아픈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봤다. 바로 옆에는 네다섯 살 딸아이를 품은 엄마가 앉아 있었다.


"휴지에 물 묻혀서 손을 왜 닦아. 집에 가서 비누로 씻어."

"엄마 이쪽에 있잖아. 왜 그래 사람들도 많은데 돌아다니지 좀 마."

"아 또 어디가 그냥 여기 앉아 있어. 왜 그래 진짜."


증을 잔뜩 머금은 이 호통은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함께 병원에 온 아이 외할아버지이자 자신의 아빠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6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인자한 인상의 아버님. "아니 그냥 엄마 어디 있나 보러 가는 거야"라며 멋쩍은 대답을 하면서 계속 딸 눈치를 살다.


"엄마 우리 꺼도 계산해 줄 거지?" 조금 전까지 연신 짜증 부리던 모습과 달리 애교 섞인 표정과 말투다. "병원비가 만 원도 안 하네"라는 아버님 말에는 어느 누구도 대꾸하지 않은 채 세 식구는 병원을 빠져나갔다. 아버님은 마치 남처럼 서둘러 가족 뒤를 따라나섰.


울컥,


짧은 순간이었지만 서운하고 속상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딸 키우는 아빠 입장이라 아버님에게 감정 이입이 되었기 때문일 터. 딸의 퉁명스럽고 짜증스러운 태도, 순간순간 드러나는 아빠에 대한 날카로운 감정은 분명 한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닐 것다. 수십 년 함께한 가족의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한때 가족을 책임지던 아빠이자 가장이었을 터. 아빠의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딸 앞에서 그 모습은 작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치료받고 집으로 향하는 길, 병원에서 본 가족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아버님은 맨 뒤에서 홀로 걷고 있었습니다. 터벅터벅. 혼자만 다른 시대에 존재하는 것처럼.


<이미지 출처 : pixabay>


엄마 아빠와 손잡고 신나게 길을 걷는 아이의 모습, 행복한 가족의 표상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놀고 있는 아이의 표정에서 평온한 가족의 온기를 느다. 그런데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가족이 너무 가깝기 때문에 이 소중함을 망각하곤 다. 엄마에게 짜증내고, 아빠를 무시하고, 형제자매끼리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 아빠에게 짜증내고 화냈던 순간이 불쑥불쑥 떠올라 죄송할 때가 너무 많다.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없기에 그저 미안한 마음만 하루하루 커다. 


스물여덟 살의 어느 날, 방에서 담배 피운다며 잔소리하 아빠를 피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자는 척했다. 딸깍딸깍 방문을 열려던 아빠가 그대로 출근을 했고, 그게 아빠의 살아생전 마지막 기척이었다. 늘 곁에 있을 것 같은 가족도 이렇게 허무하게 곁을 떠다. 영원히 나를 책임 것 같은 부모님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부모님 살아생전 효도해라'라는 말을 진즉 깨닫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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