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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n 09. 2020

남 모르게 아름다운 사람

'따듯함이 돌고 돌아 다시 당신에게 닿기를...'


병원에 장시간 머무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를 관찰하기도 한다. 엄마가 작년에 고관절 수술 후 2주 정도 입원했다. 곁에 머물며 동병상련의 환자, 보호자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눴다. 최근 엄마가 또다시 큰 수술을 받고 2주간 입원했다. 병실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코로나19 덕에 보호자가 쉽게 드나들 수 없는 환경이었다. 간병인을 쓰는 환자, 보호자 없이 홀로 지내는 환자도 보였다. 서로 간 교류도 별로 없었다.


엄마가 정밀 검사를 위해 입원했다. 옆 침상에 여든이 훌쩍 넘은 할머니가 누워있었다. 단어만 조금 말할 수 있었다. 부축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간병인이 할머니를 돌봤다. 유독 자리를 자주 비웠다. 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할머니를 부축해 화장실에 다녀오는 경우도 왕왕 발생했다.


"화장실..."이라는 할머니의 조그만 목소리가 들렸다.

"또 오줌 마려워? 미쳐. 왜 그렇게 화장실을 자주가~"


늦은  옆 침상에서 울리는 간병인의 목소리였다. 화내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짜증이 섞여 있었다. 가끔 딸에게 전화가 오면 할머니 귀에 대줬다. 할머니는 대부분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말도 잘 못해서 대화는 일방적으로 끝났다. 마지막에는 간병인이 친근하게 응대하고 끊었다. 안타까웠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가족은 간병인만 믿을 텐데.


엄마가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을 거쳐 다른 병실로 이동했다. 들어서자마자 대각선 보조 침대에서 새우등으로 자는 남자가 보였다. 치매기 있는 어머니 기저귀 갈면서 정성으로 돌보는 아들이었다. 엄마의 반복적인 욕설과 짜증도 묵묵히 받아냈다. 이틀 정도 지났을까. 아들이 사라졌다. 밤새 열이 올라 퇴실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간병인이 왔다. 앞으로 일어날 전쟁에 걱정부터 앞섰다. "아파! 아파! 죽을래? 싫어! 안 먹어!"라는 투정으로 아들을 힘들게 하던 할머니였다.


"할머니 너무 예쁘다. 어쩜 이렇게 고와."


간병인과의 첫 대면이었다. 오자마자 기저귀와 침대보를 갈았다. 할머니의 짜증에도 살갑게 답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할머니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젊었을 때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


할머니는 간병인의 친절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예뻤는데,  예쁜 엄마는 처음 봐."


간병인이 화답했다. 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직업 멘트 같았다. 주변에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으니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금씩 진심이 느껴졌다. 할머니도 그 마음을 눈치챈 거 같았다.


치료받으러 간 엄마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옆 침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커튼 너머로 전해졌다. 마침 옆 침상 간병인이 침대보를 갈았다. 나도 엄마 침대보를 갈았다. 여사님들이 척척하는 모습이 쉬워 보였는데, 잘 되지 않았다. 어리바리한 모습을 본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침착하게 알려주며 도와줬다. 사용한 침대보를 돌돌 말아 침대 아래 틈에 끼워주었다. 침대가 밀리지 않아 엄마가 편할 거라고. 엄마의 병명을 묻고, 걱정하는 내 마음도 어루만다.


잠시 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잠깐 밥 좀 먹고 올게."


힐끗 돌아봤다. 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할머니 볼에 입을 맞추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아...'


진실된 마음이 느껴졌다. 심장이 작은 감동에 휩싸였다. 아픈 환자 마음까지 치유하는 사람이었다. '간병인을 쓴다'라고 하면 대부분 타인의 노동력을 산다고 생각한다. 진심까지는 무리라고 여긴다. 착각이고 편견이었다. 할머니의 괴팍한 투정은 눈에 띄게 줄었다. 병실이 평온해졌다. 아주머니의 진심 어린 마음이 만든 작은 기적이었다.


보여주는 삶을 사는데 익숙하다 보니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의 선행이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불현듯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주변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카로운 세상에 불 같은 사람들. 조금이나마 온화한 불빛을 보탤 수 있는 시작,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일에서부터가 아닐까.


엄마가 아프니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원망보다는 선한 마음을 품어야 그 영향이 엄마를 향할 것 같다. 벌이도 없는 엄마가 매달 손주들 이름으로 6만 원씩 기부한다. "돈도 없는데 뭐하러 돈을 써"라고 했다. "다 니 자식들 복으로 돌아간다"는 엄마의 대답에 아무 말 못 했다. 엄마에게는 '보이지 않는 복'이자 선한 마음이었다. 나에게는 그저 연말 정산의 한 항목일 뿐이었고. 엄마의 따듯한 마음이 돌고 돌아 다시 엄마를 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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