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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Mar 24. 2020

직장 내 다변가의 불필요한 착각

'요점 없는 망언을 명언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회사에는 말 많은 사람이 참 많다. 면접 때 발화량으로 승부를 걸었을 것이다. '변호사를 하지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논리적으로 말 잘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도 그 말발을 면접 때 유감없이 발휘했겠지. 이 두 부류는 다변가(多辯家)와 달변가(達辯家)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언뜻보면 비슷한 의미를 지 듯하다.


달변가 '말을 능숙하고 막힘이 없이 잘하는 사람'이고, 다변가 '입담 좋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둘 다 말을 잘하는 사람인 건 맞다. 하지만 조직에서 달변가는 업무에 대해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다변가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 즉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 다변가들은 자신이 달변가라고 착각한다. 일단 어느 자리에서건 쉬지 않고 떠들면서 발화량으로 승부를 건다. 떠들면 눈에 띄기 마련이고 뭐든 하나라도 얻어걸릴 확률이 높다. 확률 게임에 목숨 거는 형국이다. 말을 많이 해야 승리한다는 믿음이 강 중언부언한다.


말이 되든 말든 나오는 대로 소리를 낸다. 주워 담지도 못하는 말이 쏟아진다. 말이 말을 덮고 엉망진창이 된다. 요점이 말에 묻혀서 찾을 수 없다. 쓸데없는 말만 쌓이고 정신은 점점 흐리멍덩해진다. 다변가가 직속 상사라면 매일매일 말 섞간순 지옥 그 자체일 거다.


"솔직히 당신도 잘 모르겠죠? 제발 요점만 말해줄래요?"


외치고 싶다. 친구나 동료에게는 말할 수 있지만, 상사에게는 불가능하다. 윗사람의 요점 없는 말은 정신적인 폭행이고 말 희롱이다. 한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통에 요점은 멀어지고 정신은 아득해진다. 업무 방향이 일순간 동서남북으로 뻗어버린다. 보고서를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에 다다른다. 안대를 쓰고 방탈출을 처음 시작할 때의 기분이다. 두렵고 막막하다. 순식간에 망망대해에서 표류를 시작한다.


후배가 울었다. 팀장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보고서를 고쳤는데, 또다시 외계어를 마구 쏟아냈다며 팀장 자리에 넋을 놓고 왔다. 외계인과 마주하던 후배는 독해졌다. 매번 사라지는 요점을 찾고야 말겠다며 녹음을 시작했다. 뭔가 찜찜하고 걱정스러웠다. 무심한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또 언제 다시 들어. 화만 더 날걸?" 기우였다. 팀원들이 큰 도움을 받았던 고마운 추억이다.


직장인에게는 백해무익한 청산유수보다 한마디 요점이 보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짜 청산유수를 추구하는 고리타분한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집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짧은 시간 간단한 말로 굵은 핵심을 짚어 주는 게 능력 있는 어른의 자질이다. 뭐든 길어지면 요점은 흐려지고, 재미는 반감되고, 정신은 가출한다. 어른이라는 이유 하나로 요점 없는 망언을 명언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업무 의욕을 소멸시키는 '지름길'이자, 후배나 부하직원에게 무참하게 '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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