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드id Oct 07. 2019

모든 꼰대의 안타까운 착각

"나이 들면 인지적 유연성이 뚝 떨어진데."


영국 BBC에서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선정했다. 이 내용을 JTBC 비하인드 뉴스에서 다루던 중 BBC 홈페이지에 한국인이 단 댓글이 소개됐다.


"Latte is horse!"


가정에서 부모님을 비롯해 직장에서 선배나 상사가 내뱉으면 일단 거부감에 발동 걸리는 말이다. 보이는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재미있어서 적어 봤다.


"라(나) 때는 말이야!"


회사에서 가끔 후배들과 업무 이야기를 할 때 나도 모르게 "나 입사했을 땐…"이라는 말을 하고는 속으로 기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누구나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는  잘 알기 때문이다. 입사 초 홍보팀이었다. 돌아가면서 신문 스크랩을 담당했다.


'나 때는 새벽에 첫차 타고 나와서, 신문을 다 오려서, 풀로 붙여서, 복사해서, 스캔해서, 손은 새카매 지고...'


"컴퓨터로 하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왜 제대로 못 할까?"라는 냉랭한 잔소리도 빠지지 않았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업무 처리 방식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순리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때는 팀에 컴퓨터가 한 대밖에 없었어"라거나 "타자기 순서를 하루 종일 기다렸어"라는 신석기시대 경험을 소환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왜 모를까. 아무도 '아, 정말 고생하셨네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래서 어쩌란 거지?'라며 거북스러워할 뿐이다.


10여 년 전생활환경이 다르듯 앞으로 10년 뒤 조직문화는 지금과 사뭇 다르다. 주 5일제, 주 52시간제, 정시 퇴근제 심지어는 PC 오프제까지. 이를 기반으로 한 워라밸이라는 말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시대가 바뀌고 직장인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런데도 과거 지향적인 생각에 집착한다면 직장인 수명이 다했을 때 전설의 꼰대라는 영예를 얻지 않을까.


주 5일제 근무제가 시행되었을 때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원이 있었다. 결혼기념일에 연차를 쓰겠다던 동료에게 멋진 폭탄을 선사했다.


"나 때는 주말도 없이 일했어.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다 쉬는데, 연차까지 쓰면 언제 일하냐?"


팀원 모두에게 투척한 폭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때는 아플 시간도 없었다"라는 상사의 말이 신경 쓰여 당장 입원하라는 의사의 말 거역했다. 주말에 연차 이틀을 붙여 쓰면서 병마와 싸워 폐렴을 이겨낸 경험도 있다. 물론 오래전 일이다. 내 몸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일상뿐만 아니라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거는 이렇게 하면 다 돼"라거나 "내가 예전에 다 해봤던 거야"라며 시작도 전에 후배 의지를 꺾는 사람이 꽤 다. 선배가 겪은 세월에는 나름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을 테고, 톡톡 튀는 후배 머릿속에는 선배의 것과 다른 싱싱한 아이디어가 자고 있다. 그런데 이를 망각하고 후배의 의견을 무조건 배척하고 짓누르면 선배에 대한 거부감만 커진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거리감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등을 지게 된다.


'인지적 유연성 이론'이라는 말이 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여러 범주의 지식을 넘나들고 연결 지으며,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적인 요구에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하는 지적 능력', '새로운 상황의 요구에 맞도록 기억 내 지식을 재구성하는 능력'을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이 점점 떨어진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에 사로잡혀 그 틀 안에서만 의사결정을 내리게 는 것이다.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에 스스로를 가두는 거다. 그 때문에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나 때는'이라는 말로 과거에만 머무르게 된다.


소싯적 이야기로 자꾸 과거 여행을 떠나지 않는 방법은 젊을 때부터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유연한 사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거 내가 다 해봤던 거야'라든지 '이렇게 하면 다 돼'와 같은 망언을 늘어놓지 않을 테니.


세대 차이를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로 또는 당연한 문제로 인식하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다. 후배 시절을 먼저 경험한 선배가 먼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후배 생각을 이해하고, 본인 태도와 행동이 누군가에게 거북스럽지는 않을지 돌아보면서. 꼰대스럽지 않은 품위 유지? 랄까. 세대 차이, 나이 차이,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살아온 세대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나 때는 이렇게 했지만, 지금은 더 좋은 방법이 있겠지'라는 생각, '나는 실패했던 일이지만 세대가 바뀌었으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내가 인정받고 싶은 만큼 상대 마음을 인정는 넓은 아량을 베푸는 것이 소싯적 이야기에 집착하지 않는 선배가 되는 방법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을 바꿔 보겠다는 어리석은 집착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