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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Sep 23. 2019

사람을 바꾸겠다는 어리석은 집착

"후배 행동에 오버랩되는 자신의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


게스트를 초대해 꼰대 DNA가 있는지 알아보며 이야기 나누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나와 '동생이나 후배가 인사하지 않으면 기분 나쁘다', '나이 어린 사람이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 '내가 즐기는 취미 생활을 동생이 같이 즐겼으면 좋겠다', '남이 틀린 것은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등의 질문에 체크하며 멤버 중 누가 꼰대인지 테스트했다.


20대 아이돌 멤버가 10대 멤버에게 꼰대 취급을 받는 시대다. 이제 꼰대는 사전에 실린 '늙은이를 이르는 은어'에 한정된 단어가 아니다. 20대 아이돌 멤버가 10대 멤버에게 꼰대 취급을 받는 시대다. 젊은 꼰대의 시대가 도래했다.


'꼰대'는 상사, 선배뿐 아니라 후배가 한 명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피하기 어려운 말이다. 이른바 '꼰대질'은 성격과 가치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촉발되며, 자신이 정한 기준을 남이 충족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증폭된다.


직장에서 후배가 점점 늘어나면서 내 행동을 시시 때대로 돌아본다. 후배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혹시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자주 한다. 나도 모르게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면 남모르게 움찔하기도 한다.


십수 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해 불가 선배를 만났다. 대꾸하다 보면 잔소리가 길어지고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 봉착하기 때문에 입을 점점 다물었다. 꿋꿋하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동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결말은 백기 투항이었다. 꼰대 유경험자이기에 후배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회사 선후배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요즘 애들'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 때도 다 똑같았어!"


동료의 말에 대부분 동조하며, '세대가 다르니 우리 과거를 떠올리며 웬만하면 참견하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가장 막내인 입사 9년 차 후배가 이의를 제기했다.    


"해야 할 말 안 해주고 무관심하게 넘어가니까 잘못된 행동인지 모르고 반복하는 게 아닐까요? 필요한 말은 그때그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후배가 말한 '해야 할 말'이란 직장생활에서 필요한 선배의 충언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혹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충언은 잔소리가 되고, 말한 당사자는 꼰대가 되는 시대다.


"내가 별로라는 사람에게 집착해서 어떻게든 그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보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요." 

 

혜민 스님이 말했다. 꼰대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이 상대를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부모도 자식을 바꿀 수 없고, 사랑하는 사이에서조차 상대를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나 자신도 나를 바꾸기 힘든 마당에 상사나 선배가 후배 직원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부은들 무슨 효과가 있을까. 그저 '또 시작이군'으로 치부되는 피곤한 소음으로 사라질 뿐이다.    


그보다는 수시로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게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꼴도 보기 싫다던 꼰대 상사와 유사한 언행을 일삼는 선배가 될지도 모른다. '나 때는'을 쉴 새 없이 반복하면서 말이다. 심지어는 "나는 꼰대 같아 보일까 봐. 후배들한테 별말 안 하잖아. 그래서 난 애들하고 다 친해"라는 소름 끼치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가랑비에 옷 젖듯 자신이 싫어했던 사람을 닮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면서 현재에 맞게 수시로 F5를 소환해야 한다. 군대에서 졸병 때 받은 수모를 당연한 듯 나눠주려는 보상 심리처럼 직장에서도 한참 전에 당했던 고난을 후배에게 투영하려는 본능이 꿈틀거릴 때가 있다. 이럴 때가 가차 없이 F5를 누를 타이밍이다.


사람과 상황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시대다. 후배들 행동에 자꾸 오버랩되는 자신의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당장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조언이랍시고 하고 싶은 소리를 두서없이 남발하기보다는 말을 내뱉기 전에 꼭 필요한 말인지 머릿속에서 한 번 더 거르자. 불필요한 책임감을 내려놓는 시작이 될 것이다.

  

단순하게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으로 참을 인(忍) 자를 세 번 쓰는 인내가 필요한 게 아니다. 존경받고,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 고민 필요한 시대다. 새로운 시대와 세대를 낯설지 않게 환영할 수 있는 방법 F5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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